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애써 이불을 걷어내고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단다. 어제는 비 예보가 8시부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갔다가 7:30분경에 흠뻑 비를 맞았더랬다. 30분 틀린 일기예보를 나무라면서 ㅋㅋ
기온이 부쩍 내려갔다. 오늘은 8도란다. 라이트 패딩을 입을까 하다가 운동하면 열이 나겠지 싶어서 베이스라인에 바람막이 자켓을 걸치고 모자에 헤드폰을 쓴채 밖으로 나섰다. 드디어 헤드폰을 쓰는 계절이 왔다. 하이파이를 사랑하는 나는 여러 개의 헤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몸에 열이 많아서 정작 헤드폰을 밖에서 착용하는 기간은 10월에서 3월뿐이다. 포컬, 오디오테크니카, 베이어다이나믹스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베이어다이나믹스를 좋아한다.
6:15분. 여명이 가시고 있었다.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길 반대편, 지하철역 입구로부터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라고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참 부지런한 분들이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서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타협을 간신히 잠재웠다. 1km를 넘어서자 몸에 열이 오르고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몇주 전보다 확실히 사람들이 줄었다. 체감상 절반 가량은 줄은 것 같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훨씬 줄었다. 2km, 3km를 넘으면서 스스로에게 칭찬이 든다. '오늘 아침도 성공했어'
어느새 해가 뜬다. ㅎㅎ 큰일이다. 아직은 괜찮지만 조만간 해가 보란듯이 뜨고 나면 동쪽 방향으로 걷는 것을 이어갈 수 없다. 나는 심각한 햇빛 장애가 있다. 햇빛만 보면 재치기가 나오고 눈쌀이 찌뿌려진다. 오늘은 날이 흐르니 괜찮겠지 하고 썬그라스도 지참하지 않았다.
시간은 나와 무관하게 흘러갔다. 일출이나 일몰을 오롯이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알 것이다. 해가 뜨고 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매우 빠르다는 것을... 어느새 붉은 해가 점점 붉은 빛을 잃어가면서 하늘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는 수없이 중간에 발길을 돌렸다. 워치를 확인해보니 4.5km. 온 길을 고스란히 돌아간다면 9km이다. 조금 아쉬운 거리다. 어제야 비때문에 7km밖에 가지 못했지만 평상시에는 보통 10km를 넘기곤 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달리는 분이 지나간다. 저게 가능한가? 아니 가능하다고 치자. 저게 얼마나 본인에게 해악인지 모르나? 술, 도박, 담배에 이어서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악의 근원이 등장했다. 스마트폰이다. 공원을 걷다보면 걷거나 자전거 타면서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 달리면서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은 오늘 처음 봤다.
치매에 걸리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으면 된다. (참고자료: 강남차병원 건강칼럼) 잠시 잠깐의 심심함 때문에 자신의 뇌를 망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운동하면서 스마트폰에만 빠져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피해 가는 게 이젠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언젠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얘기가 주제로 나왔는데, 다들 UX 분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유해함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누구 얘기가 가장 충격적인가에 화제가 집중됐다. 1등은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면서 트럭운전하는 사람이었다. 2등은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포르노를 보는 사람. 3등은 자전거.. 사실 3등은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목격한 것이기에 공동 수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가 올 메타버스 시대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스마트폰도 이럴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