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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나트립 Mar 23. 2020

아랍에미리트 (UAE) 국가 기본정보

아랍에미리트 (UAE) 국가 기본정보


1. 국가 일반 개항


아랍에미레이트는 1971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했고 7개 토후국이 모여 동년 12월2일 아랍에미레이트 연방(United Arab Emirates) 정부를 수립했다. 따라서 아랍에미레이트는 매년 12월2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아랍 토후국(土侯國) 연방이라고도 부르며 약칭은 UAE이다. 아라에미레이트는 1971.12, 아랍연맹 및 UN에 가입(132번째) 했다.


공식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방(United Arab Emirates)이다. 동쪽으로 오만, 남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카타르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페르시아만(灣)에 면한다. 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아지만(Ajman), 움알카이와인(Umm al-Qaiwain),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imah), 푸자이라(Fujairah)의 7개 토후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스 알 카이마는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현재와 같은 연방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두바이(Dubai)는 중동지역의 무역.금융.교통.관광 중심지로 유명하다.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동부
경위도 : 동경 54° 00
면적 : 83600
해안선 : 1318
시간대 : UTC+4
수도 : 아부다비
종족 구성 : 남아시아인(60.5%), 아랍인(23%), 에미리아인(16.5%)
언어어 : 공용어(아랍어) 상용어(영어)
종교 : 이슬람교 (96%), 그리스도교 및 힌두교 및 기타 (4%) 그 중 이슬람교(수니파 80%, 시아파 20%)
건국일 : 1971년 12월 02일
국가원수/국무총리 : 칼리파(Khalifa bin Zayed Al-Nahyan) 대통령(04.11.3 취임)
국제전화 : +971
정체 : 연방 공화제
통화 : 아랍에미리트 디르함(Dirham)
인터넷 도메인 :. ae
홈페이지:  http://www.government.ae/gov
인구(명) :  9,662,756 (2019)
평균수명(세) : 78 (2019)
출산율(명) : 2.28 (2019)
1인당 GDP($) : 42,384 (2019)
실업률(%) : 2.575 (2018)
수출 규모(백만$) : 272,682 (2018)
수입 규모(백만$) : 252,261 (2018)
인구밀도(명/㎢) : 114 (2019)



2. 역사


아랍에미리트의 카와심족(族)은 해양 민족으로 예로부터 어업과 해운업에 종사해 왔다. 16세기에포르투갈이 이 나라의 해안에 첫 발을 내딛었으며,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해군이 인도양의 제해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바다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주민들은 해상에서의 전통적인 생업에 종사할 수 없어 해적으로 전락하였다. 19세기 초에는 와하비(사우디아라비아의 모체)의 보호 아래 유럽 세력에 대항하는 해적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영국은 1806년부터 무력으로 해적을 격파하기 시작하였으며, 1818년에는 해적의 본거지 라스 알 카이마항(港)과 당시 ‘해적 해안’이라고 불리던 연안 항구들을 정복하였다. 1820년에는 각 토후국의 수장(首長)들과 평화조약을 맺어 해적행위와 노예무역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이행되지 않자 영국은 1835년에 6개월 기한으로 해상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며, 그 후 다시 기한을 갱신하여 이 지역을 ‘휴전 해안’이라 불렀다. 결국 협정은 1853년에 이르러서야 항구적인 해상 휴전조약으로 바뀌었다. 이 조약으로 각 토후국들은 영국의 실질적인 보호국이 되었지만, 영국은 토후국끼리의 육상 교전에는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1820년에 5개국이었던 토후국들은 흥망과 집산을 되풀이하였다. 1892년에는 영국 이외 나라들과의 자유로운 교섭이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아랍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가 약화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영국령 인도와 경제적으로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이 결정되던 해인 1948년에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에 영국은 1952년 이 지역에 자국 장교가 지휘하는 군대를 창설하고 연방평의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석유 산출로 부유해지기를 꿈꾸는 토후국의 수장들은 정치적 통합에는 관심이 없었다. 1955년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일어난 부라이미 오아시스의 영유권 분쟁은 석유에 얽힌 영토분쟁이었다. 1958년에 아부다비의 석유개발이 시작되었으며, 1965년에는 영국이 바레인·카타르·아부다비에게 출자하도록 하여 개발기금을 창설하였다.


1965년 아랍연맹에 아랍에미리트 문제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며, 당시에는 바레인과 카타르도 포함시킨 연합국이 구상되었다. 1966년에는 ‘연합국 헌법 제정 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영국은 아덴을 대신할 군사기지를 샤르자에 설치하였으나 1968년 초에는 이 지역의 군대를 1971년 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그때까지 연합국을 실현시킬 방침을 정하였다. 같은 해에 바레인과 카타르를 포함한 9개 토후국의 수장이 참석한 첫 번째 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상호불신과 대립으로 인하여 원활한 교섭 진전이 없었으며, 결국 1971년 여름 바레인과 카타르가 단독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해 11월 말 영국군이 철수하자 때를 같이하여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샤르자와 라스 알 카이마령의 작은 섬을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란과의 협정에서 샤르자는 연합국에 참여할 뜻을 밝혔으나, 라스 알 카이마는 거부하였다. 따라서 라스 알 카이마를 제외한 6개 토후국(Abu Dhabi, Ajman, Fujairah, Sharjah, Dubai, Umm al-Qaiwain)만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가 1971년 12월에 탄생했다. 라스 알 카이마(Ras Al Khaimah)는 얼마 뒤인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다.



