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sms'
소설의 소재를 도통 정하지 못하고 골머리를 부여잡은 지 한 달. 더는 착수를 미룰 수 없어 일단 뭐라도 쓰자, 하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첫 단어가 영어로 났다. '그는'이라고 쓰려던 것이지만 나는 한/영 전환키를 누르지 않고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모니터 가득 영문들이 부유하는데도 타이핑을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의 내용이 제대로 옮겨지고 있는지, 오타가 나진 않았는지, 도대체 무슨 내용의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가끔 보이는 굵직한 대문자 알파벳만이 내가 이따금 쉬프트키를 눌러가며 의식적으로 무언가 써 내려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불편한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 저녁까지 이어졌다. 여전히 뭐라 쓴 건지 알 수 없는 그것들. 지나간 행의 그것들의 정체야 어떻든 키보드를 앞에 두고 오늘치 원고를 쓰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니 실로 오랜만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이것을 한글로 치환하는 작업이 남았다. 언젠가 누군가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이는 작가들에게 있어 진리이자 바이블로 여겨지는 구절이지만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쓴 글이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고 설렌다. 결과야 어떻든 '적어도 생각지 못했던 소재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