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히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각에 잠이 깼음을. 원치 않은 시각에 눈이 떠졌음을. 암막 커튼을 걷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깨어있는 동안의 하루가 고달플지언정 자고 난 뒤에는 개운한 느낌으로 눈이 뜨여야 할 텐데, 어둠 속임에도 태양을 직시한 것처럼 눈이 쓰라렸다. 마땅히 지시에 응해야 할 팔다리가 태업하며 움직이길 주저했지만 이상하게 의식은 또렷해져만 간다. 시계는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눈 감은 채로 기억을 더듬는다. 어제 난 뭘 했던가, 평소와 무엇이 달랐기에 잠을 설치는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편의점 도시락을 데워 먹었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OTT어플을 켰다. 그 밤에 어울릴 영화를 검색했지만 늘 그렇듯 뭐가 마음에 드는지 모른 채, 시간에 쫓겨 아무것이나 골라 그것이 재생되는 동안 잠들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던 밤. 아무리 생각해도 잠을 설칠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왼발의 수면양말이 발목 부위부터 틀어진 것에 이질감을 느낀다. 오른손에선 엄지손가락의 거스러미가 이불에 쓸려 통증을 전해온다. 눈을 뜨고 캄캄한 방의 어느 한 점을 응시하고 있는데, 목 아래쪽 어딘가에서 낮은 울림이 느껴졌다. ‘뭐지?’ 주의를 집중하고 예의 그 울림이 반복되길 기다렸다. 잠시 후 반복되는 울림. ‘꼬르륵’ 이것인가. 내가 잠에서 깬 이유는.
극명한 허기. 하지만 이상하다. 잠들기 직전 속을 채웠는데. 물론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잠이 깰 정도로 적은 양은 아니었을 텐데. 꼬르륵 소리가 계속되더니 허기는 통증으로 변했다. 어쩔 수 없이 침실의 불을 켜고 부엌으로 나갔다. 냉장고를 뒤져보지만 씹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식탁에 놓인, 며칠 전 간식거리로 사둔 구운 계란이 눈에 들어왔다. 껍질을 까고 그 속을 한입에 넣었다. 우걱우걱, 하는 의태어가 어울릴 동작일 것이다. 목이 막혀 생수를 병째 마시고 화장실에서 입을 헹구고 혹시 몰라 용변도 해결한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불을 껐다.
잠을 청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니 계란을 먹은 때로부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다시 잠을 청했고 난 다시 잠에서 깼다.
또다시 잠을 청하고 깨어난다. ‘꼬르륵’
시계는 어느덧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3시간 뒤면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데, 잠을 자지 못하면 업무시간 내내 피로에 시달리며 하품을 해댈 텐데… 하는 불안이 끼쳐오자 잠은 더더욱 멀리 달아났다. 이러는 와중에 엉망으로 어질러진 채로 방치된 화장대가, 요 몇 달 내내 눈에 거슬렸던 광경이 눈꺼풀 안으로 떠올라 신경을 긁었다. 결국 나는 침실 불을 다시 켜고 화장대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이크림, 스킨로션, 파운데이션, 브러시 케이스 따위를 한쪽으로 모으고 쓰레기를 치웠다. 손바닥만 한 비닐봉지에 쓰고 난 휴지며 화장솜이 가득 찰 즈음, 서랍 구석에서 옛 연인에게 받은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있었네, 중얼거리며 먼지와 화장품 가루가 묻은 싸구려 은반지를 가만 내려다본다. '쓰레기 새끼' 한참이나 때늦은 욕설을 나지막이 뱉어낸다. 정리보단 처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봉투에 쑤셔 넣곤 매듭을 묶었다. 비로소 이 공간이. 화장대에 질서라는 것이 자리 잡은 느낌이다. 시계 분침은 어느새 한 바퀴를 돌아오고 있었다.
