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보내는 신호들
"나는 어릴 때부터 장녀로 자랐다."
9살의 나는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수화기를 들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모.
“너희 집은 네가 잘해야 산다.”
왜 그 말만 들으면 숨죽여 울었을까?
걱정하는 말이었겠지.
그렇지만 그 무게는
마치 산 언덕에 위태롭게 걸린 흔들바위 같았다.
떨어질 듯 말 듯,
그러면서도 묵직하게 언덕을 짓누르는 그런 무게.
아마 그때부터 나는 그 돌을
책가방처럼 메고 다녔던 것 같다.
재미있는 건, 가방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나를 더 칭찬했다는 거다.
"와, 넌 정말 책임감 있구나!"
칭찬 중독자가 된 나는 더 큰 가방을 메려고 했다.
그래서 아픈 것도 참았다.
참는 것은 내 특기였으니까.
심장이 벌렁거려도 출근했고,
위가 쿡쿡 쑤셔도 회의에 참석했다.
두통이 심해도 "괜찮아요~" 하며 웃었다.
"나 왜 이러지?" 싶은 날도 있었다.
업무 전화를 받으면 위장이 틀어지는 기분에
화장실로 쫓아가 움크리고 앉기도 했고,
지하철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밤엔 잠도 못 잤다.
그래도 나는 '열정 넘치는 직원'이어야 했다.
웃음도 책임감 있게!
그렇게 15kg이 빠졌다.
병원에 갔더니
첫 번째 진단은 '자율신경 이상'.
"스트레스 좀 줄이세요."
의사는 쉽게 말했지만,
내가 아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더 열심히 일하기' 뿐이었다.
난 내가 너무 불쌍했지만,
'나약해지면 안 돼.' 하고 애써 눌렀다.
두 번째는
'갑상선 종양, 휘트르레 4단계'.
"암일 수도 있습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지만,
'괜찮아, 별일 아닐 거야.'
또 그렇게 나의 감정을 무시했다.
세 번째는
'우울 장애'.
이건 아무도 몰랐다.
밖에서는 한없이 밝게 지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웃으며 대화하던 중,
"얌니 씨, 왜 이렇게 손을 떨어요?"
남이 발견할 때까지, 나조차 몰랐다.
그렇게 일 년 넘게 약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면 가면을 벗었다.
밝은 얼굴은 현관문 앞에 두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아무도 내 우울을 몰랐다.
인스타에는 여전히 웃는 내가 있었으니까.
"너 진짜 열심히 산다!"
그들은 몰랐다.
내가 얼마나 재미 없이 살았는지.
9살 그 아이에게 이제는 꼭 말해주고 싶다.
"너 혼자 다 할 필요 없어. 가끔은 그냥 놀아도 돼."
요즘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준비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느끼며 '내 세상이 확장되는 경험'을
건강한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그 시간은 사실,
내 몸이 충전하는 시간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내 몸이 보내던 신호를 무시했던 시간들.
하지만 이젠 안다.
내 몸은 적이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걸.
이제 친구의 말에 귀 기울이며,
다정하게,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갈 거다.
이런 나를 만나게 되다니,
9살 그 아이도 분명 뿌듯해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