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나뭇가지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잎이 가을 햇볕에 반짝여 바닥에는 쌓인 은행잎이 카펫을 깔아놓았다. 걷는 발자국마다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난다. 이미 벌거벗은 나무 위에 매달린 나뭇잎이 파르르 떨며 나뭇가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입었던 옷을 벗고 추운 겨울을 준비한다. 겨울에 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제 몸에 달린 잎을 떨쳐 내야만 제대로 수분을 공급받을 수 있으니 잎을 떨쳐 내는 것은 추운 겨울을 살아가기 위한 나무들의 생존방식이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람도 매한가지다. 요양원 침대 위에 힘없이 누워있는 Y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만 껌벅인다. 욕창 예방을 위해 체위변경을 하려고 몸을 돌리면 귀찮다며 큰소리를 지른다. 모든 게 다 귀찮기만 한 그는 똑바로 누워있는 게 가장 편하게 생각한다. 체위변경을 때마다 “에이씨” 하며 불평한다. “어르신, 불편해도 좀 참으세요.” 말할 만큼 기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력만큼 여분의 힘이 있더래도 모든 걸 포기했던 그다. 그의 가족이 면회 온 적은 거의 없다. 딸이 다녀갔다는 소리만 들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가는 손가락을 지닌 그는 소지품 중에 몇 권의 책이 사물함에 있지만 그 책을 언제 읽었는지는 모른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면서 식사로 나온 죽을 섭취 하는데 연하곤란이 생겼다. 곱게 간 죽을 드시다가 기도에 걸려 꺽꺽 소리를 내며 얼굴이 파래지는 바람에 기겁한 적이 있었다. 가슴과 등을 쳐서 겨우 응급상태를 넘겼었다. 되도록 스스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게 삼키는 기능만은 살리려 했다. 식사 때마다 매번 따르는 위험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L-tuve를 삽입해서 코로 유동식을 한다.
야간 근무시간이었다. 새우등처럼 옆으로 등을 보이고 자는 Y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 약간 미열이 있어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얇은 이불로 바꿔 덮어주었다. 몇 달 사이에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는 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코에 L-tuve를 끼고 돌아왔다. 정확하게 언어를 구사하던 그는 말을 해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목소리를 낼 때마다 입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만 난다. 체위변경 하려고 몸에 손이 닿는 순간부터 눈을 크게 뜨고 턱을 위아래로 흔든다. 왜 귀찮게 하냐는 항의 표시다. 일 년 전 만 해도 스스로 걷고 휴대전화로 가족과 통화하던 그다.
때로는 동생한테 전화해서 돈 좀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하던 일이 있었다. 요양원 안에서도 그는 돈이 있어야 든든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동생이 와서 그에게 신용카드를 주고 갔다. 요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그가 신용카드를 사용할 일은 없었다. 그는 고생하는 요양보호사에게 한 번쯤 사례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빵 사 먹으라며 신용카드를 주려 했다. 아니라며 어르신 성의와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고 말하자 섭섭해하던 표정이 인상 깊게 남았다. 다혈질인 그는 기분이 안 좋으면 “너 이리 와봐” 하고 소리부터 지른다. “누구 찾으세요?” “여기 있던 키 쪼끔 한 여자 어디 갔어 휠체어 태워 달라고 했더니 도망가고 없어”
“불편한 점 있었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침 식사시간에는 휠체어 태워 드릴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식사 끝나고 태워 드릴 테니 조금 참으세요.”
씩씩거리며 흥분 가라앉지 않고 삿대질하던 그다. 갑자기 고열이 오르내리며 건강상태가 안 좋아졌다.
병원에 입원해서 중환자실에서 보낸 후 일반병실에서 다시 일주일 지나서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고 언어구사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머리카락은 단풍 든 소나무 노란 잎처럼 버석거렸고 윤기 없는 얼굴은 마른 나뭇가지에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으로 비친다. 암투병하다 먼저 떠난 아내의 빈자리가 그립다던 그를 딸이 동행했다. 요양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 흔들며 이별을 고하는 부녀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는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힘없이 바라본다.
비번일에는 산에 오른다. 깊어가는 가을, 만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봄에 새싹으로 자라서 여름에 무성하던 푸른 잎은 늦가을 한해의 마지막을 예쁜 옷을 갈아입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마무리하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숲, 가을은 사계(四季)의 완성이다. 저마다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 모습은 다양하다. 부부끼리 정답게 이야기하며 정상을 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마라톤 하듯 뛰어오르는 젊은이도 있다. 삶의 방식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가듯 산에도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이 얼크러지듯 살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앉아서 지나가는 등산객을 바라보는 다람쥐가 눈을 마주치자 재빨리 줄행랑을 친다. 까치가 나무 사이에서 곡예하듯 이리저리 자리를 옮긴다. 사람 발소리에 놀라 푸드덕 거리며 “꿩꿩” 제 이름을 부르며 날아가는 꿩울음소리에 내가 더 놀랐다. 겨울에도 푸름을 자랑하는 사철나무와 굳은 절개의 상징인 소나무, 봄날 아기 눈동자처럼 까만 열매를 반짝이며 등산객들의 눈요기를 시키던 벚나무도 옷을 벗고 서 있다. 여러 나무 틈새에 제 몸을 밀어 넣고 등산로에 떡 하고 버티고 서 있는 갈참나무는 한때 무성한 잎을 펼쳐 하늘을 가리던 잎은 노랗게 말라 있다. 바스락거리는 마른 잎을 흔들며 반겨 준다. 찬바람이 어깨 위를 스친다. 서걱거리는 낙엽 위를 걸으며 생각한다.
젊음을 불태우며 한 시대의 중심에 섰던 노인들은 한때의 산업역군이었고 경제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하던 경제 전사들이다. 지금은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밀려나 요양원의 침대 위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살며시 들어온다. 산에도 거리에도 한 조각 신음 소리에 눌린 요양원 창가에도 고요히 내려앉는다.
가족을 간절히 그리는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들의 희망의 빛이 되고자 한다. 그들의 삶 끝자락을 동행하며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