이젠 정말 자야 할 때라며 마음을 다잡고 불을 끄려 했지만 형광등 스위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손이 멈췄다. 다음 순간에 난 발작하듯 집안의 조명이란 조명은 다 켜고 빗자루와 걸레를 꺼내 들었다. 돌연 청소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멍한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는 일단 행해진 행동을 마무리하는 게 빠를 거란 계산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12평 남짓 오피스텔엔 주방을 겸하는 거실과 침실, 그리고 창고에 가까운 작은 방이 딸려 있었다. 바닥을 쓸고 닦기에 앞서 더러운 그릇이 잔뜩 쌓인 싱크대 앞에 섰다. 며칠째인지 모르도록 방치된 그릇과 수저들에 뜨거운 물을 뿌려 눌어붙은 양념을 불렸고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거품을 냈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덕지덕지 묻은 기름때를 씻어내는 중에도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구운 계란을 다 먹어버렸기에 냉장고에서 날계란을 하나 꺼내 톡, 앞니로 구멍을 냈다. 반대쪽도 한 번 더 톡.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차갑고 비릿한 액체를 느끼며 다음 할 일을 생각한다.
창고에 가까운 작은 방. 그러니까 내가 옷방으로 쓰고 있는 그곳은 청소한 지 오래됐다. 침실도 마찬가지지만 그보다 더, 훨씬 오래라는 의미다. 매일 아침 옷을 갈아입을 때나 세탁한 옷을 정리할 때 말고는 들어갈 일이 없으니, 오염이 덜할 거라 생각해 청소에 소홀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먼지가 쌓인 걸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알고도 모른 체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지금은 일단 먼지를 털기로 한다. 그전에 마스크 먼저. 가뜩이나 기관지가 약한데, 피곤한 상태에서 먼지를 들이마셨다가는 내일 아침에 어떻게 될지 뻔했다. 편도가 부어 온몸의 근육에 미열이 전달될 것이고, 극심한 근육통을 느끼며 기다시피 병원에 가야 할 것이다. 출근을 한다 쳐도 업무 내내 피로에 시달릴 것이다. 그럴 순 없다. 회사일에 지장을 줘선 안된다. 아, 그런가? 회사일에 지장을 줘선 정말 안 되는 걸까?
‘중소기업에 입사해도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다’ 나는 마치 이 말을 증명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왔다. 지역에서 이름 있는 중견기업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특유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규모가 작은 회사로 이직을 거듭했다. 그렇게 정착한 지금 회사의 대표는 날더러 보물이라 하고 동료들은 에이스라 부른다.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가질 정도도 아닌, 적당한 급여를 받아 생활하고 저축한다. 내가 몸 담은 곳이 지향하는 바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 회사의 임원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 그럴 능력이 있고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 역시 있으니 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는 지금의 삶에 충실한다면 다가올 노년 역시 평범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콜록’
마스크를 썼는데도 목이 간지럽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막아준다던 KF94 마스크인데, 고작 옷에 쌓인 먼지는 막아주지 못하다니. ‘쓸모없네. 다음부턴 치과 마스크를 사야지.’ 생각한다. 털어낸 먼지가 차분히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밀대로 바닥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삐비빕!!!
삐비비!!!
별안간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 밀대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탁자 위를 살핀다.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 저런 알람은 들어본 적 없다. 어디지? 그것은 거실에서 벽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니 아가씨, 무슨 일이요?” 치직- “아랫집에서 민원이 들어왔어. 잘 밤에 물소리며 사부작대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치직 “뭐 하는 거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저편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아, 경비실이었어.’ 현관의 벽면에 인터폰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터폰은 경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난 이곳에 이사 온 지 10년 만에 깨달았다. 잔뜩 성이 난 경비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날 향한 힐난이 이어질 것 같아서 답할 말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면 우선 상황정리부터. 지금 시각이… 어라, 벌써 새벽 4시. 몇몇 별난 사람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각에 별안간 잠에서 깬 내가 그들의 고요를 망쳐버리고 말았다. 설거지와 청소, 내가 움직이고 물건을 부딪히며 낸 소리가 적막을 진동매개 삼아 위로 아래로 옆으로… 건물 전체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잠귀가 밝은 몇몇 사람이 깼을 테고 그중에서도 아랫집 사람이 참다못해 경비실에 민원을 넣었을 것이다.
