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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Jul 04. 2023

사유원

1년전 오늘 경북 군위에 있는 사유원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아직 무더운 여름도, 본격적인 휴가시즌도 사직하기 전.. 나는 건강을 핑계로 회사 일을 잠시 내려놓은 채 가장 안가봤던 지역들을 탐방하기로 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와 고요하게 고속도로를 항주했다. 제한속도에 반자율주행 모드를 맞춰놓고 멍하니 밝아오는 여명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평안해져서 '지금부터 남은 생은 이렇게 노는 건 어떨까?'하는 유혹이 불쑥 들었다.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트럭들 다음으로 느리게 내려가다가 청송에서 차를 멈췄다.


1차 목적지는 주왕산이었다. 누군가 쉽게 산을 오르고 싶은데, 비경은 보고 싶어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주왕산에 가세요'라고 얘기할거다. 주왕산의 절경은 걷기 편한 초반 2시간 정도에 몰려 있다. 웅장하고 장엄하지는 않지만 연신 감탄을 자아내는 절경임에는 틀림없다. 오르막길이 거의 없다는 점과 기암괴석이 바로 눈 앞의 등산로 한가운데 있다는 게 매력 있다. 


두번째로 포항에 갔다. 내연산에 들렸다가 포항 시내에서 하릴없이 머무르며 동네도 돌아다니고 시장도 갔다. 다음날에는 호미곶도 가보고 토끼꼬리 반도(?)를 빙 돌아봤다. 우리나라 2차산업의 요람인 POSCO도 중간에 구경했다. 


다시 쭈욱 내려가서 경주문무대왕릉에 들렸다가 파도소리길을 조금 걷고, 이번에는 불국사와 국립경주박물관에 갔다. 불국사 매점앞 파라솔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스님들과 관광객들을 구경했다. 이미 몇 번이나 불국사를 방문한 터라 새삼 흥미로울만한 것은 없었다. 대강 눈에 띄는 경치나 찍다가 중간에 점심을 먹고 토함산을 내려가 국립경주박물관에 갔다. 


나는 소싯적에 역사학도를 꿈꿨을 정도로 박물관을 좋아한다. 저 수메르, 바빌론, 이집트 문명도 좋아했지만 우리나라 삼국시대 유물들을 구경하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경주박물관에는 신라 1000년 역사가 잘 진열되어 있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정교한 금속공예, 조각, 회화가 가능했는지 연신 감탄하면서 그날 내내 경주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다음날은 황룡사지와 계림, 동궁과 월지를 구경했다. 혼자서 맛있는 것도 사먹고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4일을 보내고 나니 남은 하루는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몇주전에 어느 항공사 잡지에서 봤었던 경북 군위의 '사유원'이 생각났다. 오픈한지 5년도 채안된 신상이다. 정말 엉똥한 곳에 만들어진 엉뚱한 컨셉의 장소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곳이 생겨났다는 게 우리나라가 더 선진국같이 느껴진다.


경주에서 한 시간 거리. 어느 재벌회장님의 집념과 승효상 선생님을 비롯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참여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보긴 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그냥 사진찍을 만한 게 있겠지 싶어서 향했던 것 같다. 


입장료 5만원. 올라가는 길이 험하다고 입구앞 지도에 써있다. 5만원짜리 등산이라는건가? 아니나다를까 입구에서 첫번째 건축물까지 가는 데 이미 땀이 한바가지는 흘렀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있고, 가족이나 연인을 동반해서 온 사람도 있다. 등산객처럼 대충 둘러보면서 성큼성큼 정상에 있는 카페로 가는 사람도 있고, 좀 더 여유있게 하나 하나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오랫동안 각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야. 이게 건축의 세계구나. 곳곳에 숨어있는 도형들을 봐'

올라가는 게 힘들긴 했지만, 사유원이 보여주는 의도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5만원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


정상에는 꽤 그럴싸한 카페가 있다. 앉아서 쉬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오기 잘했네...'



여러분들도 한번쯤 가보시기를 권한다. 무더운 날씨는 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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