3. 정치


아랍에미레이트의 중앙 정부는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공화정체제이며 국가원수가 대통령이라는 특이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국가원수는 현재 Sheikh Khalifa bin Zayed Al Nahyan이며 수도는 아부다비이다. 주요 도시는 아부다비(Abu Dhabi)로 UAE 수도이며 UAE 최대 원유생산지다.


1971년 12월 독립과 동시에 체결된 잠정헌법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연방 최고기관은 각 토후국 수장들로 이루어진 연방 최고평의회(수장회의)이다.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큰 토후국인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군주는 거부권을 가진다. 각 토후국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토후국 군주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1996년 5월 연방 최고평의회는 정식 헌법을 채택하고 아부다비를 연방 수도로 공식 확정하는 등 독립 25주년을 맞아 연방으로서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연방 대통령과 부통령은 토후국 군주들 중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을 지명한다. 1971년 이후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왕(Shaikh Zayed) 이, 부통령은 두바이의 라시드 국왕이 계속 맡고 있었으나 2004년 11월 2일 자이드 국왕이 사망하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고 2006년 현재 대통령은 셰이크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나흐얀이다. 의회는 각 국왕이 임명한 의원들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의원수는 토후국 별로 정해져 있는데 아부다비 8명, 두바이 8명, 샤르자 6명, 라스 알 카이마 6명, 아지만 4명, 푸자이라 4명, 움알카이와인 4명으로 총 40명이다. 정당은 없으며, 사법권은 연방대법원에 있다. 단, 종교 관련 사건은 샤르아 법원에서 헌법이 아닌 이슬람 계율을 근거로 재판한다.



4. 경제


UAE는 석유와 천연가스 보유국이자 이를 바탕으로 축척한 부를 통해 정치적 안정과 세제 혜택,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하며 전 세계 무역, 금융, 교통, 관광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일곱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인 UAE 경제는 사실상 석유&가스 산업을 기반으로 한 아부다비항공, 관광, 무역 서비스산업을 기반으로 한 두바이가 주도하고 있다.


UAE 연방 및 각 토후국 정부는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과 탈 석유시대 성장산업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개발전략의 일환으로 산업다각화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산업 다각화의 정책방향은 지속 가능한 성장산업 구축으로 집약되며, 이를 위해 대규모 투자와 외국인 투자유치를 병행,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산업다각화 정책의 일환으로 아부다비 정부는 2008년 아부다비 경제비전 2030(Abu Dhabi Economic Vision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비석유부문의 GDP 기여도를 64%까지 끌어올리겠다는목표를 설정하였다. 두바이 정부 또한 2007년 발표한 두바이 전략계획 2015(Dubai Strategic Plan2015)의 성공에 이어 두바이 플랜 2021(Dubai Plan 2021)의 시행을 발표(2013년 11월)하고 산업구조 다변화 및 교육, 경제 등 다방면의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두바이는 관광업 특화 경제 계획으로 비전 2020 (Dubai Tourism Strategy 2020)을 발표했으며, 관광 상품 다각화, 관광업의 GDP 기여도와 관광객 증대를 목표하고 있다. 북부 토후국 또한 개별의 경제 계획을 수립했고 샤르자는 관광업 특화의 비전 2021 (Sharjah Tourism Vision 2021), 아즈만은 지속 가능성 개발에 초점을 맞춘 아즈만 2021 (Ajman 2021), 푸자이라는 주거와 교통 인프라 개발을 위한 푸자이라 2040 (Fujairah 2040)를 실천 중이다. 천연자원과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큰 도전이 되고 있음에도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UAE 정부의산업다각화 정책에 따른 비석유부문 경제 전반은 고른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전형적인 아랍 산유국형의 경제구조로, 원유의 생산 및 수출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원유 산출량은 1972년에는 5811만 t이었으나 1997년에 9872만 t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 중 아부다비(Abu Dhabi)가 8136만 t, 두바이(Dubai)가 1600만 t, 샤르자(Sharja)가 136만 t을 생산하였고,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ymah)에서도 해저 유전이 발견되었다. 천연가스의 산출량은 1973년의 17억 3200만㎥를 고비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각 토후국은 석유 산출이 지속되는 시기 안에 공업화를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공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기간산업의 확충 및 제조업의 육성, 무역 및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부다비는 철강공장·시멘트 공장을 비롯하여 각종 공장을 건설, 가동 중이며, 두바이는 세계 최대의 선박수리용 도크, 알루미늄 제련공장, 천연가스 액화공장, 시멘트 공장 등을 가동 중이다. 이밖에 석유가 산출되지 않는 다른 토후국은 농업·수산업의 개발과 관광휴양지로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은 40억 배럴로 아부다비(922억 배럴)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한 아랍지역에서는 '석유 없이 성장도 없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두바이의 재정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석유에 기대지 않고도 두바이는 연평균 GDP 성장률이 10퍼센트에 이르는 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일찌감치부터 준비한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 전략이다. 두바이는 이미 1970년대부터 석유의존 경제에서 벗어날 대안적인 발전전략을 모색했다.


