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트레일을 무사히 다녀왔다. 고산지대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서 위험한 일도 간혹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좋은 추억이었다.
전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루트였다.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내려서 만하임으로 이동, 하루밤 잔뒤, 다음날 아침 인터라켄을 거쳐서 그린델발트로 이동(오후 3시) 짐풀고 가볍게 21번 트래킹 코스를 걷고,
첫째날(일정상으로는 3일차) 30번 멘리헨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갔으나 10킬로 정도를 오른후 500여미터 남겨놓고 눈때문에 실패. 너무 원통했다. 멘리헨 가는 케이블카는
운행중단이고 길조차 막혀있으니 스위스 온 목적을 상실해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종아리까지 푹빠지는 눈밭을 걷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둘째날은 그린델발트에서 Bort까지 올라간 다음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피르스트로 가서 바흐제(Bachsee)까지 트래킹하려고 했으나 눈때문에 실패;; 대신 Schreckfeld-Bort-Grindelwald로 내려가는 트래킹을 함
묶었던 호텔이 그린델발트역 앞에 있었는데 1층에 바가 있어서 이날부터는 트래킹 끝나고 여기 야외테이블에 자리잡고 아이거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서와 그린델발트는 처음이지?
셋째날은 라우터브루넨으로 이동하여 Grutschalp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거기서 뮈렌(Murren)까지 트래킹, 원래는 알멘트호벨까지 오르려고 했으나 역시 눈때문에 길이 막혀서;; 다시 라우터브루넨으로 내려와 반대편 벵겐(Wengen)으로 오르막 트래킹;;; 다시 내려와서 라우터브루넨 폭포 구경
넷째날은 Gletscherdorf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는 그린델발트 반대편 협곡 트래킹. 밑에도 나오지만 여긴 가야한다. 융프라우 올라가서 뿌연 구름 구경하느니 나라면 이 곳을 더 추천하겠다.
다섯째날은 그린델발트를 떠나 눈호강 하겠다고 바젤의 미술관에 갔다가 루체른 옆의 알트골다우로 이동. 이동에만 5시간을 소비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미술관에 가서 정서적으로 충만했다. 화보집을 살까 했는데 너무 커서 포기.
여섯째날은 리기산에 산악열차 타고 올라가서 릿지하이킹을 하려고 했으나 눈때문에 실패 ㅜㅜ 대신 비츠나우 쪽으로 내려와 비츠나우의 숨어있는 트래킹 코스를 돌아다니다가 루체른으로 가서 기념품 삼. 루체른은 두번째라서 익숙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아이들과 돌아다녔던 추억이 자꾸 떠올라 기분이 센티해졌다.
일곱째날은 리기산에 다시 도전. 산악열차 중간에 내려서 Rigi first에서 Rigi sheidegg까지 트래킹하고 다시 Gersau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했으나 길을 잃어버려서 출발 위치였던 Goldau 쪽으로 내려감. 그냥 끝내기 아쉬워서 Stoos 갔으나 푸니쿨라 타고 올라가서 30여분만에 바로 내려옴. 마지막에 Schwiz라는 동네가서 사진찍으며 돌아다님
여덟째날은 트래킹에 지치기도 했고 어짜피 높은 산봉우리들은 눈덮여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원래 목적지인 Stans를 포기하고 남부 스위스로 아침 일찍 떠남. 취리히도 고민했지만 한번 가봤던 탓에 안가본 곳을 골랐다. 남부 스위스의 벨린초와 로카르노를 한량처럼 돌아다니다가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의 Como 호수를 가보기로 결정. 이탈리아로 가서 또 한량처럼 돌아다니다가 돌아옴
마지막은 역시 프랑크푸르트공항, 아니 집까지 가는 긴 여정. 20시간 넘게 이동함
그린델발트는 어딜 가나 이런 그림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음
1.
