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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Jun 30. 2023

Gemütlichkeit

정신적 풍요

오랫동안 함께해 온 동료중 한 명이 요새들어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한데, 병원에서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가장 걱정거리는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이란다. 먹는 것을 워낙에 좋아하는 친구이다.


"그럼 나처럼 해 봐"

"......?"

"먹는 양을 줄이는 것 대신에 먹는 방법을 바꾸는 거지. 가령 아침은 사과와 블루베리, 요거트를 배부르게 먹고, 고기를 먹고 싶을 때는 튀기거나 굽는 것 대신에 보쌈이나 족발 같은 '찐 고기'를 많은 채소를 곁들여서 먹는 거지"

"에이... 그래도 먹는 재미가..."

"먹는 재미, 그거 바뀌더라. 나도 재작년까지는 '그렇게 먹고 살거면 차라리 죽고 말지'하던 사람이였어"

"그럴까요?"

"일단 해 봐. 사과, 고구마, 블루베리, 달걀, 아보카도, 요거트, 감자의 맛을 알아가는 거지"


얼마 안 있어 다시 만났을 때, 위 동료는 자신도 사과와 블루베리를 아침에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우리 라이트브레인 컨설팅그룹 동료들은 하나같이 의미있지만, 오랫동안 같이 일한 동료들은 더 특별하게 느껴지니까. 그녀가 일단 식습관을 고치고, 점점 활동량을 늘리고, 자신에 맞는 운동도 찾기를 바란다. 


습관이라는 게 무섭다. 나는 오늘 아침도 사과퓨레와 블루베리/아보카도/호두/호박씨/요거트를 먹고 나왔다. 거기에 모닝커피를 곁들이니 아직까지 포만감이 느껴진다. 

저녁은 가급적 7시 전에 먹는다. 아침은 8시 이후에 먹고. 점심은 약속이 없는한 삶은계란과 고구마를 먹는다. 저녁은 약속이 있을 때가 많아서 내 맘대로 통제되진 않지만 술을 자제하고 가급적 일찍 만나서 일찍 헤어지려고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운동도 한다. 유튜브로 경제 관련 영상을 틀어놓고 체조, 줄넘기, 푸쉬업, 스쿼트 등을 30여분 가량 한다. 회사에 도착하면 계단으로 오른다. 엘리베이터는 일주일에 1~2번 이용할까말까 한다. 


억울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갑자기 몸에서 이상신호가 오자 미뤄놨던 세계여행, 유명 유적지/미술관/건축물 탐방을 못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버킷리스트 100개 중에서 아직 12개 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아직 남은게 88가지나 되는 데 이젠 몸이 안좋아서 그것을 못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하다 말기도 하고, 나한테 맞지 않는 활동들을 선택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 내가 정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가 뭘까? 10년뒤, 20년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은 뭘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하나 둘씩 내게 맞는 활동들을 찾아갔다. 


가장 첫번째로 한 것은 술을 줄인 것이다. 꼭 마셔야 할 일이 아니면 절대 술을 찾지 않았다. 특히 혼술. 원래는 서재에서 혼자 맥주나 위스키를 홀짝 거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혼술을 하지 않는다. 친한 지인들을 만나서 가끔 소주나 와인 마시는 게 전부다. 


그리고 책이나 인터넷, 유튜브로 많은 정보들을 섭렵하고, 하나씩 시도해보고 맞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렸다. 골프나 런닝같은 게 대표적이다. 남들이 좋아한다고 내가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궁합이 따로 있는 것이다. 등산도 어딘지 내게 맞지 않았다. 오르는 것을 무서워해서가 아니다. 무조건 정상을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싫었다. 그냥 한가로이 숲을 거니는 게 더 좋았다. 그러다가 정상이 보이면 그냥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자 몸에 활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늘상 부대꼈던 소화기관들이 가장 먼저 변화됐다. 미세하게 느껴지던 몸 이곳저곳의 통증들도 점차 사라졌다. 뱃살도 점점 사라져갔다. 계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도 숨이 가빠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사느니 죽고 말지" 하고 치맥과 삼겹살&소주를 예찬하는 분들에게 기꺼이 내 몸의 변화를 얘기해주고 싶다. 


덕분에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중강도 운동을,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고강도 운동을 하게 되었다. 일년에 세차례 이상 해외에 나간다. 앞으로 계속 나갈 계획이다. 다행히 아이들의 성장기였던 지난 2010년대에 여행과 관련한 많은 노하우가 쌓인 덕분에 프라도나 오르쉐 미술관을 다시 갈 계획을 쉽게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뱅엔의 트래킹 코스를, 알자스 지방에 있는 르꼬르뷔지에의 건축물을 어떻게 찾아갈 지 걱정하지 않는다. 나한테는 위대한 작품 앞에 섰을 때의 희열이 도박과 같다. 그 짜릿함과 가슴어림이 내게는 정신적 풍요이다. 베르나 아레나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들었을 때도 정말 행복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런데 아직 모스크바에 가서 발레도 봐야 하고, 빌브라이튼의 책을 들고 오로라를 보러 트롬쇠도 가봐야 한다.


정신적 풍요는 건강한 육체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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