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의 UX인사평가 관련 자문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UX 직무 종사자들을 어떤 항목으로 평가할 지에 대해서 함께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어떤 외부 전문가 한분이 UX 전공자 가산점을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엥? 실무는 해보신 분인가? 속으로 표나지 않게 웃었습니다.
UX 전공이라? 도데체 어떤 학과를 UX 전공이라고 할 수 있지? HCI? 인터렉션 디자인?
UX Design은 다학제적이고 프로세스 상에서 다방면의 역량이 요구되기 때문에 때로는 심리나 사회과학이, 때로는 경영이나 마케팅이, 때로는 산업디자인이나 시각디자인이 유효합니다. HCI나 인터렉션디자인이 UX 디자인에 가장 가깝다는 상식을 부인할 의도는 없습니다만, HCI, 인터렉션디자인 전공자들이 UX에 최적합하다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확률적으로 따져볼 때, 제가 지금까지 겪어본 가장 뛰어난 인재들은 뇌과학이나 융합디자인 쪽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공에 대한 가산점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20%를 넘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치열한 현장'에서 다양한 인재들과 일해본 경험에 따르면 전공보다는 경험이, 경험보다는 지성이, 지성보다는 재능이 중요하더라구요.
네. 재능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한시간이건 두시간이건 떠들 수 있습니다 ㅎㅎ)
사람들을 깊이있게 공감하고, 대상 제품/서비스와 관련된 환경과 조건들을 넓게 통찰하며, 불특정한 정보들을 취합해서 패턴을 찾고 하나의 모델로 형상화시킬 수 있으며, 주어진 사실 이면에 깔려 있는 숨은 그림을 찾을 줄 알고,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면서 다양한 생각의 방식들을 시도하고, 주어진 대상이 필요로 하는 디자인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그(녀)는 UX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역량들을 고루 갖춘 사람은 극히 드문 편이고, 누구나 해봤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난이도 높은 도전에 부딪혔을 때 실제로도 잘 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영역이죠.
얼마 전에 읽던 소설에서 좋은 글귀가 이것을 잘 대변하고 있기에 여기에 실어 봅니다.
"전략전술이란 어짜피 훈련의 영역,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평범한 이를 가르쳐 도달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 어떤 선을 넘는 데에는 재능이 필수불가결이다." - 흑색화약의 용병대장 中
ps
이제는 디자인 전공 분야에서도 UX 디자인이 필요로 하는 필드리서치나 모델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산업/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은 구체적인 디자인 표현 능력 면에서도 선호하는 편입니다.
순수미술 전공자들은 대상을 날카롭고 깊이있게 분석하는 역량이 대체로 뛰어났습니다. 사물을 더 본질적으로 관조한다고 할까요?
AI에 의한 서비스들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컴퓨터공학/과학 전공자들도 점점 더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AI 알고리즘 자체를 설계하는 능력보다는 데이터에 의한 UX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적인 UX도 중요하기 때문에 인문학 전공자들도 눈여겨 봅니다. 다만 UX 디자인은 구체적인 비즈니스 활동의 일환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사고와 다소 괴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