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시작한 반셀프 인테리어. 셀프/반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나면 그렇게들 글도 쓰고 오늘의 집에도 올리고 하던데 왜 그런가 했더니 고생과 정성을 다해 집을 꾸미고 나면 너무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애정 폭발, 자랑하고 싶은 마음, 알려주고 싶은 마음 등등.. 그래서 나도 더 늦기 전에 더 잊기 전에 글로 남겨 보기로 한다.
반셀프의 시작은..
사실 처음부터 시공을 많이 하려던 건 아니었다. 계약 당시 집을 둘러봤을 땐 '깔끔한 편이니 도배하고 몰딩 색만 바꾸면 되겠네'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1) 샷시+몰딩은 필름 작업으로 하얗게 2) 도배 새로 하고 3) 싱크는 오래되었으니 새로 싹 하고 4) 나머지는 가구만 잘 사면되겠다~!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그것은 우리가 20년 구축 아파트를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이었으니...! 살던 분들이 짐을 빼고 나니.. 집은 오래된 세월을 피하지 못하고 벽은 갈라지고 곰팡이 투성이에.. 정말 암담하기 짝이 없었고 결국 계획했던 것에 추가로 욕실 페인트칠 + 세면대/변기 교체 + 베란다 3개 타일 전부 다시(모두 깨져있었고 가려놨던 것)+ 갈라진 벽 시공+ 전기조명 전부 다시 + 냉장고 위치도 변경 (1cm 차이로 안 들어가는 공간이었음) 등등... 이렇게 마루와 샷시, 욕실 바닥 타일 정도만 빼고 전부 시공을 하게 되었고, 당연히 턴키 인테리어 업체를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뜻밖의 반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다.
아주 간략한 과정..
물론 그 전에도 여러 작업은 할 생각이었기에 한 두 달 전부터 소위 셀벤져스라 불리는 업체들을 열심히 찾아서 예약해놨었다. 셀벤져스라 함은.. 셀프 인테리어 계의 샛별 같은 카페가 있는데 (https://cafe.naver.com/overseer) 그곳에서 평이 좋고 유명한 업체들을 셀프 인테리어 어벤져스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물론 그 업체가 정답은 아니고 사람마다 후기가 다를 수 있으니 잘 찾아보고 해야 한다. 나는 그중에 필름(행운필름), 싱크(나무스토어) 정도만 성공했고 도배는 4~5군데 연락해봤으나 마감되어 실패하고 숨고에서 후기 좋은 곳으로 예약, 입주 청소/시스템에어컨도 여기저기 찾아서 예약했다. 조명은 짝꿍이 직접 모두 샀고 공부해서 시공도 하려 했으나 좀 무리라서 직전에 업체 불러 진행했고 시스템 에어컨, 포장이사는 팀별로 후기 확인이 가능한 yes2404 베스트팀으로 진행했다. 철거는 우린 싱크+신발장 정도만 하는 거라 싱크 업체에서 불러주신 곳이랑 했고, 동의서 받고 승강기 보강하는 건 페어피스란 업체로 예약했다.
도면&계획
59m2 치고는 꽤 넓어 보이는 형태인데, 좌측 침실 아래 보이는 베란다가 상상 초월로 넓었다. 이 아파트가 지어질 무렵 베란다에 반절 넘게 화단을 꾸미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베란다가 넓다고..! 그러다 보니 그 넓은 베란다를 확장한 거실도 평수 대비 꽤 넓어 보이는 편이었고 나중에 입주청소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평당가를 받기 위해 실측해주신 결과로는, 베란다까지 모두 합쳐서 26평 정도였다.
사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거실이었는데, TV와 소파로만 채우기엔 햇빛 잘 드는 거실이 너무 아까웠고 일하기에도 쉬기에도 좋고 많은 사람들이 와도 편히 앉아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다. 특히나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도 넓게 빠진 거실과 따사로운 햇빛이었다.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서 플래너 툴(https://planner5d.com/ )을 이용해 자세히 구상했다. 거실은 넓은 테이블과 넓은 소파로 따뜻하고 편하게, 나머지 방은 침실, 옷방 그리고 일하고 게임하고 영화 보는 멀티방(서재)으로 지정했다. 주방은 깔끔한 화이트로 새로 싹! 사실 주방도 엄청 고민이 많았는데 처음엔 아일랜드 식탁 쪽에 후드를 옮겨서 대면형 주방으로 짜려고 했으나 후드 위치를 옮기려면 이래저래 일이 너무 커져서 포기했고, 상부장을 안 쓰고 나무 선반으로 할까도 고민했으나 관리가 쉽지 않고 수납공간이 줄어들 것이 우려되어 결국 기본형/화이트로 진행하게 되었다. 둘 다 IT 직장인 아니랄까 봐 구글 닥스와 노션을 활용하여 계획하고 체크하고 생각해놓은 스펙 등을 미리 다 적어서 업체에 전달하고 진짜 일하듯 철저하게 했다.