멘리헨까지 가고자 2시간 30분동안 힘들게 올랐으나 눈밭에 빠져서 죽는 줄 알았음. 겨우 눈밭에서 탈출하여 도로를 발견, 다시 1시간 30분여를 올랐으나 어느 순간 도로마저 눈이 쌓여서 더 이상 올라기지 못하고 포기하는 순간. 너무 아쉬웠음. 눈밭에서 한발자국 한발자국씩 낑낑대며 걷는 게 그렇게 체력소모가 큰 지 몰랐다. 다음에 스위스에 다시 온다면 6~9월 사이에 와야지…
2.
bort에 올라가서.
비교적 쉬운 코스라고 하는데 고도 500미터를 계속 오르기만 하니까 쉽지 않았음. bort에서 9시 시작되는 케이블카를 타고 피르스트에 오르니 관광객은 아직 나밖에 없었음. 평상시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클리프행어를 걸으며 아주 멋진 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음. 그
길 끝의 피르스트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고 있자니 그제서야 그린델발트에서 출발한 관광객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바흐제는 갈 수 없어서 내리막 트래킹 시작. 1000미터를 내려오면 무릅이 아작날 수 있지만 스틱을 요령있게 써서 괜찮았다.
3.
뮈렌에서.
뮈렌은 한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비수기였지만 이 날도 곳곳에서 한국어, 중국어가 들렸다. 알프스 3봉(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보려거든 뮈렌에 가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뮈렌은 생각보다 노잼 마을이다.
뮈렌 반대편인 벵겐에 올라가면서. 여기도 경사가 가파라서 올라가는 데 힘이 들었다. 유럽은 올라가는 길이 우리나라처럼 계단으로 된 게 아니라, 지그재그 방식이다. 몇번이나 턴을 했는지 모르겠다. 중간에 지쳐서 포기하고 대신에 경치나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게다가 이미 벵겐에서 트래킹을 5km 정도 한 다음이었지만, 풍경보면서 힘을 냈다. 벵겐은 뮈렌보단 규모도 크고 볼거리가 많았다.
4.
그린델발트 최고의 트래킹이었던 Gletscherdorf. 스위스는 다 예쁘고 멋있지만 꼭 하나만 꼽으라면 리기산과 여기를 꼽겠다. 그야말로 천상계이다. 쉬렉호른과 아이거 사이의 무시무시한 협곡을 가로질러 갈 때에는 아찔했지만 너무 멋있는 풍경에 한편으로는 눈을 떼지 못했다. 힘들고 더워서 얼굴이 빨갛다. 이 협곡 사이를 외줄타고 건너가는 사람도 있다. 협곡을 지나 트레일 코스를 쭉 따라가다보면 농장들이 군데군데 나오는데 위의 동영상이 거기서 찍은 것이다. 소똥냄새가 진동하는데 쉴 벤치가 잘 마련되어 있고 풍경도 운치있어서 매번 고민을 해야했다.
5.
그린델발트에서 루체른으로 이동하는 날에 바젤 미술관에 갔다. 빙 돌아가야 했음에도 평소에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젤미술관은 취리히미술관과 더불어 스위스를 대표하며, 스위스 화가중 최고로 손꼽히는 호들러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몇일동안 산타고 소똥냄새만 맡다가 와서 그런지 스스로가 촌넘처럼 느껴졌다. 바젤은 멋진 도시였다.
6.
리기산 정상에 간 날.
전날에 비가 와서 그런지 눈이 생각보다 많이 쌓여 있었다. 날씨도 너무 추워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바로 내려갔다. 리기산 정상인 리기쿨럼에서 보는 풍경(루체른 호수)도 멋지지만 중턱인 리기 피르스트에서 보는 풍경이 더 멋있었다. 다음날에 안 사실.
