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거리

by 양영석

선배 A가 할 말이 있으니, 술 한잔 하자며 불러냈다.

맨 정신엔 하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야 할 때면 어김없이 술기운을 빌려 푸념하듯 토해내곤 하는 사람이다. 난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들으러 가는 걸까?

A는 술을 마시는 내내 지난주에 겪었던 서운한 일과 내게 섭섭했던 일, 그리고 시시콜콜한 옛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술병이 쌓여가고 시나브로 조용해진다 싶더니 그는 테이블에 코를 박고 잠이 들었다.


둘러업다시피 그를 부축해 거리로 나섰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큰 키의 A는 속에 있는 말을 다 쏟아냈는지 깃털처럼 가볍다. 택시 뒷좌석에 그를 던져 넣고는 기사에게 목적지를 일러준다. "형님 조심히 가세요."

아마 A는 오늘 밤 세상 편한 단잠을 잘 것이다. 욕실의 변기를 끌어안고 요동치는 뱃속의 내용물을 토해낼지언정 마음만은 편하게 이 밤을 보낼 것이다.


떠나는 택시의 후미등을 지켜보다 자연스럽게 거리의 네온사인으로 시선을 옮겼다. 술잔을 채우고 비우며 책임지지 않아도 될 말을 뱉는 사람들이 빼곡한 건물을 천천히 훑어보곤 발걸음을 옮겼다. 집까진 도보로 15분. 길가엔 택시를 잡으려는 취객과 취객을 실으려는 택시들이 엉기고 설키어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이룬다. 간혹 택시를 잡지 못한 이들은 욕설과 함께 침을 뱉지만 이내 ‘택시!’를 외치며 힘차게 달려간다.


저들은 오늘 밤 단잠에 빠지고 달콤한 꿈을 꿀 것이다. 전신주에 인사하며 토사물을 쏟아내고 쓰린 속에 괴로울지언정 행복한 꿈을 꿀 것이다. 주말 저녁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깊어가는 밤이 괴롭기만 한 나는 속할 수 없는 부러운 광경이다. 오늘 밤도 난 취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 것이다. 사고를 미루려는 바람은 오늘도 이뤄지지 않는다. 또렷한 정신에 뚜렷한 두통을 기다리며 그저 눈만을 감을 것이다. 술 취한 사람이 부러운 나는, 마치 재에서 다시 태어날 불사조처럼 잠시도 죽지 못하고 아침이면 다시 깨어날 것이다.

이전 27화연애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