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UX 시리즈
(이 글은 Amazon AWS 뉴스레터 2019년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제 AI는 많은 분야에서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AI의 놀라운 발전상에 대한 뉴스가 넘치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똑똑해진 서비스를 만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뉴욕경찰에서는 AI를 이용하여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서울시에서도 불법 대부업체와 같은 민생범죄를 수사하는 데 AI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 AI는 더 이상 IBM, Google, Amazon, Baidu와 같은 거대 Tech 기업들이나 Uber, Netflix, Spotify 같은 몇몇 선도적인 서비스 기업에서의 얘기가 아니다. 앞서 소개했던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수많은 민간 서비스 기업들이 너도 나도 AI의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이제 AI는 본격적인 실전단계로 양상이 변화되고 있다. 머신러닝, 딥러닝, 강화학습과 같은 기술적인 논의에서 실생활에서의 구체적인 사용자 경험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패러다임 변화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기술적인 가능성에서 출발하지만 기술이 성숙되어 나감에 따라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모든 AI 논의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AI 기술 그 자체가 많은 변화를 이미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더 뛰어난 자연어 처리나 상황인식 능력은 기존 서비스가 갖는 한계를 단번에 바꿔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영역에서는 단지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더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AI 자체만으로는 멋진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과연 AI와 UX가 접목될 수 있는 지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기존 UX의 한계를 AI가어떻게 도와줄 수 있으며, 거꾸로 AI가 갖는 한계를 UX가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이 주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을 지각(Perception)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지각능력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실제 눈 앞에 벌어지는 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 들이며, 주의력이 부족하여 못 보는 경우도 있고, 보거나 들었지만 그 기억을 왜곡하는 경향도 있다. 이러한 인간 지각 능력의 한계를 UX에서는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특정 상황에서 무엇을 지각하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 지를 별도로 조사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현실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AI를 이용하면 인간 지각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AI의 감정인식 기술은 매우 정확하게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고, 상황인식 기술은 출근길에 우연히 들은 노래가 무엇인지를 (약간만 흥얼거리면)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 AI는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을 통해서 우리의 활동을 추적할 수 있고 지나다닌 장소/시간에 따른 감정 변화나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AI의 인식 능력을 활용하면 우리는 인간의 지각능력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이전보다 좀 더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AI가 얼굴 표정이나 신체 리듬의 변화를 모니터링 하여 좀 더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개성과 특성을 파악하게 해 주고, 그에 걸맞게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인간이 스스로는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기피, 불안, 염려, 갈등을 알려주거나 그 데이터에 기반해서 실수와 잘못된 판단을 줄여줄 수 있다.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위험요소들을 미연에 막아주면서 좀 더 건강하고 즐거운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왜곡된 기억과 주의력 부족으로 인해서 파생되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보조가 가능해진다. 때로는 엄마처럼 따뜻하게 돌봐주고, 때로는 비서나 집사처럼 잊기 쉬운 약속과 귀찮은 일들을 챙겨주고, 때로는 친구처럼 위로하고 보듬어 주면서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한계들을 극복하게 해 준다.
Tiktok으로 유명한 중국 바이트댄스의 창업자 장이밍이 여행 검색 회사에서 일할 때 일화이다. 온라인에서 열차 표를 구하려면 사용자가 직접 원하는 시간대와 장소를 입력하면서 실시간으로 체크해야 하는 데, 명절과 같은 시기에는 취소표가 언제 나올 지 몰라서 사용자들이 같은 검색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야 했다. 장이밍은 이 점에 착안해서 AI가 자동으로 취소 표를 조회해 주고 그것을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는 항공편을 예매하기까지 50에서 100번 정도 검색을 반복한다. 항공기 티켓 가격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출발까지 남은 기간, 조회를 시도한 요일, 유가 변동 등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가성비가 높은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서이다.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효과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이처럼 일상생활 중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반복적인 행동들이 제법 많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날씨를 확인하거나,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주식/환율 체크, 출퇴근 대중교통 도착 시간 조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반복적인 행동에 더해서 ‘지금 이 제품을 사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내적 갈등이나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이 만들어 낸 편향(bias)이 심적 피로감과 시간 낭비를 더 부추기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앞으로는 AI가 우리의 이런 어리석은 행동들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AI는 우리보다 고민은 덜 하면서 결과는 더 똑똑하게 찾아줄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AI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어째서 AI가 우리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일까? 가장 대표적인 패턴 몇 가지만 들어보자.
- AI는 인간보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린다
항공권을 구매할 때,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가격 외에 항공사, 경유 여부, 출/도착 시간 등을 같이 따져본다. 더불어 비행기 종류나 좌석 크기, 판매처도 중요시 여길 때가 있다. AI는 이러한 사용자의 관심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일반적인 사용자들은 알 수 없는 항공권 가격 결정 구조와 과거의 항공권 가격 변동 기록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장 적절한 항공권 구매 시기를 사용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인간보다 신뢰성 높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전문가를 AI는 모방하고, 뛰어넘을 수 있다.
