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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Feb 01. 2024

헤드폰 이야기

며칠전에 B&O HX를 영입함으로써 헤드폰 3대장(Focal, BeyerDynamics, B&O)을 모두 갖추게 됐다. 자랑처럼 들릴까봐 글 쓰는 것을 망설였으나.. 헤드폰이 얼마나 매력적인 세계인지를 알려드리고자 용기내어 글을 올린다. 편견없이 담백하게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

케이스들. 좌로부터 Focal Celestee, B&O HX, BeyerDynmics Aventho (Aventho는 케이스가 천쪼가리라 케이스를 올림)


나는 오래전부터 헤드폰에 집착해 왔다. 아직 오디오를 잘 모르던 시절부터 유독 '예쁜' 헤드폰들에는 눈길이 가서.. 지난 20여년동안 내 머리 위를 거쳐간 헤드폰만 10개? 하루 이상 대여를 통해 청음해본 헤드폰들은 수십여개에 달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Bose qc ultra, Sony mx5, Senheiser momentum 4 등도 최근 한달 사이에 하루 이상 들어보았다. 3개 모두 준수한 편이나, 솔직히 갖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디오가 무서운 게 '고급진 소리의 맛'에 일단 길들여지고 나면 다른 것들에 대한 평가가 박해진다. 이 3개는 노이즈캔슬링에 장점이 있었으나, 해상도, 공간감, 다이나믹, 대역대 밸런스 면에서 기대에 많이 못미쳤다. 현재 사용중인 분들에게는 왠지 죄송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애플 에어팟 맥스를 거론하지 않은 것은 아예 들어볼만한 가치조차 못 느꼈기 때문이다.)


에어팟맥스를 평가한 Producer DK의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yQa3qWt1MY


음질만 놓고 봤을 때는 차라리 (10만원도 안하는) Simgot 이어폰(EA200, EA500)을 더 추천한다. 꼭 무선이어야 하며, 노이즈캔슬링도 있길 원한다면 지난 글(이어폰 이야기)에서 추천했던 ATH-TWX9을 추천하는데.. 얘는 이어폰이고 가격대가 조금 있어서 조심스럽다. 20만원 이내에서 가성비 좋은 헤드폰을 찾고 계신다면 Senheiser accentum을 추천드린다. 우연한 계기로 득템했는데, 너무 괜찮아서 중학교 올라가는 셋째에게 선물했다.

Senheiser accentum. 20만원 이내에서 가성비를 따지신다면 추천


헤드폰은 음질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구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자신의 머리에 잘 맞는지, 귀가 불편하지 않은지, 패션 아이템으로써 적당히 기능하는지도 두루 살펴야 한다. Focal Celestee나 오테카 ATH-RX70x를 큰 맘먹고 밖에 쓰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심약한 나'로써는 도저히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장 유리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내가 봐도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데... 그래.. 그냥 실내에서만 쓰자. 아주 가끔 인적드문 밤에 운동나가면서 Celestee를 쓰고 나가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선을 주렁 주렁 늘어뜨린 것도 잊고.. ㅋㅋ

T+A Solitaire P (1000만원;;;)


가격대가 500~1000만원 선인 천상계의 헤드폰들은 대부분 밖에서 쓰고 다니기 어렵다. 일단 무겁고 크다. T+A, Dan Clark, Audeze, Spirit Torino, Meze audio 등이 그것인데.. 음질에 몰빵을 해서 그런지 무겁고(400g 이상) 생긴 것도 우스꽝스럽다.

dan clark EXPANSE. 4000$


200~500만원대가 되면 그나마 대중적인 생김새들이 등장하고, Focal이나 Austria audio의 최상급기는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아예 처음부터 외모로 승부를 보는(본다고 의심받는) 기종도 있다. Master & Dynamics는 오디오 품질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미려한 외모와 적당한 품질로 여러 명품 브랜드(루이비통, 람보르기니, 라이카)들과 많이 협업한다.

외모 지상주의. Master & Dynamics MW75


무선은 사실 헤드폰 세계에서는 아마추어들의 영역이다. '어디 감히 무선이 끼어들어? 엉? 형 때는 말야.' 우스꽝스럽게 들리시겠지만 진짜 헤드폰의 세계에서는 무선이 뭐.. 그렇지... 한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T+A의 Solitare T나 B&W의 PX8, B&O의 95가 그나마 명함을 들이밀 정도이지만 그래서 한자리 차지해봤자 구석탱이에서 형들이 큰소리 낼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앉아있어야 할 처지이다.


