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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회랑

by 조성봉 UXer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조카가 이번주 월요일 저녁에 조원들 3명을 동반하여 회사를 방문했다. 학교 과제를 내게 보여주고 뭐라도 조언을 얻고 싶다는 연락이 사전에 있었는데.. '전자공학부', 그것도 통신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과연 도움이 될까? 회의적이었지만.. 조카가 생각이 있겠거니 싶어서 어쨌든 만나보기로 했다.


11학번부터 13학번까지 남학생 둘, 여학생 둘(조카 포함)이 왔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아이스브레이킹도 없이 바로 노트북을 연결하고, 과제 시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이 친구들 꽤 진지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제는 AI 기술을 도용한 Deepfake를 막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내가 잔소리라도 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30여분동안 이런 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학생다운 설익음이 눈에 띄였지만, 얘기하다보니 이래저래 한계를 극복하고 나면 제법 괜찮은 서비스가 될 수 있어 보였다.


놀랍게도 이들은 통신공학 전공이라는 편견과는 무색하게 UX에 대한 이해가 제법 있었다. 사전에 내 책도 읽어보고, 내 블로그(여기 말고 네이버)도 열심히 봤단다. 과제 리뷰가 대충 끝나고 각자 준비한 개인적인 질문들을 하는데 얘길 하면서 문득 내가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읉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주전에 만났던 취준생에게도, 한달 전에 만났던 다른 경력직 취업준비생에게도 했던 얘기를 앵무새처럼 똑같이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최근에 시류(trend)를 읽는 것을 게을리했던 지, 아니면 지금의 시대정신 자체가 한 방향으로 쏠려있던 지, 둘 중에 하나였다. 그 뒤로 며칠동안 고민해봐도 나의 게으름 탓보다는 시대정신 자체가 너무 뻔히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AI라는 대전제 하에 LLM이나 AI Agent를 활용한 지식노동 대체(예를 들어 바이럴 코딩이나 앱디자인 같은 것),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위험성, 그렇다고 누구한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도구들(LLM같은 것)에 대한 특화된 차별성 따위도 없다. 기껏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더 비싼 구독료를 지불하거나, (나처럼) 더 많은 AI 서비스들을 이용하는 것 뿐이다.


한참 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차트보는 법을 배울 때, 엘리어트 파동이 어쩌고 볼린저밴드가 어쩌고 하는 것을 머리 아프게 배우다가, 설마 싶어서 어떤 종목의 6개월치 차트를 이미지로 캡처한 다음, LLM에게 물어보니(이평선, 엘리어트 파동, MACD, 볼린저밴드 4가지 관점에서의 분석 요청) 아주 잘 분석해주었다. 종목명을 일부러 숨겼는데도 어떤 섹터에 해당하는 종목인지도 은근히 얘기하고 있었다. 차트쟁이가 왜 필요한가? 각종 지표들의 개념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사림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정의에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을 계획하는 것은 사람이 할지라도, 어차피 일의 대부분은 사람이 아닌 AI가 한다. 몇몇 AI Agent들은 계획조차도 사람의 개입을 점점 더 대체하고 있다. 그럼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시킨다는 말인가? 더 정교한 프롬프트/파라미터를 던질 수 있는 전문 지식? 그것조차도 반나절이면 학습이 가능한 시대이지 않던가... 물론 누군가 반나절만에 UX 디자인 분야의 주요 범주와 개념 체계를 이해했다고 주장한다면 욱하겠지만, 그가 LLM과 상호작용하면서 꼭 필요한 기초 지식들을 쏙쏙 파악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이 든다.


아직은 지식노동자들에게 위기로 다가오지만, 얼마 않있어 육체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위기가 만연될 것이다. 이 좁다란 회랑은 다른 선택지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흘러가다, 좁다란 회랑의 끝에 가면 특이점(Singularity)가 나오던지, 아니면 2000년대의 인터넷 붐처럼 새로운 세계들이 빅뱅하던지 하겠지.. 현재로써는 그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점점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나는 원래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서 은퇴를 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려고 했었다. 나를 붙잡은 건 그 시기에 나온 LLM의 물결이었다. 그래서 한참 재밌게 지난 3년을 보냈는데, 끝을 노정한 사람이기에 마지막을 불태운다고 생각하고 재미를 느꼈지.. 이제 막 시작하는, 또는 한참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 입장이라면 재미보다는 위기를 더 많이 느꼈을 것이다.


이 좁다란 회랑은 우리에게 선택지조차 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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