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릿한 기억, 그날의 레퀴엠

by 샤론의 꽃


발밑에 철석거리는 바닷물이 신발 위로 넘쳤다. 소녀는 징검다리를 하나 둘 건너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고모는 좀 좋은 곳으로 이사 가서 살지 왜 이렇게 이상한 곳에서 사는지 모르겠어. 고모 보고 이사 가서 살라고 할머니가 말해”

소녀의 투덜거리는 말에 할머니의 한숨이 깊어진다. 미끄러지면서 겨우 건너온 징검다리 바닷길은 물때에 따라서 밀물 일 때는 신발이며 양말까지 다 바닷물에 적시며 길을 건너야 했다. 손녀의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물에 젖은 버선을 바위 위에 널어서 말린 후 쉬었다가 고모네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마을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전형적인 어촌의 풍경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굴뚝에서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샘물을 퍼오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보인다. 고모네 집은 항상 식구들이 바글거렸다.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나를 무릎에 앉혀서 귀여워하던 나이 많은 고모부는 나를 보자마자 번쩍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고모와 고모부 고종사촌 오빠와 언니들이 많아서 큰 상 두 개를 펴고 밥을 먹으면 방안에 식구들이 꽉 차있는 것 같았다. 고모부는 부드럽고 인자한 성격이었다. 우리 집에 올 때는 어린 처조카들을 유난히 귀여워하며 사탕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심심할 때마다 꺼내주었다.


모내기가 한창인 여름날이었다. 갑자기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복막염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아 광주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가는 도중 차 안에서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식구들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고모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해서 집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이혼녀’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모습에 불편하기는 본인뿐만 아니었다. 제대로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딸은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주변에서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된 남자와 재혼을 주선했다. 인자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평판 좋은 남자였다. 다만 이제 갓 서른 인 젊은 여성의 배우자로는 나이가 많은 것 빼면 나무랄 것 없다는 매파의 말이었다. 오십 대 중반 나이의 홀아비와 서른의 젊은 여자의 혼인은 찬반의 우여곡절을 넘기고 겨우 이루어졌다. 결코 마음에 흡족할 수 없는 혼인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홀로 살 수도 없었다. 아이도 세 명이라 많지 않았다. 고모는 고민 끝에 재혼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생활은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다 큰 아이 셋 밖에 없다던 아이들이 자고 나면 아침마다 아버지를 부르며 집에 나타났고 세명의 아이들은 여덟 명으로 불어났다. 나이 차이 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차지 않은 혼인이었는데 그 많은 아이들 틈에 정신이 없었다. 고모가 마음이 변해 혹시 친정으로 가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고모부는 고모를 다독이며 최선을 다해 고모의 마음을 얻으려고 애를 썼다. 두 번의 결혼이 이렇게 허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바꿀 수 없는 숙명이라 여기며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재혼 후 남매를 낳았다. 고모의 첫째 아들이 세 돌이 되기 전, 둘째인 딸이 두 살 되었을 때 고모부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성해서 결혼한 세 명의 자식 외에 일곱 명의 자식을 두고 홀로 하늘을 향해 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겨우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무렵 그 행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작은아버지를 따라서 고모부 1주기에 참석했다. 떡시루에 떡이 익어가고 음식을 만드느라 부엌과 마루를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그날 진혼굿이 열렸다. 젊은 무당이 마루 끝에 앉아 푸닥거리할 장비로 여린 대나무 가지를 손질하고 있었다. 옆에 놓인 징을 들어서 맑은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 시험해 보려 징을 두드렸다. 채를 잡고 징을 두드릴 때마다 긴 여운을 남긴 맑은 소리는 석양에 드리운 낙조처럼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해가 지자 씻김굿이 시작되었다. 상여가 나갈 때 쓰는 펄럭이는 만장을 들고 줄을 지어 고모와 자식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무덤에서 푸닥거리를 한다며 등불을 들고 고모부가 묻힌 산으로 향했다. 무당의 주문 외우는 소리와 자식들의 우는소리, 구경 온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제정신이 아닌 듯 춤을 추던 무당이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식 열을 두고 세상을 하직했으니 서러운 그 심정 그 누가 모르랴. 우는 무당 옆에 작은 무당이 징을 ‘쟁쟁 쟁쟁’ 끝없이 쳐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죽어서도 영원한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몸부림치는 고모부가 빙의된 무당이 고모를 붙들고 미안하다며 끝없이 울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부르며 목 놓아 울어도 정작 고모가 낳은 두 남매는 무슨 일인지 상황 판단을 못한 어린아이라서 두 눈만 멀뚱 거리며 어리둥절했다. 무당은 굿을 시작할 때 사립문 앞에 떠 놓은 쌀그릇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쌀 위에 새발자국이 나 있다며 고모부는 새가 되어 날아갔다가 제삿날 집에 왔다고 말했다. 고모의 어린 남매를 뺀 다른 자녀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아버지를 잃은 설움과 새엄마가 마음 고쳐먹고 어린 남매 둘 데리고 떠나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니 그들의 눈물샘이 마르지 않았다.


고모부는 생전에 고모를 무척 아낀 부드러운 성격이었다.돌아가신 후에도 고모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무당을 통해서 고모부의 혼이 고모를 위로하려 했을까? 먼저 가신 임을 위해 진혼곡을 부르는 무당을 바라보는 고모의 착잡한 심경을 고모부는 알았을까. 알아들을 수 없는 무당의 주술이 고모의 마음을 꼭 잡아 앉혔을까?

고모는 일생동안 4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다. 긴 세월을 고고한 학처럼 홀로 살아왔다. 고모의 운명도 참으로 박복했다. 결혼한 자녀 빼고 칠 남매를 두 어깨에 운명처럼 지워진 무거운 짐을 지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남편의 사랑과 행복을 끝까지 누리지 못하고 고모부와 짧은 인연은 그렇게 끝났다.


남은 자식들과 살아가야 하는 생존의 문제로 혼자 남은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던 그녀는 지금 아흔을 넘긴 노인이다. 아픔의 날들을 가슴에 새기면서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고모에게 영원한 안식의 세계를 꿈꾸는 레퀴엠(Requiem)의 장중한 음악이 먼 기억 속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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