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니 May 30. 2022

주머니 속 잎새


빨래한 점퍼를 입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부드러운 무언가가 만져진다.

꺼내 보니 꽃잎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다.

꽃받침은 보통 꽃 아래에서 꽃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잎이 변해서 만들어진 거라 초록색이나 갈색 잎처럼 보이는데,

화려한 색깔을 가진 꽃받침도 있다.

이는 꽃잎이 따로 없거나, 꽃이 작아서 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한 역할을 한다.


호주머니에서 나온 꽃받침은 원래 얇고 투명하고 예쁜 분홍색이었다.

이 꽃받침을 가진 꽃을 화명수목원 온실 2층 입구에서 처음 만났다.

고운 분홍색 꽃송이가 무리 지어 피어 있어 먼저 눈길을 끌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꽃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워 발길을 잡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만져봤다.

얇고 부드러운 비단 같은 감촉이었는데 그때 호주머니에 넣어둔 거다.


온실을 한 바퀴 돌아 내려가는 계단에서 또 한 번 이 꽃을 보았는데,

고운 분홍색 꽃들이 수다쟁이들의 재잘대는 입처럼 벌어져 있었다.

꽃을 자세히 보니 안에 아주 작고 하얀 꽃이 또 들어 있는 걸 보고 생각했다.

‘할미꽃의 자주색 꽃잎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인 것처럼

이 분홍색 잎도 꽃받침이겠구나’ 하고.


호주머니에서 나온 꽃받침은 베이지색으로 빛이 바랬지만

전혀 찢어지지 않았다.

‘대단하군, 이름이 뭐였더라, 네 글자였던 것 같은데….’

외국에서 온 아이였고 이름이 낯설어 가물가물하다.

휴대전화기를 열어 사진을 찾아봤지만 이미 지웠는가 보다.

다음에 가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다.



요즘 내 호주머니에서는 잎사귀들이 종종 나온다.

향기 좋은 월계수 잎, 호랑가시 잎이랑 비슷한 은목서 잎,

그리고 이름 모를 잎 등,

나무에서 가끔 하나 떼었거나 떨어진 걸 주운 것이다.

호주머니에서 잎이 나오면 지금처럼 그때 그 꽃이 그려지기도 하고,

‘이게 왜 있지?’ 하고 의문이 들 때도 있지만,

작은 잎사귀에 몰두한 나를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숲 공부 중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