거실
Before
밝은 갈색 몰딩에 노란 끼가 많이 도는 마루. 마루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는데 마루를 새로 하기엔 기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흔적 때문에 이사하며 흠집이 더 났는지 아닌지도 티가 안 나서 마음이 편했다. 하하. 사진으로 보면 이것도 꽤 깔끔해 보이지만 샷시의 갈색 필름은 곰팡이가 가득해서 만지기도 힘들었던 기억.. 어쨌든 다른 인테리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전부 하얀색으로 덮기로 결정. 필름 시공을 해보니 정말 한땀한땀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고 시공 중 가장 비쌌는데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위 사진이 필름+도배+조명/전기+주방시공까지 끝난 사진이다. 현관문도 진한 초록 필름으로 작업한 것. 훨씬 깔끔해 보인다. 아 도배는 실크로 했는데.. 당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추천해주시는 페인트 느낌 나는 걸로 했더니 오염엔 강한데 충격에 약해서 몇 군데가 벌써 벗겨졌? 찢어졌다.. 실크는 강할 줄 알았는데 속상. 다음에 한다면 강한 도배지를 찾아보고 그걸로 하리라..
After
따란! 다 꾸며진 거실. 감동..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으면 해서 베이지/화이트 톤에 갈색 가구들과 초록 식물들 그리고 초록 패브릭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벽 쪽에 위치한 월 캐비닛에 스피커와 bgm용 폰을 두고 뒤쪽으로 선을 연결해놨다. 진짜 카페처럼 항상 음악이 흐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오른쪽 6인 테이블은 세라믹 화이트고 위에 조명은 이케아. 처음 짝꿍이 저 조명 2개를 달겠다고 했을 때 2개나 달면 너무 과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어리석은 나 자신.. 저 조명이 없었으면 꽤나 허전했을 것 같다. 또 거실 중간에 소파 테이블을 놓을지 말지 계속 고민했는데 결국은 놓지 않고 각각 앉는 자리 옆쪽에 사이드 테이블만 두었다. 그래서 공간도 넓어 보이고 좋음.
이 월 캐비닛은 오투가구의 피카라인인데 약간 붉은 끼가 도는 월넛 색이라고 해야 할까. 하얗기만 할 수도 있는 거실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일등공신! 기본적으로는 화분을 많이 두었고 중간중간 계절에 맞는 아이템으로 변화를 줄 수 있다. 지금은 전부 크리스마스 느낌.
지금은 인원 제한으로 부르지도 못하지만 8명 정도까지는 둘러앉을 수 있고 식사 후에 소파로 자리를 옮겨 도란도란 대화도 가능하다. 내가 가장 많이 앉아있고 누워있는 공간이자 가장 좋아하는 거실.
주방
거실 다음으로 가장 열심히 한 곳이 주방일 것 같다.
Before
최초의 주방 모습. 주방은 그 전 주인도 리모델링한 적 없는 상태라 20년 전 고대로.. 20년 치고 깔끔한 편이지만 아예 새로 싹 다 하기로 했다. 우측 사진을 보면 불투명 유리장이 여러 군데 있고 그게 참 별로라서 전부 철거했다.
전부 부수고 뜯고 타일은 베이지 톤으로 다시.. 장은 다 화이트로..
After
완성된 주방! 깔끔. 싱크는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 다 하고 싶어 하는 사각백조싱크로.. 수전은 무광 니켈로! 인덕션도 비스포크 화이트로 맞췄다.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었으나 해놓고 나니 검정 인덕션이었다면 많이 달랐을 듯.. 사실 이 주방의 핵심은 저 냉장고인데.... 문제의 그 냉장고....!
원래는 아래 사진에서 움푹 들어간 저곳이 냉장고 자리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ㅇ
원래 베란다였고 베란다에 냉장고를 놓는 구조였는데 확장한 것. 그래서 우린 당연히 저기 냉장고를 넣을 계획을 했고 실측을 하러 갔는데 이게 무슨..?? 1~2cm 정도가 모자라서 기존 4도어 중에서 작은 편인 키친핏 비스포크 냉장고마저 안 들어가는 것이었다.... 멘붕에 빠진 우리는 고민에 고민을 했고, 못생긴 옛날 냉장고 작은 것을 사서 넣을 것이냐 구조를 아예 다 바꿀 것이냐 온갖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왕 이렇게 된 거 오히려 좋아 전략을 택했다. 사실 기존 안 대로라면 싱크와 냉장고 위치가 좀 멀어서 동선이 불편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저기 냉장고를 못 넣을 거라면 싱크 옆에 장을 만들어서 넣어보자 그러면 주방을 넓히는 결과가 되고 동선도 편해질 것 아닌가!! 한 가지 단점이라면 2도어 330리터 냉장고만 넣을 수 있다는 것인데 뭐 어차피 우린 2인 가족이고 평일에 밥도 잘 안 해 먹으니까 공간만 효율적으로 잘 쓰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베란다로 가는 길목을 가리고 주방은 넓혔다! 성공적.. 우측에 유리장도 없애고 나니 아주 시원!
