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의 거실은 소통의 장소다. 여러 명의 어르신들이 빙 둘러앉아서 담소를 나눈다.
자식들과 이별의 아픔을 얘기하던 A할머니 한 분이 한숨을 내리 쉰다. 비교적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면서 딸 둘을 결혼시킨 지난날들이 꿈만 같단다. 동호회 회원들과 테니스 치러 다니며 운동으로 체력을 잘 관리했었고 비록 혼자 일상생활을 해도 크게 불편할 것이 없었다. 종종 백화점 돌면서 쇼핑도 하고 어려움 없이 노년을 즐기며 살았지만 갑자기 사위가 암 선고를 받으면서 그녀의 삶도 바뀌었다. 딸은 사위의 건강관리를 위해 친정어머니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구십이 넘은 나이라 서서히 노쇠해 가는 몸은 어느 날부터 혼자 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야 말았다. 상실감에 빠질 즈음, 딸은 요양원 입소를 제의했고 마음의 준비 없이 엉겁결에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설 명절이면 집에 가야 한다며 날짜를 헤아리던 할머니는 명절이 되어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즐거운 나들이를 기대할 수 없다는 푸념이다.
“호랑이다! 늑대가 나타났다. 여우야 여우야!”
구십일세 약사 출신 B할머니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나열하듯 소리친다. 할머니 침상으로 갔더니 갑자기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내 돈 이천만원 내놔, 내 돈 가져와!” 움켜쥔 손을 펴려고 해도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혼자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죽만 먹고 연명한 할머니다. 손을 겨우 뜯어내고 빠져나왔다. 잠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알 수 없는 말을 노래하듯 혼자서 끊임없이 지껄인다. 젊은 날 약국을 경영하면서 4남매를 교육하고 집과 상가건물까지 마련해준 억척스러운 파워우먼 이었다. 유능했던 그녀의 지식도 경제력도 이제는 그녀의 삶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화려했던 과거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유난히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그녀 옆에 서 있다가 갑자기 내 돈 내놓으라고 멱살을 잡혔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영광의 젊은 날도 과거 속으로 안개처럼사라져 버렸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C할머니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동료 요양보호사와 함께 들어 침대에 올리려 다리를 드는 순간 고개 숙이고 있는 내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해도 쥐고 있는 손을 펴지 못했다. 이러다가는 멱살 잡히고 머리채 잡히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혼자 숟가락 잡고 식사하는 방법은 몰라도 폭력적공격성은 여전하다. 눈앞에 사람만 보이면 얼굴을 향해 침을 퉤퉤 뱉는다. 불과 한 두 시간 사이에 두 분 할머니에게 공격당하자 정신이 얼떨떨해진다. 가끔 피하지 못하고 폭력을 당할 때면 나도 사람인지라 뜨거운 감정이 꿈틀거리곤 한다. 물론 그 순간뿐이다.
언젠가 출퇴근 시간에 다음 근무자와 인수인계할 때였다. 한 요양보호사가 무방비상태로 공격을 당하면 우리도 같이 때리게 법을 바꿔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서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서 있다. 계절을 구별하지 못하고 낮과 밤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 그들의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만 지각능력이 없는 그들의 공격을 순간적으로 피하지 못하면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만다. 맞아도 대상자에게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알아서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는 게 불편한 현실이다.
요양보호사와 보호 대상자들과의 관계는 사실 인간과 인간의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요양보호사들의 근로 의욕이 꺾이지 않고 그들을 내 가족처럼 돌볼 수 있다. 신입 요양보호사들 중 며칠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 버리는 이들을 자주 본다. 조건을 따지거나 이해관계를 따지면 일하기 어렵다는 걸 모르고 현장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오늘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데 옆에 A할머니가 와 있다. 휠체어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자세히 바라본다. 뭔가 알고 싶은 궁금증이 일어난 모양이다.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커서를 따라다니던 눈길이 멈춘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뭐한 건지 나한테만 알려줘요. 비밀 지킬게요.”
“어르신들 식사하고 약 드신 것, 목욕한 것 기록하는 거예요.”
그런 건 왜 하느냐고 연신 묻는다. 정부에서 복지기금 지원을 받기 때문에 건강관리공단에 제출해야 할 문서라는 말을 듣고는 아무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다며 슬며시 자리를 뜬다.
시간의 바다에 떠다니는 그들의 지워진 과거와 추억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일엽편주나 다름없다. 지금 어느 공간에 누구와 함께 있는지, 가족들의 얼굴까지도 몰라보는 그들과 삶을 함께하는 요양보호사,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공단에서 비용을 지원하지만 생의 마지막 끝에선 그들에게 제공된 복지혜택을 실행하는 곳은 요양원이고 요양보호사는 요양대상자들과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이다. 비바람 부는 날 그들을 가려주는 우산 역할을 한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우산도 낡아가겠지만 그래도 찢어지지 않는 튼튼한 우산이 될 것이다. 지난 15년간 우산이 되어온 나는 지금 요양보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