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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Aug 17. 2023

Bankok

여름 휴가로 방콕에 다녀왔다. 20년만에 찾아 간 방콕은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다. 높은 빌딩과 잘 갖춰진 대중교통,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 나은 신호체계까지.. 그러면서도 방콕만의 바이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게 좋았다.

호텔 로비와 그곳에서 사진찍는 두 딸들

여행와서도 늦잠자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오전시간에 혼자서 방콕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습도가 높아서인지 날씨가 서울보다 약간 더 더웠지만 못다닐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왓 뜨라이밋(황금불 사원)을 갔다가 지나치게 된 차이나타운


볼 게 적지 않았지만, 사원보다는 차이나타운 골목길들이 아주 인상깊었다. 일요일 오전의 느긋한 분위기, 여유있게 차를 즐기러 나온 주민들, 탁발하러 다니는 승려, 아직 관광객들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거리... 내가 방콕에 기대했던 게 거기 다 있었다. 현지인들 옆에 앉아 차를 한잔 사마시고, 담배인지 대마초인지 모를 냄새를 맡아가며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물론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하지만 점심 전에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해서 차이나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왓포로 향했다.

방콕 버스에는 요금을 걷으러 다니는 차장이 있다. 거리에 디지털 디스플레이들이 넘쳐나는데, 아직 이런 아날로그도 남아 있다.


왓포는 방콕 왕궁과 붙어 있다. 그래서인지 규모가 상당하다. 200바트라는 다소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이 넘쳐 났다. 사진 찍을게 너무 많은데 날씨는 또 너무 덥구,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중간 중간 그늘을 찾아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터미널21, 시암파라곤, 아이콘시암 등의 유명 쇼핑몰들을 돌아다니고, 아들과 둘이서 무에타이 경기를 보러 가고, 밤마다 유명 야시장을 찾아다니고, 힘들고 덥다 싶으면 1일 1마사지를 찾아 다녔다.

사실 동남아 유명 관광지들은 우리 가족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들은 아니다. 로컬스럽다 싶으면 불편함이 따르고, 편리하다 싶으면 관광의 여흥이 사라진다. 와이프는 프랑스, 첫째 얘는 런던, 둘째는 돌로미티, 셋째는 남태평양, 나는 알프스 등으로 저마다의 여행 취향이 조금씩 다른데, 공통점이 있다면 동남아 관광지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년도에 혹시나 해서 발리를 갔다 왔고, 혹시나 해서 방콕에 다시 와봤는데.. 역시나였다.


밤에는 짜오프라야강의 유람선을 타러 나왔다. 디너가 어떤 의미에서 유명한(?) 관광상품인데 야경은 보고 가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아이콘시암에서 툭툭을 타고 마감 5분전에 간신히 배에 탈 수 있었다. 전혀 기대도 없었는데 디너 크루즈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 악명높은 뷔페도 일단 먹을만했고, 우리 자리가 있던 1층 선실의 가수는 흘러간 팝송을 필리핀 발음으로 불러서 전혀 감흥이 나지 않았지만, 2층 선실의 가수는 K팝을 부르면서 흥을 돋궈줘서 한국 관광객들은 모두가 신나게 놀았다. 나는 선창에 나와 야경 사진 찍느라 정신없었지만..


마지막 날 오전, 호텔 부근의 룸피니 공원을 한바퀴 빙 둘러보았다. 시내여서 그런지 높은 빌딩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정말 방콕도 많이 발전했구나, 태국도 한국못지 않게 발전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공원을 돌고, 공원 옆의 쫄라룽껀 대학병원도 괜시리 다녀보았다.


MRT, BTS, 툭툭, 버스, 택시, 그랩을 다 타봤는데 전혀 불편함을 못느꼈다. 사람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친절했고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물가가 생각만큼 저렴하지 않았고, 한국보다 살짝 더운 날씨와 갑자기 내리는 비가 여행을 순탄치 않게 했다.


여행을 하면 (특히 혼자 다니면) 계속 자신을 생각할 시간이 생긴다. 피부색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심지어는 성(gender)조차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 자연스레 자신을 반추해보게 된다. 이제 나는 경제활동에서 벗어날 시기여서 그런지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계속 구도하게 된다. 이번에 우리나라 70/80년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낡은 버스나 지저분하고 오래된 차이나타운 골목들을 돌아다니면서 새삼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스크린이 아닌, 내 눈을 통해서 직접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방관자(beholder)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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