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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Sep 19. 2018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이직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리적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어려웠다. 취업준비를 할 때와 비슷하게, 양말 뒤집듯 나를 뒤집어 까서 다 내보인 다음 나 스스로도 몰랐던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가치를 찾겠다며 부르짖었던 내 마음속 외침과 딴판으로 연봉에 휘둘리는 나를 목격하고 느꼈던 부끄러움, 당연한 거고 다들 그런다며, 돈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택하는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봤지만 솔직히 쎈 연봉에 혹한 것도 사실이긴 했다.


그리 높지 않은 초봉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운이 따랐고 열심히 해서 인상률은 괜찮았다. 첫 이직 땐 협상 같은 건 할 줄도 몰랐고 7~8년 차가 되고 나선 높진 않지만 낮지도 않은 그래도 스스로 만족할 정도다. (일부러라도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간혹 주위 연봉을 알게 될 딴 맘이 상하긴 했지만 워라밸도 좋고 문화도 좋은 회사라 괜찮았다. 이직을 원했던 건 월급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향은 있었겠지만


다만 나는 이 직무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좋은 리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헌데 여기선 그게 어려울 것 같았다. 유사한 직무를 함께 하며 배울만한 환경도 되지 않았다.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몇 년을 지냈지만 한계가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든 맡기면 잘 해낼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해당 직무에 대해 능통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서의 한 달뒤, 1년 뒤가 상상되어 무서웠다. 지금과 비슷할 그 날들.


심지어 내가 좋아했던 문화들마저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겉과 속이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보며 질려 버렸다. 같은 직무를 함께 논의하며 할 수 있었던 이전 직장의 기능 조직이 그리웠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던 현 직장의 초기가 그리웠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가고 싶진 않았다. 도망갈 정도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괴롭지도 않았고 어찌 보면 배부른 상황이었기에 다음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근 1년간 구직 사이트를 SNS 보듯이 드나들었다. 헤드헌터들의 메일도 수십통을 받았다. 그중에서 지원해본 곳은 손에 꼽았다. 어찌 보면 눈이 높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신중했다.


지난 8월, 신기하게도 그렇게 없던 기회가 동시에 몰려들었다. 여러 번의 인터뷰, 만남, 행복한 그러나 너무나도 어려운 고민들. 선택을 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했다. 내가 왜 이직을 하려고 했던가. 이 장점과 저 단점 중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게 직장이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저곳에 가서 어떻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저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 어떤 걸 배울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사람과 커리어 그리고 돈이 적절히 어우러진 곳을 택했고 조직 문화가 덜 자유롭고 출퇴근 시간이 빨라지고 길어진 것 등의 단점은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가려던 회사는 생각보다 더 조직문화가 좋지 않았고 사람(리더)을 보고 선택했기 때문에 해당 팀에 배정될 수 있도록 요청했지만 입사일 일주일 전에 다른 리더의 팀으로 배치되었단 소식을 듣게 되었다 (비공식적으로). 이미 퇴사한 상태였지만 장점을 잃은 채 굳이 그 회사에 갈 이유가 없었기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나는 백수가 되었다. (와)


백수라니? 백수라니! 소심해서 이직 말고 그냥 퇴사는 사실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백수가 되니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가벼웠다. 아 8시 반 출근 안 해도 되는구나? 싶어서 기뻤다. 핳..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8년간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회사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선택할 때가 되니 혼란이 가중되었던 것처럼 내가 정말 마음을 열고 열심히 고민했는지도 의문스러웠다. 좀 쉬면서 더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러 회사와 인터뷰를 해보니 그냥 막연히 생각할 때와 확실히 달랐다. 가고 싶었던 곳에 가기 싫어지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 더 다양한 산업의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한다.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ㅋㅋ) 분석해보고 만나보고 어떤 산업 어떤 자리에서 즐겁게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약간 신나는데 이런 나 비정상인가





#마음의 결정을 마치고 나서 메모장에 끄적인 글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연봉에 혹해서 여러 단점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입사한 후에 조직개편이 되었다면 바로 그만두기도 어려웠을 거고 그러면 쉬지도 못하고 괴롭기만 한채로 다음을 고민해야 했겠지. 아무래도 문화를 포기하고 가는건 옳은 선택이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하늘이 예쁜 날에 쉬게된게 한편으론 신난다. 평일의 가을 하늘을 맘껏 즐길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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