그러면 왜 헤드폰에 그 많은 돈을 투자할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 오디오의 구성을 간단하게 들여다보자. 실제 오디오가 사람의 귀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소스 기기(턴테이블, MP3, 스마트폰, DAP, CDP)와 스피커 외에 DAC(Digital to Audio Converter), 앰프(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냥 퉁쳐서 앰프라고만 하겠다), 케이블 등이 필요하다. 안정적인 전류를 공급하는 전원공급기도 범주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깟 케이블 얼마나 한다구? 하시겠지만 아래 소개하는 케이블은 무려 1500만원짜리이다.

1500만원짜리 케이블 =_=. 체르노프 얼티밋 스피커케이블


어? 내가 가진 스피커는 그냥 블루투스로 연결하면 바로 들리던데? 그런 스피커를 액티브 스피커라고 하고, 위와 같이 여러 개가 연결되는 방식을 패시브 스피커라고 한다. 액티브 스피커는 간편한 장점이 있지만 음질 면에서 패시브 스피커(라고 쓰고 DAC-Amplifier-Cable 등의 조합이라 얘기함)에 비해 불리하다.

골드문트 미메시스 37S NEXTGEN. 프리앰프 + 텔로스 440 모노블록 파워앰프 세트. 1억 1800만원


처음에 액티브 스피커를 사서 음악을 즐기던 사람도 더 좋은 소리에 욕심이 나서 점점 오디오의 세계에 빠져들면 앞서 얘기한 패시브 스피커의 매력에 굴복할 것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쓰고 있는 앰프와 DAC. 뒤로는 복잡한 선들이 패시브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다


그럼 헤드폰은 왜? 좋은 헤드폰에는 이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다. 물론 헤드폰을 위한 별도의 앰프와 DAC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뛰어난 헤드폰은 자체적으로 뛰어난 DAC와 앰프를 탑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헤드폰은 난다긴다 하는 오디오 회사들이 자신들의 음향 디자인과 메카닉(minimizing?) 실력을 세상에 드러내는 요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은 기기를 통해서도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력을 보여주겠소!'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헤드폰 매니아들은 그들의 노력이 '작은 기기'를 통해서 소리로 전달될 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1억짜리 거대한 괘짝 스피커들의 존재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 그만큼 헤드폰은 오디오 회사들의 총아이며, 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이런 얘기까지 하겠는가?



사실 나는 B&O에 대해서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보기에만 그럴싸하고 정작 실속은 없을 것 같은 느낌? 겉멋? 뭐 그럴 꺼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헤드폰 3대장 중에서 제일 뒤늦게 영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주변 오디오파일들의 평가도 그렇게 나이스하지만은 않았고.. 그러다가 우연히 HX를 청음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라? 나쁘지 않은데..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는 어쩐지 전문성(T+ A, ZMF 등의 미친것 같은?)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뭐 1000만원짜리 헤드폰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선치고 이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중음이 안정적이고, 고음이 시원시원했다. 평가가 박했던 저음역대를 들어보기 위해서 소스 기기를 여러개로 바꿔보면서 들어봤지만.. 나쁜 것을 잘 모르겠다. 아마 내가 평소에 EDM을 주로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하기에는 지금 듣고 있는 클래식도 상당히 괜찮다)


특히 유튜브에서 본 전문가 말대로 아이폰에 잘 어울렸다. DAP로 들으나 아이폰으로 들으나 차이가 이렇게 적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시다시피 아이폰은 AAC로 연결되서 음질이 당연히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괜찮다. AptX adaptive 동글을 굳이 연결할 필요를 아직 못느끼고 있다. 아스텔앤컨 DAP(Aptx HD)에서 이미 증명된 바이기도 하고..


다소 조심스러웠던 헤드폰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검약하다. 자랑할 꺼리도 안되지만, 자랑할 목적도 전혀 없다. 다만 여러분들의 음악 생활에 조금이나마 참고가 됐으면 해서 글을 썼다.


세에레자드 같은 곳에 가서 좋은 헤드폰을 한번쯤은 청음을 경험해보시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https://naver.me/G3JhaEov


똑같은 음악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지 경험해보시기 바란다. 과연 지금까지 듣던 이 노래가 사실은 이런 노래였다는 것을 발견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세상에 막귀는 없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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