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겨울밤, 그랑블루

by 양영석

커피엔 손도 대지 않았다. 영화관에 딸린 카페에 앉아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리는 걸 가만 바라본다.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가 2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영화 시작까지 남은 시간 30분. 조금 더 앉아 있어야지, 생각하며 통유리 너머를 내다보고 있자니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바깥을 지나갔다. 손을 잡지도 팔짱을 끼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커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도 그런 연인이 있었다. 약간의 틈을 사이에 둔 채 거리를 걷고, 가끔 마주 보며 웃지만 어깨동무는 하지 않던 인연이.


테이블에는 영화를 기다리며 읽으려던 책, 책을 읽다 떠오른 감상을 그림으로 옮기려던 태블릿 PC, 연습장과 색연필이 놓여 있었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꺼내놓기만 하고 손도 대지 않은 그것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담았다.

“테이크아웃 해드릴까요?”

돌아보니 점원이 곁에 서 있었다. 영화를 기다리며 카페에 올 때마다 날 알은체 하고 친절히 대해주는 사람이다.

“아뇨, 괜찮아요.” 대답하고는 커피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런 영화관이 있다. 손님 구경하기 힘든데도 꾸역꾸역 오랫동안 운영되는 영화관이. 심야 손님이라곤 나와 아까의 커플뿐인데도, 건물 전체를 조명으로 밝히고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작동한다. 커플은 매표기 근처를 서성이다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지난주에 개봉한 액션영화를 볼 모양이다. 오랜만에 상영관을 혼자 차지하겠네, 생각하는 한편 함께 영화를 볼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들은 조명이 꺼진 후에도 바깥에서의 거리를 유지할까? 커플석을 예매해 부둥켜안은 자세로 영화를 보진 않을까?



***



3 상영관 G열 7번 좌석. 가장 작은 상영관의 제일 뒷열 한가운데 자리에 앉아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와중에 흘러나온 광고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이어트 광고에 지방(脂肪)을 의인화한 캐릭터를 주인공 삼아도 된다는 생각을 누가 했는지, 그게 귀여울 수 있다는 상상을 누가 했는지 궁금해서. 그리고 그 캐릭터를 귀엽게 여기고 있는 내가 신기해서. 이어 상영관이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그랑블루. 번역하면 ‘대양(大洋)’정도일까. 10년도 더 옛날, 대학생이던 시절 학교 근처의 단관 극장에서 본 적 있는 영화였다. 그때도 이미 오래된 영화였을 텐데, 이를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움이란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심연을 사랑한 잠수사들의 이야기였다. 숨 쉴 수 없는 깊은 속을 그들은 왜 그리도 그리워한 걸까. 왜 기꺼이 죽음을 감수하는 걸까. 10년 전의 난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알 수 있을까. 모르겠다. 천천히, 천천한 마음으로 다시 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에 이입할 만큼, 10년의 세월만큼 나는 자랐는가. 아, 그러고 보니 그때의 영화관도 그런 영화관이었다. 손님 구경하기 힘든데도 꾸역꾸역 오랫동안 운영되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일까. 영화가 시작한 줄도 모르고 까무룩 잠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땐 영화가 이미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친구이자 라이벌인 자크와 엔조의 대결이 자크의 승리로 끝났고 엔조는 무리한 다이빙을 도전하다 죽고 말았다. 엔조, 그러니까 영화 레옹에서 레옹을 연기했던, 아니 훗날 레옹을 연기할 장 르노가 심연으로 가라앉는 대목에서 생각했다. ‘그곳이 아니면 안 되었던 거였나? 인간의 감각으로는 너비를 가늠할 수 없는 대양. 그 속이 무엇이기에 결국엔 목숨을 앗아갈 심연을 사랑하나?’ 영화의 후반부를 마저 볼 자신이 없었다. 눈을 뜨고 있지 못할 만큼 피곤이 몰려오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다시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현기증이 밀려와 몸이 휘청거렸다. 쓰러질 듯 말 듯 한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숙인 자세로 상영관을 나왔다. 단 한 명뿐인 관객이 나가버리는 것을 영사실의 누군가 알아채지 못했으면 했다. 혹시라도 상영을 중단해버리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일었다. 영화를 마저 보지 않을지언정 자크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으면 했다.


늦은 시각이라서인지 로비를 지키는 직원이 없었다. 예의 커플이 영화를 보고 있을 상영관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다행히 출입구가 뒤쪽에 나 있어 어둠 속에서 그들을 몰래 훔쳐볼 수 있었다. 남자는 편의점에서 사 온 듯한 과자를 집어 여자에게 먹여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들이 영화를 끝까지 봤으면 싶다. 나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돌연 지난 연인 생각에 미치고 말았다.



***



영화관을 나와 주황빛 가로등이 드문드문 내리 꽂히는 밤거리를 걸었다. 엉거주춤 더디 오던 가을이 금세 자취를 감춰 바람이 매섭다. 역시 잠이 부족하다. 찬바람에 코끝과 귓불을 잡아 뜯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는 중에도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늦은 밤임에도 저 멀리 환히 빛나는 건물이 보였다. 불과 여섯 시간 전, 친구의 마지막을 배웅했던 장례식장 건물이었다.

