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두랑께 이 징한 X들이 나를 강제로 자빨세놓고 옷을 벗겨?”
순간 연순 할머니의 손이 내 팔을 쥐어뜯으며 화장실문을 틀어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요양사 J가 옷을 벗기자 발로 J의 다리를 걷어차고 손으로는 J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하자 J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연순 할머니를 번쩍 안아서 목욕의자에 앉혀서 샤워기로 물을 뿌렸다. 따뜻한 물로 씻어주면 흥분이 가라앉을 것 같은 계산에 물을 끼얹자 순간 순한 양이 되었다.
목욕할 때마다 의례적으로 겪는 일이라 이제는 재빨리 행동으로 옮기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가 목욕을 안 하려 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달래도 목욕을 거부하며 입소할 때 가져온 옷 보따리를 안고 있었다. 목욕하는 사이 옷 보따리 누가 훔쳐 갈까 봐 불안하고, 더운물을 아까운 줄 모르고 퍼서 막 쓰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목욕을 하면서 여기도 닦고 저기도 닦으라며 많은 주문을 한 걸 보면 목욕할 마음이 기본적으로 없는 것이 아니라 더운물을 많이 쓰는 물 값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욕실에서 방으로 들어가면서 개운한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으따 징하게 개안하고 (개운하고) 좋소잉 그란디 즈그들 집에서 목욕하지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데려다가 왜 우리 화장실에서 목욕 시킨다요? 우리 물 값 많이 나오라고...”
“어르신 물 값 나오면 여기서 목욕한 할머니들한테 모두 5000원씩 받아서 물 값 내라고 하고 어르신은 물 값 안내도 돼요”
다른 어르신 목욕 시킬 때마다 물 얼마나 쓰나 뚫어지게 바라본다. 아예 화장실 문을 닫아버리자 살며시 고개를 내밀어 “그만저만 씻으셔 남의 물 씀시로 아까운지 모르고 고로코롬 막쓰면 쓰것소?”
그래도 많이 누그러진 표정이다.
어르신들이 요양원으로 들어오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는 무척 힘들어한다. 모두 낯선 사람들인 데다가 전 재산인 옷 보따리 훔쳐간다고 밤새 잠 안 자고 뒤척거리며 경계의 마음을 풀지 않는다. 광주에서 살다 올라오신 연순 할머니가 처음 입소 할 때 딸과 사위가 동행했다. 몸은 불편해 보이지 않지만 치매진단을 받았다 했다.
“장모님이 워낙 의심이 많아서 힘드실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의례적인 인사지만 환자의 치매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정보를 제공해 준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비교적 식사도 잘하고 행동에 제약이 없을 정도로 적응이 빨라 보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식후 약을 찾았다. 복약 후에는 요양원 올 때 조제해 온 약보따리를 달라고 했다. 약은 식후에 한 봉지씩 챙겨드린다고 했더니
“워따워따 징하네. 산 사람 눈 빼먹겠네 약을 내손에 놓으라고 한께 꺽꺽 고집부리고 간호사손에 놓더니 인제 약 다 잃어버렸당께. 딸년도 못 믿겠당께”
시도 때도 없이 약을 달라고 해도 주지 않자 요양보호사들이 당신 약을 훔쳐 먹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잠자코 잘 적응한다 했더니 틈만 나면 집에 가겠다고 본성이 나왔다. 옷 보따리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버튼을 눌러댄다. 전자카드를 사용해야만 작동하게 돼 있어서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소용없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멈춰 서고 문이 열리면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서 집에 간다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보안장치가 잘 돼있기에 나가지는 못 해도 가끔 집에 간다며 서성거리며 배회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깊다. 같이 식사하는 동료가 밥을 안 먹고 있으면 숟갈로 일일이 떠서 먹이고 물까지 먹이며 동료애를 발휘한다. 취침시간에 슬며시 문을 열고 나오셔서 앉아서 놀기도 하지만 치매 증상으로 같은 방에 있는 동료 환자를 딸로 착각하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낙상 위험이 있기에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자 동료환자를 안 보이는 데다 숨겨놨더니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 딸 어디다 뒀어 너희들이 내 딸 데려다가 해코지 할라고 그라지? 빨리 안내놓을래” 막무가내로 펄펄뛰는 바람에 달랠 방법이 없는데 마치 딸이 어머니 간식을 전해주려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 옥상에 데려가서 한참 이야기 하다가 내려왔는데 흥분이 가라앉고 정상적인 상태가 돌아왔다.
단순한 치매증상으로 나타난 현상인지 자식을 그리워한 나머지 일시적인 혼동인지는 모르지만 자식을 향한 모성애는 본능적으로 나타난다.
한밤중 슬며시 옆에 와서
“왔다갔다 하느라고 징하게 뻐치것구만 (피곤하겠구만) 으째서 잠 안 자고 있소?”
“어르신 목욕할때 왜 나 꼬집고 때렸어요?”
“아따 미안하요. 내가 당신 미워서 그랬것소? 내가 참말로 미안하요”
내손을 잡은 그녀의 손이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