비츠나우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트래킹 코스로 접어들었는데, 너무 환상적인 길이었다. 오르막도 별로 없어서 누구나 올 수 있어 보였으나, 사람들은 대부분 비츠나우에 짧게 머물기 때문에 여기를 모르는 것 같았다. 길 가다 만난 이 폭포가 특히 환상적이었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폭포가 크다. 한 20미터? 하루종일 그늘인 곳이라 춥지만 않았다면 계속 머물고 싶었다.
7.
다음날 다시 도전한 리기산 트래킹.
리기산이 산중의 여왕이라고? 인정한다. 백번 인정. 리기 피르스트에서 리기 샤이덱까지의 6km 트레일 코스는 오르내리막도 별로 없고 환상적인 뷰를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중간에 난 잔도 코스는 정말 원더풀하다. 나중에 리기산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트래킹도 염두에 두시길.. 그러나 리기 샤이덱에서 1500미터 가까이를 내려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솔방울이나 젖은 낙엽에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질 뻔 하기도 했다. 그냥 산악열차타고 내려갈걸 하고 몇번이나 후회했다.
스투스의 유명한 푸니쿨라 올라가는 길. 저 경사를 올라간다고? 하고 놀랐는데 막상 푸니쿨라를 타니 경사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투스는 저 오르막 끝에 있는 산속 마을이며 거기서 클링앤스톡까지 트래킹이 시작된다. 풍경이 매우 좋지만 리기산보고 온 사람들에게는 글쎄... 솔직히 루체른 부근의 트레일 코스 풍경은 비슷비슷하다.
8.
남부 스위스 당일치기 여행
벨린초애서 성들을 구경하고 로카르노에서 호수변을 따라 걸었다.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마트인 COOP외에는 거의 돈 쓸 일이 없었는데(맨날 산속에만 있었으니까) 스위스 여행중 처음으로 단 맛을 맛본 때이다. 오른쪽 지도는 로카르노에서 스위스 국경도시인 Chiasso(키아소)로 가는 경로. 원래는 루가노를 가려고 했지만 갑자기 스위스가 식상해지기도 했고 이탈리아가 보고 싶어졌다. 키아소에 가서 도보로 이탈리아 Como로 넘어갔다. 10분 소요. 국경 사무소가 있어서 안되는 줄 알았는데 그냥 무사통과였다. 이탈리아에 오니 생기가 돌았다. 스위스와는 다른 뭔가 더 편안한 감성. 자유로운 무질서함 ㅋㅋ
내가 살면서 본 호수 중에는 Como 호수가 탑이다.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왔을때 이 호수 부근에서 로마군을 격파했었지? 하는 쓸데없는 잔지식을 떠올리며 호수변을 마냥 걸었다. 남쪽으로 내려오니 날씨가 여름 같았다. 이 날은 호수 남쪽 축구경기장에서 시합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폭죽 터트리고 폭주족들이 오토바이 몰고 다니고.. 처음에는 폭동이 일어난 줄 알았다.
이상으로 Swiss trail 여행 후기를 마친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봐 정보 공유 차원에서 올린다. 제 인스타그램(ID: design2future)에 가면 더 많은 내용들을 보실 수 있다. 혹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답변드리겠다.
Swiss trail의 장점
-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하면서 다닐 수 있다
- trail을 해야지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광경들이 여기 저기에 숨어 있다
- 트레일 코스가 잘 구비되어 있다. 가팔라서 그렇지 다니기는 어렵지 않다.
- 다양한 난이도의 코스들이 있다.
Swiss trail의 단점
- 쉽다는 코스도 그렇게 쉽지 않다. 정말 쉽다는 게 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 쉴만한 곳이나 화장실이 적고, 표지판이 꼭 필요한 때에 안보일 때가 있다.
- 너무 경치가 좋아서 계속 중간에 멈춰서게 된다. 진도가 쉽게 나가지 않는다.
- 올라갈 길이 눈 앞에 훤히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시계가 나무에 가려져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다 보인다. 끝없이 구비 구비 이어진 길을 보고 있노라면 헛웃음이 먼저 나온다. 계속 보고 있으면 의욕이 저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