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가볍게, 과정은 즐겁게, 결과는 예측불허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결점 없이 잘 만들어진, 그런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누군가는 인생영화라 칭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영화가 뭐 이따위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음악을 즐기던 평범한 십 대 소년이 마침 노는 악기들과 연습 공간, 작곡을 할 줄 아는 친구를 만나 밴드를 결성한다는 설정은 판타지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밴드를 시작하게 되는 이유와 그 후 과정들 그리고 결론은 충분히 사실적이며, 잊고 있던 도전의 본질을 일깨운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밴드 싱 스트리트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게 된다. 주인공인 코너는 음악을 듣고,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는 하지만, 진지하게 음악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다. 그런 그가 밴드를 만들게 되는 것은 라피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연상인 라피나에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 그나마 자신 있는 음악을 내세운다. 그는 자기 밴드의 뮤직 비디오에 출현해 달라며 운을 뗀다. 코너는 작은 거짓말, 또는 허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밴드를 만들기로 한다.
다른 밴드 멤버들의 밴드 가입 이유 또한 특별하지 않다. 재밌어 보여서,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밴드이니 당연히 밴드에 할애하는 시간과 자본은 적다. 연습시간은 방과 후, 주말은 안 되고, 악기는 집에 있는 것을 이용. 그렇게 그들은 어찌 보면 가볍게, 또 싱겁게 밴드를 결성한다.
그들이 밴드를 대충 시작했다고 해서 그 과정마저 대충인 것은 아니다. 멤버들은 금세 밴드 활동에 푹 빠지게 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연주를 하는 동안 만족스러운 미소가 멤버들의 얼굴을 떠나지 않는다. 싱 스트리트의 오리지널 송을 만들고, 뮤직 비디오를 만들고, 학교 무대에 서게 되고, 스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밴드는 어느새 그들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밴드는 현실의 문제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노래도 잘 만들고, 연주도 잘하고, 밴드에 열성적이기까지 한 싱 스트리트는 스타가 되어 성공을 거머쥘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코너도 라피나도 알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거센 비바람이 치는 바다는 이런 상황에 대한 비유다. 하지만 그들은 앞 길이 캄캄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보트에 오른다.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봤던, 열정이 가득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에는 별 것 아닌 일에 쉽게 도전했고, 그 도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별 것도 아닌 도전이 뭐라도 되는 양 열과 성을 다했다. 허락된 만큼의 최선을 쏟아부었다. 무엇을 완벽하게 해내기에는 경험도 없고 어렸지만, 완벽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 작은 성과를 자랑스러워했다. 그 도전의 끝에 기다리는 결과가 승리일지 패배 일지 알 수 없을 때조차 주저하거나 멈춰 서지 않았다.
점점 나이가 듦에 따라 사람들은 도전을 멈추고 현실에 안주한다. 그 안에 불꽃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느 노래가 말하듯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인 것이 사람이다. 그런 청춘이 도전을 멈춘 것은 도전이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다가와서 일 것이다.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느샌가 우리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리고 지켜야만 하는 것들을 모두 내던져야만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실패할 거라면 시작하지 않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는 그렇게 도전을 멈춘 청춘들에게 말을 건다. 도전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도전이란 원래 성패를 가늠할 수 없으니까 도전인 거라고, 거창한 계기가 필요하지도 않고, 엄청난 희생을 수반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그 도전으로 즐거웠다면,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면, 그 도전이 당신을 성공의 길로 이끌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갈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코너의 열정은 주변인들에게 전염된다. 코너를 괴롭히던 소년은 스스로를 쓸모없다 말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싱 스트리트를 따르게 되고, 실패에 절망했던 라피나는 코너와 함께 다시 영국으로 떠나게 되며, 코너의 형 브랜든은 코너에게 가르쳐 줬던 대로 스스로도 음악을 시작해볼 마음을 먹게 된다.
특히 브랜든은 꿈은 있지만, 무언가를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애매한 나이 때문에 두려움을 가진 인물로, 도전을 주저하는 이들을 대변한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브랜든은 막내 동생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여러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코너에게 길을 제시하면서 느끼게 되는 뿌듯한 마음, 코너의 도전과 그 성과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두근대는 마음, 과거를 돌아보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는 마음, 그리고 마침내 질투까지. 그의 감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이끌어낸다. 그건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브랜든의 환호는 모두의 환호가 된다.
감독은 영화 끝, 엔딩 크레딧 앞에 까지 와서도 코너와 라피나가 성공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아담 리바인의 노래로 다시 한번 우리들의 등을 떠민다.
지금 가지 않으면 갈 수 없어
지금 알아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지금 자라지 않으면 자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