1979년에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항구인 제벨알리(Jebel Ali)항을 건설했으며, 1985년 항구 주변에 중동 최초의 자유무역 지대를 만들고, 국영 항공사인 아랍에미리트항공을 설립하는 등 국제무역을 위한 기반을 닦아 왔다.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에 각종 특혜를 부여하여 제조업 부문에 외국인 투자유치를 강화한 결과 1999년 6월에 이르러서는 70개국 1,500여 개 업체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주요 수출국은 인도, 이란, 이라크,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미국, 홍콩, 벨기에, 중국 등이고, 주 요 수입국은 중국, 미국, 인도, 독일,. 일본, 터키,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한국 등이다.



5. 문화


아랍에미리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80%, 시아파 20%)이며, 여러 생활관습들은 이슬람 계율을 따르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코란을 읽으며 자란다. 주요 종교의식으로는 하지가 있는데 매년 이슬람력으로 12월 8일-13일까지 5일간을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는 의식이다. 이 때문에 나라 전체는 이 시기가 휴가 기간이 된다. 또 매년 9월 한 달 간은 일출 후부터 일몰 전까지 음식은 물론 물, 음료, 담배 등을 일체 금식하며 특별예배를 보는 라마단 행사가 진행된다. 라마단이 끝난 후 3일간 지속되는 이슬람의 제2대 명절인 이 둘휘트르 역시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지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 기간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친지와 이웃을 방문할 수 있게 하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결혼 및 이혼의 풍습 역시 이슬람법에서 정한 계율을 따르고 있다. 결혼은 의무사항이며, 이혼도 법적으로 허용된다. 배우자 선택에서는 4 촌간에 청혼할 수도 있어 근친결혼이 관습화 되어 있고, 또 4 촌간 결혼에 우선권이 부여되어 있다. 씨족이 다른 사람 간에도 양가의 합의와 결혼 당사자간의 동의만 있으면 결혼이 가능하다. 코란에는 1부 4처까지 허용하고 있으나, 지금은 일부일 체제로 변모하고 있고, 약혼 합의 시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마하르라는 결혼지참금 제도는 아직도 관습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신랑의 보호자가 신부의 보호자를 통해 신부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현금 또는 현물로 전해진다.


의복은 전통 아랍 복장을 입는데, 남성은 기본적인 복장으로 디슈다샤, 칸두라를 가정에서나 간단히 외출할 때 입고 여성은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색의 아바야를 입는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영화를 매우 즐기며, 낙타와 말 경주는 예전부터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최근에는 자동차 경주와 사막의 모래 위에서 타는 스키가 인기를 얻어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6. 한-아랍에미리트관계


아랍에미리트는 1980년 6월 한국과 정식으로 수교한 이래 경제, 문화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1987년에 서울 주재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특히 2009년 원준 수주를 계기로 중동국가 중 최초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였다. 아랍에미리트 재외국민 수도 늘어 2015년 말 1만 2천 명을 돌파했다. 2016년 3월에는 GCC 국가 최초로 아부다비에 주 UAE 한국 문화원을 개원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의 UAE 방문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계기가 됐다. 양국은 정보통신기술, 재생에너지, 특허행정, 인적교류 등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국의 대 UAE 주요 수출품목은 자동차, 기호식품, 자동차 부품, 석유제품 등이다. 대 UAE 주요 수입품목은 원유, 석유제품, 금은 및 백금, 알루미늄, LPG 등이다.


<양국수교>

1980. 6.18


<협정 체결>

0 2002. 06, 투자보장협정체결 (2004. 06 발효)

0 2003. 09, 이중과세방지협정 (2005. 03 발효)

0 2005. 11, 항공협정 (2010. 07 발효)

0 2006. 05, 경제, 무역 및 기술협력 협정 (2008. 04 발효)

0 2006. 11, 군사협력협정 (2007. 05 발효)

0 2007. 05, 문화협력 협정 (2008. 02 발효)

0 2009. 06, 원자력협력협정 (2010. 01 발효)



<자료: KOTIS, 한국수출입은행, 외교통상부(교민, 재외국민등록기준으로 추산), 2013년 8월 기준 최신자료, kotra 국가정보 - 아랍에미레이트, 2013.9.30, kotra,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아랍에미레이트 국가정보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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