“죄송해요. 바퀴벌레가 나온 것 같아서… 너무 놀라서요.”
기껏 생각해 낸 변명이 한심할 정도로 조악하다 생각했지만, 상대 입장에선 바퀴벌레라는 단어가 아찔했는지 목소리가 대번에 누그러졌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치직- “방역 업체가 매달 약을 치는데, 확실한 거요?” 치직- “그럴 리가 없는데.”
경비의 위축된 말투에 비로소 나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이제 한 걸음 물러나는 척. 일련의 문제를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는 척 대화를 마치면 될 것 같았다.
“아, 제가 착각했는지도 몰라요. 잠결에… 그렇죠. 제가 잘못 본 거겠죠. 아무튼 죄송해요. 얼른 정리할게요.”
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한동안 머릿속엔 소리가 맴돌았다. 경비원과 나눈 대화 속 치직- 하는 소리. 단어와 단어 사이를 채운 잡음. 그 잡음 때문에 방금 전 잠깐의 통화는 수평선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내오는 구조신호를 수신한 것 같았다. 저편에 전해진 내 목소리 역시 치직-하는 소리와 함께 전달됐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사는 이곳이 망망대해의 무인도처럼 느껴진다. 사방이 광활함으로 둘러싸여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공간. 인터폰을 내려놓은 뒤에도 난 바닥을 마저 닦았다. 조심조심. 아랫집에 소음이 전해지지 않게. 행여 인터폰이 다시 울릴까, 힐끔거리면서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다시 침실로 돌아왔을 땐 이미 바깥이 밝고 있었다. 새삼스레 방 안을 둘러본다. 침대 머리맡에는 아담한 3단 책꽂이가 놓여 있다. 10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올 때 장만한 것이 어느새 많이 낡아있었다. 웹툰 스토리 구상과 작화법에 관한 책들. 이제는 한물 간, 유명 작가였던 이들의 단행본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한때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것들 위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간밤에 정리한 화장대가 또다시 시선을 잡아끈다. 충분히 정리되었음에도 무질서의 꼬투리가 튀어나온 느낌. 이곳에서 시작된 혼돈이, 거기서 비롯된 허기가 간밤에 잠을 설친 원인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정답을 발견했다는 안도감 내지는 허무함 때문일까. 스르르 눈이 감긴다. 저항할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와 의식이 흐려졌다. 안되는데. 지금 잠들면… 안되는데…
벨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인터폰이 아니다. 침대에 엎드린 채 손을 휘저어 휴대폰을 찾았다. 팀장의 이름 석자가 액정에 떠올라 있었다.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 처리해야 할 건이 많은데, 그런데 그게 급한 거였던가?’ 머릿속에 희부연 안개가 껴 판단할 수 없었다. 벨소리가 멈추고 다음 순간엔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이 역시 팀장이 보내온 것이겠지, 생각하면서도 확인을 미뤘다. 게슴츠레하게 간신히 뜨고 있던 눈을 다시 감으며 생각한다.
‘일어나야 하는데, 적어도 지금 상황을 알리기라도 해야 할 텐데. 간밤에 일어났던 개인사를. 밤새 잠을 설치다 쓰러지듯 누워있는 지금 내 모습을’
한편으론 설명한다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솟았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거짓말을 궁리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이다. 급히 치료가 필요해 부득이 연락을 받지 못했노라고. 죄송합니다. 오늘 결근은 병가 처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글쎄 바퀴벌레가 나온 것 같아서요. 업무는 내일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는 조악한 변명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꼬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