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의 월기
인천 집에서 많은 걸 했다. 독서모임 책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읽지 않았을 <민담형 인간>을 전자책으로 읽었고, 빨간책방 책으로 지정되어 읽었지만 읽는 내내 빨리 끝내고 싶었던 <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을 아라 책꽂이에서 꺼내 읽었고(책보다 빨책이 훨씬 더 재밌었다, 그냥 읽지 말고 들을걸...), 아라가 잠든 사이엔 졸린 눈으로 코엔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을 봤고, 아라가 깨고 나서는 <우상>을 봤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한 회 봤는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형 인간'인데 '민담형 인간'이 되고 싶고, 그 바람이 이뤄진다면 나는 드디어 첫 소설을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역사보다는 현재일 것이고, 코엔 형제를 사랑하는 나 역시 그들의 역사적인 데뷔작보다 최근의 범작에 더 끌린다. <우상>은 흥미는 진진했으나 <한공주> 때 올라간 기대치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의무감으로 읽던 책을 여럿 새해 벽두에 끝냈다. 디 에디트 칼럼 기고 때문에 절반 이상 읽었던 <스포티파이 플레이>와 <규칙 없음>을 끝냈고, <규칙 없음>은 내가 칼럼에 쓴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책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독서모임 책이었던 <에고라는 적>과 <인생의 발견>을 읽었는데, 두 책 모두 '의무감으로 책을 읽으면 안 된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쓰일 만한 독서 경험이었다. 전자는 그냥 덮었어야 했고, 후자는 너무 빨리 읽어 내용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다. 다시 읽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의무감은 언제나 나의 동력이 되어주고, 의무감으로 읽은 덕분에 좋은 작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역시 빨책을 들으려고 읽은 <야만적인 앨리스씨>나 디 에디트 칼럼을 쓰려고 읽은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방구석1열을 보려고 본 <히트>, <스윙키즈>, <고고70> 등이 그렇다.
<야앨>을 읽고 황정은의 책을 다시 사모으기 시작했고, <개고키>를 읽고 카렐 차페크의 왼쪽 주머니 어쩌고 소설을 꼭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80년대 영화인 <히트>를 보고 역시 옛날 영화인 <영웅본색>을 보게 되었다. <영웅본색>은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으나 바로 그 BGM이 영화에서 시도때도없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장항준송은이의 씨네마운틴>을 재밌게 듣는 데 도움이 되었다. <스윙키즈>와 <고고70>은 역시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흥행이 안 되었다고 매력없는 영화는 아니라는 사실 또한.
겨우겨우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 <미스테리아 13>와 <릿터5>를 읽었고, 엊그제 33호가 집으로 배송되었다... <덧니가 보고 싶어>로 정세랑 월드에 순조롭게 진입했으며,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2, <보좌관> 시즌1, <굿플레이스> 시즌3 등 밀린 드라마의 마침표를 찍었다. 세 드라마 모두 다음 시즌도 머지않아 시작할 것이다.
<지구 최후의 밤>을 읽고 나서는 '난 역시 내가 이해 못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했고, 비슷한 이유로 <문학의 기쁨>에 실망했다. 금정연을 좋아하는 나는 여전히 그의 책은 살 것이지만 공저자인 정지돈의 책은 한동안 구매를 보류할 것이다.
오래된 영화 <모리스>, <쉘 위 댄스>, <무간도2>를 다소 지루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봤다. 오래 기억되는 영화에는 어떻게든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른이 되면>은 올해 지금까지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 내내 눈물을 머금은 채로 영화를 봤고, 이 울컥함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잠깐 고민도 했다. 동생을 바라보는 언니의 엄격한 표정이 오래 기억될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장혜영 의원의 SNS를 검색했다. 그의 정치 활동 역시 응원한다.
이번 달에 가장 좋았던 드라마는 <이어즈&이어즈>다. SF인데 당장 다음 달에 일어나도 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은 두려우면서도 자극적이었다. OST와 어우러지는 뉴스속보 장면을 언제부턴가 기다리면서 봤다. <산후조리원> 역시 두려우면서도 자극적인 드라마라, 즐겁게 보고 있다. <홈랜드>와 <실리콘밸리>는 새 시즌을 오랜만에 시작했고, <죽어도 선덜랜드> 역시 3부리그에서의 하루하루를 지켜보고 있다.
<심슨>과 <디스인챈트>를 본 건 점심시간에 뭐든 보겠다는 강박이 낳은 산물 같은데, 다행히 재밌다. <심슨>을 보면서 '시트콤 같은 연작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일단 성공 아닐까. 정종연의 신작 <여고추리반> 1, 2회는 프롤로그임을 감안해도 좀 심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비비의 활약이 다음 편들을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익스플레인>, <그알>, <방구석1열>, <영화당>, <말줄임표>, <놀면뭐하니?> 등을 봤다. <말년을 행복하게>를 봤는데 주식과 예능의 결합은 흥미로운데, 주식을 하고 싶어질까봐 못 보겠다.
<지옥>을 드디어 끝냈고, <바쿠만>, <진격의 거인>은 한 권씩만 읽었다. 음악은 많이 듣지 못했지만, 정수민의 '통감', 루싸이트 토끼의 '전화해', 어바웃의 '까맣게 더 까맣게'가 남았으니 다행이다. 외국 뮤지션 중에는 Feng Suave의 앨범이 귀에 꽂혔다. 백현진의 '빛'과 스윗소로우의 '작은 방'도 기억에 남는데, 아이유는 피처링을 참 열심히 하는구나.
<샌프란시스코 화랑관>과 <지금 이순간 마법처럼>은 흥미롭긴 한데 강렬하진 않다. 일상힐링물 같은 느낌이라 하루에 한 편씩 보기엔 괜찮아서 그만두지 않고 계속 보고 있다.
이번달부터 <김하나의 측면돌파>를 열심히 듣고 있다. 금정연, 정세랑, 조준호, 이경미 편이 재밌었다. <씨네마운틴> 또한 새로 등장한 팟캐스트 강자. 이거 들으려고 <엑소시스트>를 볼 예정이다. <요즘 소설 이야기>는 팟캐스트 자체의 재미는 그저 그렇지만 좋은 단편소설들을 이 방송 때문에 듣게 되어서 감사하다. 이주란, 윤성희는 이 팟캐스트 덕분에 발견한 내 취향의 소설가다.
<책, 이게 뭐라고> 다크호스 편을 한밤중에 다시 들었고, '이동진&김중혁'이 나온 책다방은 옛날 방송임에도 재밌게 들었다. 식상해진 조합이지만 나는 이동진과 김중혁의 조합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왜지?) <더 파크>도 다시 들었는데, 이크종 님의 삐딱한 관점이 좋다.
정리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리는구나... 다음달엔 좀 더 미리 쓰기 시작해야지. 12시가 넘어버렸네.
책 12 / 영화 11 / 드라마 많이 봄(크마, 보좌관, 굿플, 이&이, 산후, 심슨, 디인) / 예능(방1, 영화당, 말줄, 놀뭐, 여추) / 다큐(죽선, 익플) / 음악 고작 6곡 써놓음 / 만화(웹툰-샌화, 지이마, 정년이, 지옥 / 종이-바쿠만,진거) / 팟캐스트(김측, 오종, 씨마, 빨책, 요소야, 책뭐, 책다방, 더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