퇴근 무렵, 녀석의 번호로 부고 메시지가 왔을 때, 한동안 머릿속 사고 회로가 멈췄다. ‘이게 무슨 말이지?’ 정말 모르겠는 거였다. [심현철 님께서 금일 별세하셨습니다] 하는 메시지가 뜻하는 바를. 한참을 모르겠는 거였다. 심현철. 내 동창 심현철? 별세라니. 죽었다는 말인가? 이제 더는 여기 없다는 뜻인가? 의식은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빈소에서는 녀석의 동생과 양볼이 홀쭉한 노모만이 나를 맞았다. 조문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인이 많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바로 옆의 왁자한 빈소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휑한 공간에 머물러 있자니 호흡이 가쁠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다. 나 역시도 녀석과 연락을 튼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도 넘게 흐른 어느 날, 정신과의 대기실에서 우린 마주쳐 서로를 알아봤고 둘 다 우울증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후로 우린 이따금 연락을 주고받았고 또 이따금 주말 저녁에 만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졸음이 쏟아지다 못해 현기증이 심해지는 것이,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음을 깨달았음에도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는 대로를 벗어서 장례식장으로 이어진 사잇길을 향했다. 밤이 늦어서인지, 누구도 빈소를 찾지 않았기 때문인지 친구의 동생도 노모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쳐 나는 늙어서 죽은 이들, 혹은 보통의 병을 앓다 죽은 이들의 빈소로 들어갔다. 마치 다른 세계인 듯 그곳은 자정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오가며 음식을 나르고 있었고, 객들은 술을 걸치며 주정 섞인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상주에게 다가가자 그는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묻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현철의 빈소에서 먹은 밥은 소화가 다 됐는지, 돌연 허기를 느꼈다. 하얀 쌀밥을 한술 크게 떠 입에 넣고 국그릇을 들고 마셨다.

그때, 현철이 내 앞자리에 앉았다. 영안실에 누워 있어야 할 녀석이 웬일이냐고 물었어야 했겠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녀석은 차갑게 식은 전을 손으로 집어 들더니 질겅질겅 씹으며 웃었다.

“와 줘서 고맙다 야.”

그리고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사고사인 척 죽을 수 있을지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냐?”

언젠가 소주를 마시며 나눴던 대화를 난 떠올렸다.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대화들을. 구설수에 오르지도, 부끄럽지도 않을 수 있는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했던. ‘졸음운전인 양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면 되지 않겠냐’ 말하고 폭소했던 그날의 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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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엔 갓난아기가 된 것 같았어. 3시간에 한 번씩 먹을 걸 입에 넣고 그게 소화되기만을 기다렸어. 그러면서 다음 먹을 걸 고민했지.”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내게 녀석은 그렇게 말하더니 곧 먼지가 흩어져 날리듯 사라졌다. 다음 순간, 객장 한 편에 서 있는 장례 도우미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곧장 밥과 국을 다시 내어 주었다. 그것들을 또다시 입에 욱여넣었지만, 녀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땐, 바람이 더 날카로워져 있었고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외투를 여몄지만 애초에 얇게 입은 옷은 추위를 견디기엔 부족했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순간 세상이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온 세상이 갑자기 뒤뚱, 했다가 자세를 바로 잡은듯했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발목 언저리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매서운 한파에 보도의 한 부분에 얼음이 얼었던 모양이고 하필이면 거기에 미끄러져 발을 접질린 것이다. 두세 발짝을 나아가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오가도 못하고 혹한의 밤에 갇혀있다가는 나 역시 현철처럼 죽음을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어쩌면 이게 ‘어떻게 하면 사고사인 척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정답일지도. 생각하다 퍼뜩 미안함을 느꼈다. 불장난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혹 누군가 내 생각을 엿봤을까 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가 우울증을 앓기 전, 아주 오래전. 고등학생 시절의 녀석은 우리 무리 중 가장 말이 많고 엉뚱한 놈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익살꾼을 자처하며 놀림당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입이 거칠었고, 장난치길 좋아했다. '촉새 같은 놈' 선생님들은 현철을 그렇게 부르면서도 녀석을 살뜰히 챙겼다. 공부를 곧 잘해서 반에서 유일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으니 이쁨 받을 만한 학생이었다. 그런 녀석의 과거, 우리의 옛날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녀석의 영정사진이 너무 낯설고 무서웠다. 그렇게 가버리다니. 그렇게 죽어버리다니.


도움을 청하려는데, 전화할 곳을 쉽사리 정하지 못했다. 112? 119? 갈팡질팡하는 사이에도 바람은 점점 매서워졌고 몸이 부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집에 가야 하는데...' 생각하다 '집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다 몇 달 전, 내 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를 만련한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10년의 고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안도감을 느낀 게 고작 몇 달 전인데, 현철의 죽음을 마주한 지금. 현철이 택한 방법을 알아버린 지금은 내 집이 언젠가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겨울, 밤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죽어가는 것과 도움을 청해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난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나는 모르겠는 거였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쯤 내가 마저 보지 않고 나온 영화. 그랑블루는 엔딩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자크는 불빛 하나에 의지해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하고, 배웅 나온 돌고래를 따라 심연으로 헤엄쳐 잠겨 들어갈 것이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는 지점에서 나는 불빛의 근원을 바라봤다. 각막을 지져버릴 듯 강렬하게 달아오른 필라멘트를. 그리고 다음 순간,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격통을 감내하며 한 걸음 옮겼다. 불빛이 닿지 않는 길의 가장자리로. 심연 속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아, 그러자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널 사랑해. 제발 나랑 있어줘. 사랑해. 제발.” 자크의 연인 조안나, 로잔나 아퀘트의 목소리. 이제는 잊힌 옛 연인의 목소리.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