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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May 12. 2023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Winter is coming

주역 64궤 중 중지곤(重地坤)의 첫 효에 대한 효사는 이상견빙지(至)입니다. 주역이 배우기 어려운 이유가 궤사에 대한 풀이도 있고, 각 효(하나의 궤는 6개의 효로 구성)에 대한 풀이도 따로 있기 때문인데(심지어는 궤나 효끼리의 관계에 대한 풀이도 따로 있음), 이를 직역하자면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을 밟을 때도 곧 닥친다'는 뜻이지만, 쉽게 말해 "어떤 징후가 보이면 곧 큰일이 닥칠 것이다, 경계하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년 전에 재미있게 봤던 '왕좌의 게임'에서 'Winter is coming'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었는데 그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 많은 전문가들이 예견하는 경제 위기의 색다른 점은 이전까지와는 질감이 전혀 다른 근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여겨 왔던 것들이 부정될 수 있다는 근거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시 여겨 왔던 것들이기에 체감되지 않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 의한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 금융체제와 해상무역로 안전

- 미국 채권이 최후의 안전망이라는 인식

-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과 그에 따른 수혜 (특히 우리나라는 가장 큰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인정안하고 있는 것 같더라구요)

- 세계화, (약간의 다름이 존재하지만 어쨌든) 세계가 하나라는 인식

- 민주주의의 전지구적 확산

- 실물경제와 금융경제라는 양대 축의 조화

- 중동 헤게모니 국가들(사우디, UAE)의 중립성

- 식량 및 자원이 언제까지나 전세계적인 범위 내에서 통제될 수 있다는 믿음

- 앞으로도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을 견인해나갈 것이라는 믿음

- 자유로운 국가간 이동, 상호 호혜주의

- (약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예년과 비숫한 기후가 올해도 지속되리라는 믿음


위 사실들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정신이 멍해집니다. 

- 가령 미국이 더 이상 세계경찰 노릇을 안하겠다는 트럼피즘

- 달러가 더 이상 기축통화로써의 역할을 못할 것이라는 전망, 

- 안전의 대명사였던 미국 채권의 불안 고조, 

- 미국 정부의 채무 위기, 

-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실제 이유가 사실은 TSMC 때문이라는 점, 

- 앙숙이었던 사우디와 이란이 중국의 조율 하에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는 점, 

-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강대국들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 중심 헤게모니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점

-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으로 인한 중앙아시아/아프리카/서남아 국가들의 수조달러 부채가 실제로는 상환계획이 거의 없다는 점, 

- 그로 인해 중국은 (채무가 상환되는) 2020년대 중후반에 큰 재정 위기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점,

- 점점 많은 기후학자들이 이제는 환경문제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 

-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가 제 스스로 고립의 무덤을 팠다는 점, 

- 그로 인해 우리나라의 중장기적인 선택지가 매우 좁아졌다는 점, 

- 수출 위주의 우리나라 경제는 현 정부의 진영논리 가속화로 인하여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911사태가 난 다음날, 워싱턴포스트지에는 '역사의 휴일은 끝났다(The End of Our Holiday From History)'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역사의 휴일이 끝난 것 같습니다. 전후 세대가, 탈냉전 이후 세대가 전혀 몰랐던 시대가 이제는 펼쳐지려 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너무나 당연시여겨왔던 '세계화/민주화, 미국화폐/중국공장, 기술혁신/경제성장, 한국수출/경제성장'의 Balance 공식이 이제는 깨질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생각해야만 합니다. 제가 위에서 얘기한 게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확인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계획하신 미래는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계획이 없었다면 지금은 세워야 합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Winter i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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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손자병법에 가까운 곳을 치려면 먼 곳을 치려는 것처럼 보이라는 말(聲東擊西)이 있습니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손자병법을 안읽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이 대만을 침공하기 전에 반드시 먼 곳에서 먼저 연기가 날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미국이나 미국의 이익에 묶인 곳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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