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통해 살며시 찾아온 햇볕은 도망치듯 자리를 비켰다. 창밖에는 벌거벗은 나무에 몇 잎 남지 않은 은행잎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따스한 햇볕이 떠난 자리에 늦가을의 쓸쓸함이 바깥풍경을 통해 투영된다. 유리창 안의 세상은 과거 속에 멈추어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는 증명이라도 하듯 위태하게 매달린 은행잎이 바람을 따라서 춤을 추며 세상을 향해서 날아간다.
침대에만 드러누워 있는 남편이 마음에 걸리는지 태욱 할아버지의 옆에는 할머니가 찾아와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점심식사를 먹이고 한참 이야기를 한다. 할아버지는 언어소통이 안 되어 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눈짓으로 의사 표현을 할 뿐이다. 눈빛만 봐도 남편의 표정을 읽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얼굴에 나타난 시원한 표정은 남편이 말하지 않아도 소통하는 그들만의 언어와 감정을 교류하는 모습은 몇십 년을 두고 함께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다.
거실식탁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온 동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오남매를 뒀는디 우리 자식들이 오믄 자고가야 혀유 이제는 자리를 비켜줘야 되는디유.”
태욱할아버지를 침입자처럼 몰아붙인다. 할머니가 못 들은 체 가만히 있자.
“사람이 염체가 있어야제. 방세도 안 내고 무작정 남의 집에 있으믄 안되지유. 온 김에 오늘 데리고 가슈. 내 자식들도 잠 잘데 없는디 남의 사정 봐주것 같슈?”
“어르신 여기는 어르신 집이 아니고 저 할아버지도 같이 생활할 수 있는 요양원이에요.”
내 말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며 펄쩍 뛴다. 내가 산 집에 아무나 둘 수 없다며 당장 데리고 나가라며 소리친다. 치매 할머니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 할아버지에게서 나타난다. 어차피 말은 논리적으로 통하지 않을 거라서 할머니 가실 때 모시고 갈 거라며 거실에서 동료 분들과 같이 어울리라고 데리고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한참 놀다가 방으로 들어오신 동선 할아버지는 할머니 어디 갔냐며 찾는다. 집에 갈 때 데리고 간다더니 언제까지 이렇게 남의 집에 있을 거냐며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며 빨리 찾아오라며 나를 조른다. 순간의 기억을 용케 잊지 않고 있다. 할머니가 너무 힘이 없어서 아들 데리고 와서 할아버지 모시고 갈 거라며 달래자 택시 타고 같이 가면 될 것을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며 따진다.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에 옆 침대 장00이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제자리를 못 찾고 동선 할아버지 침대에 벌떡 드러누워 있다. 겨우 달래 놨는데 자기 침대에 딴 사람이 누워있는 걸 보면 또 소란이 일 것 같다.
“어르신 여기 남의 침대예요. 어르신 자리로 가야지. 딴 사람이 어르신 자리에 누워 있으면 어떡할래요?”
“그럴 때는 발로 칵 밟아 버려야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빈 침대만 보면 드러눕는 장은 자기 자리를 찾지 못 해서 비록 남의 자리에 누워있을 지라도 자기 자리 만큼은 누구에게도 내어줄수 없다는 결기를 드러낸다. 건장한 체격에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 그는 특수부대출신이라서 화가 잔뜩 나면
어떤 돌발행동이 나올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동료요양보호사의 귀띔이 있었다. 환자라서 아무리 판단력이 없고 기억을 못 해도 사람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은 있으니 주변 동료환자들에게 무시하는 느낌을 받으면 본능적인 감정폭발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라고 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동선 할아버지는 태욱 할아버지 자리로 가더니
“빨리 일어나!이러고 누워만 있으니까 병이 안 낫지. 일어나서 걸어야 병도 낫는 법이여”
침대에서 혼자는 앉지도 못하는 태욱 할아버지는 눈만 껌벅거리며 아무 반응이 없자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있나 일어나서 빨리 걸어 다녀. 몸을 움직여서 병이 나아야 집에 가지 언제까지 날 잡아 접수쇼 하고 이러고 있을 거여?”
건강한 사람도 자기 입장에서 보고 자기 기준으로 생각한다. 하물며 환자의 눈에 비친 동선할아버지는 태욱 할아버지가 게을러서 자리에만 누워 있다고 생각한다.
식당에서 올라온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밥 차 끄는 소리가 요란하다. 거실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동선할아버지는 동료들 틈에 끼어서 식사를 하고는 뒤로 나와서 앉아있다. 명절전날 재래시장통 만큼이나 시끄러워지는 아침식사는 환자들 속에서 요양보호사들 발길이 부리나케 뛰어다니며 양치와 복약을 돕는다. 동선 할아버지도 식후 약을 드리자 복약 후에 방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다른 사람은 약을 주고 나는 왜 약을 안 주냐며 따진다.
“어르신은 약 드셨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내 약 딴 사람이 갔다 먹은 거 아니요?”
“제가 분명히 드렸어요. 어르신 약은 제가 직접 어르신 입에 넣어드렸어요.”
“어허 !먹은 적 없어요. 내가 먹었다는 증거를 대시오.”
약을 주지 않고도 주었다고 억지 쓴다는 어이없는 표정이다. 화난 얼굴로 나를 향해 말을 한 할아버지 입에서 밥풀 하나가 튀어나와 내 볼에 붙었다. 식사케어하고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가장 바쁜 시간 환자가 복약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쓰레기통을 뒤졌다.
“어르신이 약 드신 증거 여기 있어요. 약봉지에 ‘아침 약 최동선’이라고 쓰여 있죠?”
빈 약봉지를 든 나를 보고 동선할아버지는 하얀 이를 드러내놓고 겸연쩍게 웃는다. 실종된 과거와 분별력 없는 현실 속에서 배회하는 대상자들과 우리 요양보호사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다. 대상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자괴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어린애의 수준으로 되돌아가버린 대상자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느끼는 권리와 행복이 있을 것이다. 그들 세계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으로 책임과 의무를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내 삶의 의무이다. 멈춰버린 고장 난 시계 때문에 시간이 정지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은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있어도 시간은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