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려요!”
울려 퍼지는 소리가 한밤중 조용한 공간을 뒤흔들었다. 희미한 전등불이 파르르 떨린다. 무슨 소린가 싶어 방으로 들어갔다. Y가 휴대폰을 들고 침대에서 대각선으로 누워있다. 요양보호사 K가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으려고 해도 필사적으로 움켜쥔 손을 펴지 않는다.
그에게 가끔 나타나는 섬망 증세가 새벽 시간에 나타난 것이다. 평소 얌전하게 지내다가도 딴사람이 되어버린 순간에는 어떤 것도 통하지 않은 고집불통이 된다. 집에 가겠다고 난리를 치며 침대에서 내려오겠다는 그는 시간과 장소를 읽어내지 못한다.
언젠가 지갑 속에서 신용카드를 꺼내며 필요한 물품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꼭 필요한 것은 사회복지사한테 말하면 된다고 하자 내가 필요한 것도 사지 못하는 곳에 있는 것은 갇혀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투덜거렸다. 택시를 타려면 신용카드가 필요하다며 움켜쥔 손에는 지갑이 들려있었다.
그는 파킨슨씨병으로 심한 떨림과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며 휘청거리는 걸음은 항상 불안했다. 그런 그가 사고를 당했다. 휴대전화 충전기를 연결하다가 넘어졌다. 무릎 골절이 되자 병원에 입원했다가 한 달 만에 퇴원해서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나마 겨우 걷던 그는 사고 후유증으로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다리가 휘지 않도록 보장기구를 낀 채 꼼짝 못 하고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낙상사고 후에는 기억력과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활동량이 줄어들자 환청에 시달렸다. 밤중에 뭐가 나타났다며 손을 허공에 대고 휘저으며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곤 했다. 가끔씩 괴성을 지르면 방안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는가 하면 집에 가겠다며 내려달라고 짜증을 냈다. 밤에 움직일 수 없으니 자고 내일 가라고 말하면 입소자 편의도 안 봐준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며 얼굴을 붉혔다. 요양보호사는 환자들 돌봄을 위해서 있는 거 아니냐며 목청을 높였다.
그가 잠잠해지자 교대근무를 하기 위해 휴식에 들어갔다. 잠을 청해도 잠깐씩 졸다 나오는 요양원 야간근무는 안전사고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다. 보행이 가능한 대상자는 잠결에 화장실 가다가 넘어지면 바로 골절이다.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안전사고는 항상 도사리고 있다. 잠을 청해도 눈이 말똥거린다. 후다닥 뛰어가는 요양보호사 K가 Y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가보니 Y가 전화하고 있다.
“여기 요양원인데요. 지금 내가 감금되어 있습니다. 집에 가려는데 못 가게 잡혀있습니다. 빨리 구출해 주세요.”
또박또박 말하는 그의 음성은 상대가 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치매 환자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확한 단어구상을 하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K가 전화를 뺏었다. 곧바로 문자가 떴다.
‘귀하의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소방서에서 보낸 문자였다. K가 전화했다. 방금 전화하신 분은 요양원 입소자인데 치매 환자라서 밤중에 집에 간다며 전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대가 출동 직전에 통화한 덕분에 한밤중 소동은 겨우 진정되었다.
세월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사람에게 지워진 나이는 삶의 하향길에 지능과 판단력도 하향곡선을 달리다가 어느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지기도 한다.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생활하지 못하면 마지막에 요양 시설로 보내지는 순서가 된다. 요양원에 오신 분들은 대부분 자녀를 앞세우고 오지만 자발적 선택은 거의 없다. 오랜 설득 끝에 오긴 해도 죽어서야 나갈 곳이라며 심하게 부정하는 곳이 요양 시설이다. 짐 보따리를 들고 온 자녀 뒤에 숨다시피 하는 그들의 굳은 얼굴을 볼 때마다 씁쓸하다. 예전에는 노인환자 한 명이라도 집에 있으면 온 가족이 붙어서 돌봤다. 요즘은 집에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사회복지제도가 뿌리내리면서 집에서 노인을 모시는 가정은 거의 없다. 이미 편리함에 익숙한 핵가족시대가 낳은 우리들의 오늘이다.
다음날 Y의 딸이 면회를 왔다. 딸들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섬망 증세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연락받고 온 두 딸을 면회하는 그에게서는 전날의 불안하고 격정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불편한 몸으로 가족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온 시설에서 마음속에 쌓인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하면 제어할 수 없는 그도 자녀를 걱정하는 평범한 가장일 수밖에 없다. 돌아서는 두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래 니들 고생이 많다.”
짧은 한마디에 딸들에 대한 아버지의 미안한 마음이 들어있었다. 그의 두 눈에 서린 눈물이 딸들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