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조명등이 노란빛을 희미하게 쏟아낸다. 유리창 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은 L아저씨다. 칠십대 초반이라 요양원에서는 젊은 층에 속한다. 모두 잠자는 시간에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리창 밖을 주시한다.
“뭘 그리 보세요?”
“여기아래 아파트에 여동생이 살고 있는데 낮에 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네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면회라고 해 봐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멀찍이 잠시 얼굴만 보고 가는데 그나마 요즘 바쁜지 오지 않네요.”
보호자가 면회 오면 어르신들은 감염예방을 위해 투명 실드캡을 쓰고 2m정도 떨어진 곳에서 얼굴 바라보며 몇 마디 이야기 하고 가는 정도다. 그리움을 사이에 두고 손 한번 잡지 못 하고 가면서 서로가 아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찡하다.
가로등불빛에 반짝이는 늦가을의 풍경은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더 쓸쓸하게 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잎이 절정을 이룬다. 가지에 남아있는 은행잎은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다. 길가 매연 속에서도 아름답게 물든 잎을 달고 있다. 바람이 불면 우듬지에 달린 잎이 나비처럼 날아서 바닥에 떨어진다. 바닥위에는 은행 알이 술취한 주객들에게 밟혀 신음하듯 널부러져 있다. 있다.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리운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을 더 쓸쓸하게 한다. 동기간의 그리움도 있겠지만 항상 같이 다니던 P할머니의 부재에 더 쓸쓸한 것 같다. 이별의 말도 없이 갑자기 떠난 P할머니와 항상 정답게 다니며 같이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식사시간에 앞치마를 가져다가 목에 둘러주고 식탁에서 식사가 끝나면 그녀의 휠체어를 밀고 가서 양치를 도와주고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며 TV시청을 같이했다. 열 살도 넘는 나이임에도 그는 누나처럼 연인처럼 살뜰하게 그녀를 챙겼다. 어르신들은 가족이 자주 면회 오지 않으면 요양원 안에서 서로 친분을 쌓으며 생활한다. 어느 날 갑자기 P할머니가 고열에 시달렸다. 보호자들에게 연락하자 병원에 입원시켰다. 급하게 입원하는 바람에 서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그는 밤만 되면 습관처럼 유리창 밖을 내다보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기약 없는 이별에 대한 미련인지 그의 얼굴은 늘 외로워 보였다.
빨아놓은 앞치마를 가지런히 개어 놓았다. P할머니가 쓰던 빨간 꽃무늬 앞치마를 찾아 가지고가서 식사 때마다 착용했다. 그는 원래 앞치마 착용을 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체온이라도 느끼려는지 P할머니의 앞치마를 빨아놓으면 누가 가져갈세라 마르지 않은 앞치마를 걷어다가 자기 침대위에 갖다 놓는다.
그는 몸은 비교적 건강한 편에 속했지만,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에 심한 편집증으로 집안에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채워놓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자 여동생이 요양원에 입소 시켰다. 가끔 여동생이 면회 오는 정도였다.
“부인은 바쁜가보죠? 면회 오는 것을 못 봤어요.”
“이미 헤어진 지 오랜데 내가 여기 있는 줄도 모를 거예요.”
그는 앉아서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가정은 이미 와해된 상태였다. 술 먹고 밤늦게 부인과 싸우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가서 수술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머리 한쪽이 움푹 꺼져있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바람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을 맞았다. 부모 앞에 먼저 가는 것이 제일 큰 불효라고 하지만 꼭 그런 선택을 할 만큼 모진운명이었는지 아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술병을 옆에 끼고 살았단다.
젊은 시절 파월장병으로 월남에 파병되었다. 정글을 헤치며 베트공과 대치상태에서 생사가 갈리는 전투현장에서 동료들이 전사하는 모습을 보며 사지 속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나왔다. 그래도 위문단 연예인들이 공연오면 그때는 병영에 활기가 넘쳤다고 회고한다. 군 생활을 마치고 귀국 했을 때는 의기양양했다. 그가 귀국 할 때는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녹음기와 텔레비전은 필수품으로 들여왔다. 비록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에서 고생하고 왔지만 경제적 보상이 있었기에 그 시절은 인생의 황금기였다.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지금은 이렇게 홀로 요양원에서 생활 한다며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p할머니 기다리는 거예요?”
“병원에 입원했으니 몸 나으면 다시 오겠지요. 그렇다고 내가 문병 갈 처지도 못 되고...”
그가 P할머니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빈 침대를 바라본다. 그는 항상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서 그의 사물함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인지 식사때마다 주인 없는 식탁 위에 따뜻한 물병을 갖다 놓는다. 그녀의 빈 침대를 쓸쓸히 바라본다. 부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살아온 과거이야기를 마친다. 밤늦은 시간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며 지나간다. 집에서 기다릴 가족들을 생각해서 잰걸음으로 바삐 움직인다. L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은 P할머니의 부재에 습관처럼 유리창을 바라보는 날이 언제쯤 끝나려는지...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찬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쓸쓸하기만 한 것 같다.
유리창아래에 눈길을 떼지 못한 그의 뒷모습이 가을처럼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