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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Oct 27. 2023

위화

 아무 생각없이 위화의 인생이라는 소설을 듣다가 갑자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먹던 빵을 내려놓고 주변의 눈치를 살핀다. 당시 나는 집을 나온지 두시간째, 10km 가량을 걷던 중에 어느 다리 밑 벤치에 자리를 잡고 파리바게트에서 사온 샌드워치를 꺼내먹으면서 잠시 쉬던 중이었다. 읽는다가 아니라 듣는다고 한 것은 최근 걷는 도중에 오디오북을 애용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쓴 날은 아니지만 최근 주말 걷기 중에 찍은 셀카. 이어폰은 충전중


옆에 앉아 계시던 초로의 아주머니가 슬쩍 훔쳐보는 것 같아 애써 태연자약한 모양새를 취하며 자연스럽게 눈물을 감추려 했다. 그런데 아뿔싸. 주인공의 딸에 이어 이젠 사위까지 죽어간단다.. 도데체 언제까지 불행이 이어지는건가? 이젠 눈물 감추는 것도, 샌드위치 먹던 것도 포기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안그러면 대번에 들통나 버릴테니까..


그렇게 중국 현대문학의 선두주자라는 위화의 첫 신고식을 거쳤다. 곧이어 허삼락매혈기, 형제를 연이어 읽거나 듣고… 이어서 원청을 읽으려다가 너무 한 시대, 한 나라, 한 작가의 세계관에 메몰되어 있다는 것에 다소 질린다는 느낌을 갖고 책을 덮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세계관, 펄벅의 대지를 떠올리기도 했던 위화 연작 읽기는 그렇게 중단되었고.. 그보다 조금 더 무거운 문체를 맛보기 위해서 제임스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펼치려다 말고 파울로 코엘료, 제인 오스틴을 거쳐 결국 투르게네프의 베진초원을 인내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술술 흘러가는 위화의 문체에 한동안 익숙해 있다가 문장 하나하나를 액자에 담아야할만큼 서사외 서정을 동시에 품고있는 투르게네프를 읽어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이 러시아의 위대힌 문장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투르게네프는 제주도 서귀포 바다 앞의 조용한 카페에서 허브티를 한잔 마시면서 평온한 기운데 다시 펼쳐보기로 기약했다.


그렇게 나의 위화 앓이는 다시 시작되었다. 나쓰메 소세키, 카와바타 야스나리,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일본 소설가들에 한때 매료되었던 적은 있지만 중국 현대문학에 빠지리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적 없었다. 삼국지를 한번 더 읽었으면 읽었지…


편의점에서 산 김밥을 먹을 때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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