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봉 UXer Feb 05. 2024

주말 걷기

금,토,일 도합 50km를 걷고, 190층을 올랐다. 최근 주말은 대부분 이와 유사한 패턴이다. 금요일은 퇴근해서 동네 공원을 돌고(10km 채울때까지), 토요일은 20km 이상의 장거리 걷기를, 일요일은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 4말5초 Swiss trail을 위한 준비다. 


토요일은 얘들 학원보내고, 점심 챙겨주는 등의 일도 있는데, 완연한 10대 후반에 접어든 다음부터는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 이번 설연휴에 가족들과 홍콩-마카오 여행을 가는데 예전에는 일정을 나혼자 오롯이 준비했다면 이제는 각자가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운동을 나서면서 항상 새기는 말이다. 그럼에도 높은 계단을 보면 자연스레 오르고 싶어지고, 경사가 낮은 구간에서는 뛰고 싶고, 빙 돌아가는 길이 있으면 그리로 가고 싶어진다. 그때마다 생동감이 느껴져서 그렇다는데, 그게 신체적인 반응이라기보다는 정서적인 자족감인 것을 볼 때, 아마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프네프린이 분비되나보다. 


토요일 장거리 걷기는 15km를 안쉬고 걷거나 20km를 쉬어가면서 걷는다. 안쉬고 걸을 때는 간식도 걸으면서 먹는다. 물도 걸으면서 마시고, 심지어는 바람막이를 벗어 가방에 넣는 것도 걸어가면서 한다. 지리산 등반이나 제주 올레길 걷기를 해보니 이런 훈련도 필요하겠다 싶었다. 쉬고 싶은 마음이야 불쑥 불쑥 생기지만,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완주하고 나면 힘든데 짜릿하다. 이번 토요일에는 20km를 3번 쉬면서 걸었다. 미리 사온 꼬마김밥도 먹고 프로틴바도 먹고, 신발끈도 풀었다가 묶고.. 쉬면서 하는 장거리 걷기는 오히려 날씨가 좋을 때나 가능하다. 한여름 땡볕이나 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아무리 멋진 벤치가 있다고 한들 앉고 싶은 마음이 들리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주말은 춥지 않아서 좋았다. 미세먼지가 조금 나쁜 것이 흠이긴 했지만..


8말9초에 어디를 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뮌헨-베니스 트레일(traumpfad)을 갈지, (지난번에 소개했던) Jura trail과 GR5를 연계해서 갈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시작하여 암스테르담을 거쳐 독일, 덴마크로 가는 북해 trail을 갈지, 오스트리아 Gmunden에서 시작하여 잘츠카머구트-인스부르크를 거쳐 스위스 접경까지 가는 trail(tyrol 관통)을 갈지 고민중이다. 


뮌헨에서 베니스까지 차로 가면 7~8시간 가량 걸린다. 2019년에 이탈리아 최북단인 Vipiteno에서 베니스까지 당일치기 운전을 한 적이 있었는데, 편도 4시간 가량이 걸렸다. 거기서 뮌헨까지 3~4시간 정도로 어림잡을 수 있으니 7~8시간이라는 계산이 나온 거다. 길도 좋고 경치도 좋지만 이탈리아 운전자들은 최악이다. 도로에서는 최악인 사람들이 직접 만나면 또 친절하다. 

traumpfad는 뮌헨 남쪽에서 시작하여 남부 바이에른 평야를 거친 다음, Lenggries라는 마을에서부터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다. (여기까지 대중교통으로 와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면 독일인들이 Allgau라고 부르는 German Alps를 지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를 거쳐 Sud tyrol로 접어들고, 잠깐의 평원을 지나면 그 유명한 Dolomite 트래킹이 시작된다. 이때까지 이미 10여일동안 트래킹을 한 시점에서 Dolomite를 관통하여 베니스 북부의 Beluno까지 가는 여정이 제일 힘들어 보인다. 


Jura trail과 GR5는 지난번 글에서도 소개해서 따로 상세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으나, 프랑스 여행은 파리보다는 시골 마을 풍경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드프랑스도, 루아르도, 노르망디도, 알자스도 아닌, 이 지역은 어떤 느낌일지 자못 궁금하다. 


북해 trail은 그냥 내가 가져다 붙인 이름이다. 사실은 여러 개의 trail 코스를 '창의적으로' 이어붙여야 가능한 루트이다.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에 잠시 들렸던 게 전부이고 벨기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트래킹이 아니더라도 꼭 가보고 싶다. 풍차를 질리도록 보고 싶기도 하고, '플란더스의 개'라는 소설을 어릴때 워낙 좋아했으며, 덴마크 북부(반도 끄트머리)를 배경으로 한 '정복자 펠레'라는 영화도 너무 감명깊게 봐서 루트를 엮어봤다. (다소 지루할 것으로 여겨지는) 독일 북부 해안 지역은 대중교통으로 빠르게 지나칠 것 같다.


오스트리아 gmunden은 작년에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대만으로 방향을 선회했던 곳이다. gmunden은 Salzburg에서 멀지 않으며,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호수 휴양지이기도 하다. gmunden에서 출발하는 트래킹은 유명한 Halstatt를 지나가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Zell am see 북쪽에 Kitzbuhel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오스트리아 극서부의 Klösterle라는 곳까지 약 15~20박 일정으로 떠나는 게 Tyrol 관통 루트이다. 그러니까 gmunden-halstatt와 Kitzbuhel-Klösterle 2개 trail을 가야 한다는 소리다. 


라이트브레인의 10년 근속 휴가가 없었다면 이런 계획은 은퇴전까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는 것도 고려했을텐데.. 아쉽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드폰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