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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May 21. 2019

내 취향을 들여다보는 일


나는 웬만한 영화는 다 재미있게 본다. 혹은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내 영화평은 잘 안 믿는다.) 웬만한 음식도 다 그럭저럭 맛있는 편이고 웬만한 책도 다 이래저래 생각하며 끝까지 다 읽는다. (압박을 느낀다.) 이런 나는 무던한 성격이고 예민하지 않고 수더분하고 어디서나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이다.라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문득, 정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는 비판하는 게, 아니 무언가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걸까?

나는 책을 읽고 있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 그냥 책 제목들을 보며 읽고 싶은 생각이 조금씩 드는 책들을 쉽게, 가볍게 골라서 구매했다. 그렇게 구매해도 엄청 재미있진 않아도 읽을만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끝까지 못 읽는다면 그건 그 책 탓이 아니라 내가 끈기가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자책했었다.


그런데 그 책 중 한 권을 읽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거다.


아 지금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아깝다. 빨리 다 읽고 다른 책 읽어야지.


아니, 이렇게 생각할 정도면 그냥 그만두고 다른 책을 읽으면 되는 거 아닌가. 세상에 나랑 안 맞는 책, 나는 재미없는 책도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이게 무슨?


나쁜 평가를 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제작자에 대한 배려, 나라고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마음, 다양성을 인정하고 싶어 하는 마음 등이 섞여 있다.


 이 영화/음식/책.. 을 만든 사람은 얼마나 고생하며 만들었을까, 나름의 의미와 맛과 재미가 있을 거야 라는 생각, 내가 뭐라고 이 것들을 평가하겠어 내가 만들면 뭐 얼마나 낫다고 라는 마음,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다양성은 그렇게 신경 쓰면서 정작 나의 다양성은 왜 인정해주지 않았던가 나의 취향은 왜 가만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가. 내가 나의 선호를 잘 모름으로 인해 명확히 의사를 밝히지 않음으로 인해 겪었던 난감했던 상황들도 생각났다.


결국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어려워서, 혹은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해서 회피해 온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런 생각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자주 생각했던 주제다. 그런데도 몇십 년을 살아온 습관을 바꾸는 게 참, 쉽지가 않다. 




사실 이 글은 19년 1월에 썼던 글이다.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서랍에 저장만 해 놓았던 글. 


지금의 나는 이때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어느새 또 소홀해졌다. 그래도 이 날 이후로 나의 취향을 좀 더 존중하게 되었다. 왓챠 예상 별점이 비록 4점 이어도 지루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가고 있다. 옛날의 나는 (어린 나는) (지루하지만) 철학적으로 의미가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의미는 있지만) 지루하다! 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여전히 다양한 작품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내 취향도 존중한다. 글을 써서 나아지는지 나아지는 과정을 기록할 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중에 무엇이라 해도 이렇게 돌이켜 볼 수 있으니 글을 쓰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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