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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Jun 23. 2022

갑자기 부엉이 집사 된 이야기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싶다고 생각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워낙 동물을 좋아했지만 키울 엄두도 못 내던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건 짝꿍이었고,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동물을 키울 수 없던 전셋집을 벗어나 이사도 했다. 그러고 나서도 매일 유기견, 유기묘 SNS 계정을 들락날락했다.


고양이가 좋을까? 아무래도 강아지가 낫겠지? 매일 산책시킬 수 있을까?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데 성견도 잘 키울 수 있을까? 집에 혼자 두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은 끝이 없었고 고양이냐 강아지냐도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만 갔다. 아직 아이 생각은 없었지만 안 낳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유기동물을 입양하기에 최고의 조건도 아니었다. (신혼부부는 아이를 낳게 되면 파양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입양자를 고를 때 우선순위가 낮은 편이다.)


그래서 생각만, 고민만 몇 년째 하고 있었는데.. 지난 4월의 어느 날..! (사실 4월 18일이다. 다 기억함)  길냥이 돕는, 일명 캣맘 활동을 하는 친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고 고양이 한 마리를 잠시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일하다 말고 소식을 들은 나는 잠시 고민해보고 알려주겠다고 했고 짝꿍에게 물어봤다. 짝꿍은 단숨에 난 좋아.라고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런 게 묘연이겠거니 했다고. 나도 뭔가 당황스럽고 고민이 됐지만 그래 키우든 안키우든 일단 갈 곳 없는 친구라고 하니 맡아보자 하고 오케이를 했고 언니는 당장 그날 밤에 데려오겠다고 했다. (!!!)


이 친구 맡아줄 수 있겠냐고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다이소에 가서 고양이 화장실이랑 모래랑 스크래쳐를 사들고 낑낑대며 집에 왔더니 곧 언니가 도착! 털이 부슬부슬한 친구는 집에 오자마자 숨어버렸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품종묘로 보이는 길냥이들 피해서 밥 먹고 숨어 다니던 친구가 발견되었는데, 품종묘로 추정되다 보니 자꾸 업자들이 잡아가려고 시도했다는 것, 주인 찾는 글을 올려도 연락이 없고 임시보호 공고에도 업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연락이 와서 믿을 만한 사람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사실 고양이 품종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그놈의 품종묘가 뭐라고.. 참..


도착한 냥

언니가 임시로 가져다준 큰 상자에 넣어줬지만 너무 넓게 느껴졌는지 바로 책상 모니터 뒤에 숨어버렸다. 그래도 밥은 먹고 들어감ㅋㅋ 그렇게 첫날은 맘 편히 쉬라고 방문도 닫아줬다. 다음날 밤에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창문 밖을 한참 바라보고 있길래 작은 박스를 앞 뒤로 뚫어줬다.


그랬더니 내 의도대로 앞뒤로 잘 활용해주신 냥님 ㅋㅋ 그리고 또 다음날, 문을 살짝 열어놓고 우리 목소리도 들려주고 왔다 갔다 했더니..


상자에서 나와 편히 누워 쳐다봐주심!! 눈곱 가득 끼고 털도 다 뭉친 냥..ㅋㅋ


다음날엔 밥도 먹고 물도 먹었다.



또 다음 날엔 드디어!!!

방을 나와 거실을 순찰하더니 발라당.. 쓰담까지 허락해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엄청난 개냥이 었음) 커뮤니티에서는 한 일주일은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며칠 만에 쓰담까지 할 수 있다니 감격스러웠던!ㅜㅜ (물론 조금 돌아다니다가 다시 방 + 상자로 돌아갔다)



소파도 올라가고 발라당 배도 보여주고 숨숨집도 써주고 밥도 먹고..



좀 안정되면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이동장을 주문했는데 아직 안 와서 병원에 못 가고 있었다. 그래서 얘가 몇 살인지 아픈지 아닌지 아무것도 몰랐다. 주인 찾는 게시글을 포인 핸드나 각종 카페에 다 올렸지만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아가도 아니고 행동도 소심해서 아파서 버려졌거나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 만약에 아프면 우리는 그래도 여유가 있으니까 치료받으러 우리에게 왔겠거니 각오하자고도 했다. 특히 귀 뒤에 뭔가 큰 알 같은 게 만져져서 뭔가.. 뭔가 이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병원으로 향했고..

진료 받는 중


쌤이 냥이를 꼼꼼히 보시더니 다행히 어디 크게 아픈데는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안심의 눈물 ㅜ.ㅜ 허피스 증상이 조금, 귀 진드기 조금, 털 많이 뭉쳤고.. 귀 뒤에 뭔가 분명 뭔가 일거야 했던 것도 털이 뭉친 거라고 하셨다..ㅋㅋㅋ 잘라내주심.. ㅋㅋ 나이는 2~3살 정도, 남자아이고 중성화가 안되어있다고 했다. 아니 세 살이나 됐는데 중성화가 안됬다니.. 어디서 온 거니 냥아


병원에 갔다가 목욕을 시켜야 할 것 같아서 주변에 목욕할 수 있는 샵을 찾아갔다. 근데 가보니 털이 너무 많이 뭉쳐서 그걸 풀면서 목욕하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을 것 같다고 해서 털을 모두 밀기로.. ㅠㅠ 정기적으로 털을 밀러 오는 집사분들도 있다는데 아 나는 이제 다신 못할 것 같았다.. 이 친구는 얌전히 잘 있는 편이라고 했는데도 아등바등 꽉 붙잡고 털 미는 그 광경 너무 보기 힘들었다. 털이 좀 빠져도 앞으로는 미용은 안 하기로.. ㅠㅠ



그렇게 천둥벌거숭이가 된 우리 냥..


아, 냥이 이름은 부엉이로 정했다. 처음 사진 보자마자 무슨 부엉인 줄 알았다고 얘기하다가 진짜 부엉이로 할까 하다가 부엉이가 됨..! 지금 와서 보니 너무 잘 지은 것 같다 ㅋㅋ 진짜 부엉이 키우는 줄 알고 들어오신 분들께.. 글 뒤에 와서야 냥이 이름이 부엉이라고..


아무튼, 그렇게 부엉이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구조자가 친한 언니라서 그분의 승낙 하에 우리가 부엉이를 정식으로 입양했다. 그 이후로 두 달쯤 지났고 부엉이는 그새 털이 많이 자라고 더욱더 개냥이가 되었고 귀 진드기는 다 치료되었고 드디어 다음 주에 중성화 수술을 예약했다.


부엉이는 행동이 다 작은 편인데, 캣폴도 조심스레 올라가고 점프도 세게 못하고 (안 하고?) 가끔 쥐돌이 잡으러 뛰어다니고 나머지는 코 잠만 잔다. (그래서 사고도 많이 안친다 고마워 부엉아..)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친구가 보더니 세 살인데 이상하네 하면서 샵이나 브리더네서 갇혀 자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래서 사랑은 갈구하고 경험이 없으니 행동은 소심한 게 아닌가 싶다고.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런가 싶고 짠하기도 하고 ㅎㅎ


한 1년쯤 지난 것 같은데 두 달 밖에 안된 우리 부엉이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맨날 자구 강아지풀 장난감도 좋아하고 혼자 이상한 자세도 많이 하고 털도 많이 길고 언제 불러도 만져달라고 냐옹 거리는 엄청난 개냥이다!


이제 부엉이 없인 못 살 것 같은 내 웃음 버튼..ㅋㅋㅋ 부엉아 언능 중성화 하구 맛난 거 먹고 재미나게 놀면서 우리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 아프지 말고!


https://www.instagram.com/booeong_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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