그리고 또 한 가지 저 왼쪽에 있던 불투명 유리장을 철거하고 거실에 있는 월 캐비닛과 같은 라인의 서랍장을 넣어서 하얗기만 한 주방을 따뜻하게 만들고 거실과 분위기를 이어지게 해 줬다.
거실 쪽에서 보면 월 캐비닛과 같이 눈에 담겨서 따뜻하고 주방 쪽에서 봐도 따뜻..
그림을 두고 조화를 놨다. 사실 저 아래 러그는 유리장을 철거하고 나니 저 바닥엔 마루가 없더라.. 하하하하 그래서 가리기 위해 깔았다.
서재(멀티룸)
Before
여기도 베란다 확장으로 길쭉하게 생긴 모양이었다. 거실에 TV를 빼고 서재에 책상+TV를 넣었다.
After
책장은 이케아로 쭉 넣었고 책상도 이케아군. 영화/영상 편히 볼 수 있게 아예 암체어로 넣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이케아.. 막상 이케아 가면 비싼데 한샘 같은 한국 가구점이나 논현 가구거리에 가면 이케아가 제일 합리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의자 구매 전이라 의자 없이 모니터만 덩그러니 ㅎㅎ 이렇게 꾸미고 나니 신나서 닌텐도 스위치를 사버렸단 건 안 비밀..^^^
침실
침실은 딱 잘 잘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나마 이전 집에서 쓰던 가구들을 가장 많이 그대로 쓰는 방인 듯, 커튼은 암막커튼으로 넣고 대신 구글홈이랑 연결해서 말로 열고 닫을 수 있게 세팅했다. 헤이 구글 자자~ 하면 불도 끄고 커튼도 닫는다 짱.. (짝꿍 짱..)
욕실
그리고 뜻밖의 우리의 체력을 가장 많이 앗아간 욕실.. 욕실이 두 갠데 다 새로 하기엔 예산이 빠듯해서 그냥 깨끗이 청소해서 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많이 바꾼 곳..
Before
우선 가장 결정적으로 왼쪽 벽이 알록달록했다..ㅠ.ㅠ 그냥 쓰기 힘들었다. 그래서 페인트칠을 하기로 했고 그렇다면 세면기와 변기도 바꾸자고 했고 그렇다면 수전도 다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또 결정적으로 조명이 그대로면 예쁠 리 없었다. 조명도 바꾸기로 했다. 우선 세면기랑 변기, 수전 등은 아메리칸 스탠다드 제품으로 쫙해서 그 부분은 사람을 불러서 잘했는데 문제는 페인트칠이었지 후후 잘 하긴 했는데 오랜만에 하려니 둘 다 몸살 날 뻔..
After
결과적으로는 고급진 욕실이 완성되었다! 가격 대비 정말 전부 새로 한 것 같은 욕실로 변신. 거울장 아래에 라인 조명을 달고 따뜻한 색 조명으로 바꿔주었는데 이게 엄청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현관
마지막으로, 얼마 전 완성된 현관을 소개해본다.
원래는 좌측 사진처럼 우측에 키 큰 장 좌측에 반장+거울이 있었는데 다 철거하고 화이트로 새로 짜 넣었다. 타일은 그대로 사용. 좌측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다가
거울과 가랜드 장식품들로 채웠는데 찰떡..! 위쪽 조명도 짝꿍이 센서도 안으로 넣어서 감추는 등 세세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까지 하고 나니 어느 정도 정말로 집이 완성된 느낌..!!
위에서 설명한 것들 외에도 천정에 에어컨도 매립했고, 조명도 전부 다운라이트+라인조명을 섞어서 새로 했고, 문고리/스위치도 짝꿍이 하나하나 다 직접 골랐고 샷시 손잡이도 갑자기 철물점 가서 사오고 거실에 아파트 방송 나오는 누런 스피커도 새거로 사다 교체하고, 온도조절기에 인터폰까지 전부 바꿨다. 그리고 사실 글을 쓰느라 마치 내가 다 한 것처럼 썼지만 사실 짝꿍이 훨씬 많은 정성을 들였다. 감각도 나보다 더 좋고 업체 사장님들이 안된다고 하는 걸 전부 공부해서 되게 만들고 전기/조명 공부도 직접 다하고 액자도 다 고르고.. 그래서 사람들이 감사하게 집이 예쁘다고 해줄 때마다 짝꿍의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다고 말한다. 후후.
사실 오늘의 집에 글을 먼저 썼다가 거기엔 다 오픈해주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오픈 안 해줄까 봐 브런치에 쓴다. 그냥 날리긴 너무 아까운 우리 고생 ㅠ.ㅠ 진짜 반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났더니 집에 대한 애정이 너무 많이 생기고 나가기도 싫고 짝꿍과는 전우애가 생겼고 그르타. 앞으로도 계절마다 소품 바꿔가며 오래오래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