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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Oct 25. 2023

요양원의 낮과 밤

  산소통을 든 여자



 밤 10시, 환자들은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실내등을 소등하고 조명등을 약하게 켜놓고 야간 업무일지를 쓴다. 의료진이 상주하지 않은 요양원에서는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당직요양보호사는 당황할 때 가 많다. 당직 간호사가 N할머니의 상태를 살피더니 심상치 않다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한테 연락하고 병원으로 모시라고 당부하면서 퇴근했다. 각 층마다 2인 1조씩 근무하기 때문에 교대로취침하고 근무를 이어간다. 수면시간이 끝나고 아침 7시까지 일하면 하루근무가 아침에 끝나고 다른 팀이 이어서 근무하는 형태다.


 동료근무자가 수면을 위해 수면침실로 내려가고 나 혼자 남게 됐다. 아무래도 N할머니의 상태가 불안해서 전날부터 미리 가족에게 연락해 놨다. 보호자는 전날 잠깐 보고 가면서 긴급 상황이 되면 다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요양원 측에서 병원으로 모시기를 부탁했지만 보호자는 환자를 이리저리 옮기는 것 을 원치 않았다. 어차피 고령에 병원에 가서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해 봐야 기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병원에서 며칠 목숨 연장해서 고통스럽게 사는 것보다는 편히 보내 드리는 게 환자와 가족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이유라고 했다.


 낮에는 평온하다가도 유독 밤에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낮에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하던 할머니는 지금은 호흡이 부자연스럽게 가끔씩 몰아쉬며 흔들어 깨우면 실눈을 뜨고는 다시 감아버린다. 경각에 달린 목숨이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처럼 나뭇가지에 끝에 매달린 낙엽처럼 위태하게 달려있는 듯했다. 사람마다 생활과 생각이 다르듯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다. 임종을 지키지 못하면 한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시시각각 상황을 체크하는 보호자가 있는가 하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세상살이인데 꼭 죽음에만 무게를 두지 않겠다는 보호자도 있다. 할머니의 시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삶의 벼랑 끝에 서서 바람 앞에 깜박 거리는 등불 같다. 금방 꺼질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난 불꽃같다.


 삶과 죽음의 회색선상위에 있는 환자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보호자한테 전화로 긴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으로 모시는 일이다. 보호자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지금 가까운 D병원으로 모실 테니 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하고 엠브런스를 불렀다. 아직 자고 있는 동료 요양사를 깨워서 병실당번 근무를 세우고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산소통에 줄을 연결해서 환자 코에 Airway를 걸쳐 산소를 공급해서 호흡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응급조치를 하고 산소통을 들고 앰뷸런스에 올랐다. 응급실에 환자를 내려놓고 당직의사에게 환자를 인계하자 아들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내 임무는 거기까지 끝났고 요양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산소통을 들고 병원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새벽 1시. 주변은 적막하고 상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불빛아래 산소통을 들고 병원 앞에 나왔다. 차가운 가을밤 공기에 으스스 한기가 돌았다. 세상은 고요하고 지금 생사를 가르는 시간에 힘겹게 생명줄을 붙들고 있는 환자를 뒤로하고 요양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한 대가 서서히 내 앞에 오자 손을 들고 세우려는데 바로 앞에서 머뭇거리던 택시가 갑자기 속력을 내어 도망치듯 사라졌다. 참 별 사람 다 봤다 싶었다. 빈차로 가면서 태우지 않고 가버린 건 뭐람 혼자 중얼거리는데 택시 한 대가 다시 왔다. 역시 손을 들자 차 옆문을 약간 내리고 무슨 말을 할 듯하더니 사나운 개한테 쫓기는 아이처럼 도망치듯 쏜살같이 사라졌다. 여자 혼자서 사람들도 거의 없는 시간에 택시를 잡으려 하면 편의를 봐주지 도망치듯 지나쳐버린 택시기사들이 야속했다.


 늦가을 새벽, 졸고 있는 가로등 불빛아래 찬바람이 귓전을 스치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바닥에 수를 놓았다. 산소통만 아니어도 달 밝은 가을밤을 혼자서라도 걸어서 요양원으로 가고 싶었다. 낭만을 즐기기 위함이 아닌 눈앞에 있는 현실은 달밤을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차림새를 보니 정신없이 환자를 태우느라 추운 날씨에 짧은 반팔티셔츠에 몸빼 바지처럼 헐렁한 흰색 바지를 입었고 밤에 머리를 감아서 풀어 흩어진 긴 머리는 가을 찬바람에 흩날렸다. 신발은 슬리퍼를 신고 있다고 지각한 것은 두 대의 택시가 내 앞에서 도망치듯 가버린 다음에 깨달았다. 거기다가 산소통을 붙들고 있었으니 정신이상한 여자가 폭발물통을 들고 다닌 것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마침 사회 불만 세력이 지하철 역 보관함에 폭발물 설치해서 폭발사고가 있던 후라 경계심 때문인지 택시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스며드는 가을밤의 한기 때문에 온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 모퉁이를 돌아 사람들 통행이 많은 곳으로 이동해서 택시를 잡으려 자리를 옮겼다. 밤업소의 찬란한 네온사인의 불빛이 화려했다. 젊은 남녀 한 쌍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인 젊음을 만끽하며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서히 걷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내 앞에 가까이 온 여자가 화들짝 놀라 몸은 뒤로 뺏다. 남자가 무슨 일이냐는 듯 여자를 자신의 뒤로 밀치고 나를 노려봤다. 순식간에 정신 나간 여자가 돼버린 전후 사정을 말하고 요양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택시를 잡지 못했다고 하자 남자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줬다. 택시기사는 그런 (이상한) 차림으로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 타기 어려울 것 같다며 요양원 앞에서 내려주고 갔다.


 N할머니도 죽음을 예견했는지 추석명절 전에 방문한 아들을 보며 집에 가보고 싶다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외로운 인생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옛집에 돌아가 손때 묻은 살림을 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요양원은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다. 가족과 집을 떠나서 노인들끼리 생활하는 공동체이고 어찌 보면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와서 대상자들을 모시고 가서 명절 쇠고 오는 경우가 있다. 부러운 시선으로 동료를 바라보던 N할머니도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들 곁으로 가기보다는 요양원에서 마지막 명절이 될지도 모르는 우울한 추석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할머니는 한 달 만에 아픈 육신과 세상의 모든 미련을 뒤로하고 거주하던 집이 아닌 영원한 안식처를 향한 긴 여행의 길을 떠났다. 화려한 은행나무가 옷을 벗 듯 할머니도 오늘밤 세상 육신의 옷을 벗고 하늘나라를 향해 영면의 길을 떠났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유난히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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