특정 상품의 가격이 어떤 주기로, 왜 변동되는 지 알고 있는 사람은 더 영리하게 가격을 체크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니까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인데 AI는 우리 중 가장 뛰어난 전문가를 모방하면서 필요한 시점에만 정보를 조회하고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게 가능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 알고 보면 불필요했던 과정을 축소시키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기존 질서와 권위에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계좌 개설이나 서류 심사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절차를 요구해도 사용자들은 군말 없이 이를 따라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과정을 AI가 축소하거나 대체하는 일이 많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일이 비밀번호를 넣어야 했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홍채나 지문으로 그 과정을 대체하고 있다. 앞으로는 생체 인증만 받으면 기존에 입력해 놓았던 개인 정보를 한번에 불러오는 것은 물론, 긴 약관을 다 읽지 않아도 사용자가 꼭 확인해야만 하는 필수 정보만 간추려서 보여주고, 기존과는 다른 패턴의 의사결정을 하려고 할 시에는 그에 따른 위험요소와 예상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등으로 사용자를 도와줄 것이다.
얼마 전에 저명한 과학 잡지인 ‘Nature’지에 “Artificial intelligence alone won't solve the complexity of Earth sciences”라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지구과학의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단지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다양한 변수와 각 영역들(예: 대기, 해양, 자동차 운행)간의 상관관계를 미리 모델링하여 통합된 접근과 견고한 신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UX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영역은 아닐지라도 AI 자체만으로는 멋진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가 존재한다. 사용자들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영역에서는 AI도 (데이터를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한다. 데이터를 가공하고 분석해서 보여주면 끝이 아니라 데이터의 세기에 따라서 사용자들을 적합한 경험으로 이어줘야 한다.
길 찾기(Navigation)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대다수 사용자들은 길 찾기 서비스 이용시 경로 효율성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경로 효율성이란 ‘현재 위치에서 특정 위치까지 가장 빠르고 저렴하면서 덜 걷는 교통수단을 의미한다.) 그러나 갑자기 날씨가 나빠진 경우에는 경로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이동시 쾌적성도 중요하게 여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비를 맞지 않고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내리거나 태풍이 불면 어떨까? 최악의 기상 상황에서 꼭 어딘가를 가야만 한다면 ‘안전한 이동’에 대한 니즈가 갑자기 높아질 것이다. 날씨를 예로 들었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더 개입될 수 있다. 중간에 장을 봐야 한다거나 가는 도중에 멋진 벚꽃 길을 지나가고 싶다는 등의..
대부분의 길 찾기 서비스에는 이미 AI가 결합되어 있다. 실시간 교통상황 데이터를 수집하여 사용자가 입력한 경로에 맞게 분석한 다음 가장 경로 효율성이 높은 교통수단을 제시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날씨 데이터를 UX 모델링에 고려한 서비스는 아직 못 본 것 같다. 아직까지는 AI와 UX가 다소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 앞으로 우리는 실제 사용자들의 관심사, 고민, 갈등을 다양한 외부 변수와 더불어 모델링 하여 좀 더 가치 있는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UX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 같은 사람에게 AI는 축복처럼 느껴지는 선물이다. 지금까지는 포기하고 있었던 한계들이 AI라는 도구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숙제 또한 많이 남게 되었다. AI와 UX를 잘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노력들이 요구되고 있다. 그 노력들이 무엇인지를 짧게 살펴보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기존] 인간은 원래 주의력이 부족하고 생각하기를 싫어하니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 [향후] AI 기술을 활용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다음에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기존] 원래 이 서비스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 돼 → [향후] AI를 통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데, 그런 다음에 남을 사용자들의 또 다른 고민들은 어떻게 해소할까?
[기존] 접근하기 쉽고 검색하기 쉽게 만들자 → [향후] 굳이 사용자가 검색해야 할까? 그들의 의도만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에 맞춰진 결과를 단번에 보여줄 수 있을텐데
[기존] 일반적으로 이 서비스에서 사용자들이 원하는 경험은 이거야 → 외부 상황과 변수에 따라 사용자들이 원하는 경험이 달라질 텐데, AI를 통해서 그것을 어떻게 다르게 제공할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텔레콤, 두산 등 주요 기업들의 UX 컨설팅을 도와주고 있으며 최근에는 AI/UX라는 화두로 HCI 학회나 전자공학회 등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음. 디자인진흥원 국가인적자원개발 자문위원, 금융연수원 UI/UX 강사
라이트브레인은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개선하며, 혁신으로 이끈다.’는 사명 아래 10년 이상 업계를 선도해 온 UX(사용자경험) 디자인 및 컨설팅 전문기업으로, 정교화된 프로세스와 수행인력의 전문성을 통해 감각적 디자인을 넘어 사용자의 삶과 공간, 기술과의 소통까지 생각하는 통합 UX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