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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Jun 09. 2024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것이 없나니” 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나날이지만 새롭지 않은 날은 없다. 하루하루 맞이하는 날들이 그 시간만큼은 새날이요 처음시간이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한낱 과거로 돌아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도 결과는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뒤로하고 한 시대를 마감한 외숙모의 부음소식을 아침에 듣고 덜 깬 잠이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젊은 시절 외삼촌과 사별하고 숱한 역경을 이기고 살아온 삶도 이제 막을 내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 인생이 정해진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했는데 정해진 연수를 다 채우고 가셨으니 크게 아쉬울 것 없다 해도 사람과 사람의 이별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인간존재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장례식장 입관예배 때 자주 듣는 성경구절이다. 풀과 같은 인생의 끝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는 외숙모는 자연의 위치에 순응해서 본향으로 되돌아갔다.

영안실 로비에는 천상병시인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귀천歸天’의 시가 액자에 걸려 있다. 외숙모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삶의 완성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리지만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와서야 죽음을 인식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주변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라져 갈 때마다 나 스스로 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인생의 석양길을 향하는 내게 갑자기 세상살이의 쓸쓸함이 물음표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외숙모가 입원한 노인요양병원에 문병 갔었다. 침대에 앙상한 마른나무처럼 누워있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다 닳은 연골 때문에 걷는 것 자체가 어렵다며 이제는 땅에 발 디딜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이렇게 사느니 고생 그만하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내 얼굴을 알아보며 “아버지는 건강하시냐?” 물었다. “아버지 오래전에 돌아가셨잖아요.”

 “아! 그렇지 내 정신 좀 봐라” 밀폐된 공간에 세상과 차단된 삶을 살고 있으니 과거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치매는 아니어도 잠시 나타나는 섬망 증세가 동반되는 것 같았다. 한때는 젊음을 무기로 밤낮 가리지 않은 노동의 대가로 두 남매를 키워 결혼시키고 손자손녀까지 결혼시켜 증손자까지 봤으니 죽어도 여한 없다 하면서도 마음내면에는 삶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었다.

“다리수술을 하려고 했더니 심장이 안 좋아서 마취에서 안 깨어날 수도 있고 수술도중 심장쇼크사로 바로 가버릴 수도 있다 해서 수술도 못 하고 이렇게 살고 있다.”

마지막 바라던 수술의 꿈이 사라지자 걷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상심했다. 입시에 떨어진 수험생의 패배한 얼굴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외항선원이던 외삼촌은 일본에서 무역선을 타고 한국으로 오던 도중 태풍을 만나 난파선에서 동료선원들과 함께 바다에서 실종됐다. 외가에서는 외삼촌의 실종 소식을 듣고 사방팔방 뛰었다. 지나가는 어선에 의해 구조된 그 배에 함께 승선했던 유일한 생존자는 배가 난파됐을 때 선상 위에서 선원들에게 이리저리 몰리지 말고 침착하라며 배 위에서 선원들을 지휘하던 외삼촌의 마지막 모습을 얘기하면서 아까운 사람인데 결국 죽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외할머니와 외숙모는 넋을 놓고 말았다. 외숙모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낳은 유복녀가 육십이 되었으니 육십여 년의 세월을 남편과 이별하고 살아온 셈이다. 배에서 하선해서 집에 잠깐씩 들르는 것 제외하고는 외삼촌과 함께 살았던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십 대의 외숙모에게는 두 남매를 데리고 가시밭길을 살아왔다. 녹록지 않은 삶은 외숙모의 희생이 동반됐기에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가정의 구심점에 서서 자녀들을 이끌어왔다.

 노후에는 시골 농가를 하나 사서 혼자 살면서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외숙모는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사고도 잦았다. 큰 손자 결혼식 때는 어깨에 팔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어디서 다쳤냐고 물었더니 산에 밤 주우러 갔다가 넘어져서 어깨에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깨에 끈을 맨 채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그 뒤로도 고구마 캐러 남의 삯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고속질주 하는 승합차끼리 충돌해서 승합차에 같이 탔던 동료들 세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일화도 있었다. 아들과 손자들이 준 용돈도 다 못 쓰면서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남의 삯일까지 다니는 것은 일을 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시절의 생활이 몸에 베여있어 노동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습관처럼 일하는 재미로 살았던 것 같다. 이제는 그 모든 일을 다 놓고 영혼 떠난 육신은 빈손으로 차가운 영안실 바닥에 홀로 누워있다.

외숙모는 살아서는 화려함이라는 단어와는 상관없이 살았다. 외숙모의 강인한 삶은 꽃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마지막을 하얀 국화 속에서 문상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든 생물이 태동하는 봄날 외숙모는 세상의 힘든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쉼이 있는 본향을 향해 떠나는 길손이 되었다. 그토록 그리던 외삼촌과 재회를 꿈꾸며 세상과 이별을 하고 하늘나라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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