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는 모습으로 걸어들어 온다. 뒤에 따라온 아버지는 큰 키 에 마른체형이다. 아들은 사회복지사와 면담 후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고 살며시 나간다. 아들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아버지는 로비소파에 털썩 앉는다. 결코 스스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란 표정이다. 아들과 함께 찾은 요양원은 낯선 풍경에 새로 적응해야하고 단체생활 하다보면 제약된 행동 또한 불편하다는 것은 이미 경험 해 본 듯한 표정이다. 아들 또한 아버지를 두고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왜 또 여기로 오는지 모르겠어. 여기가 병원인가요?”
“여기는 요양원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니 만큼 불편하시더라도 규칙 지키고 생활하시면 됩니다.”
“아들이 나를 버렸어. 병원으로 요양원으로 데리고 다니며 저 혼자 잘 살겠다고 날 버리고 가버렸어”
그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60대중반인 그는 체중이 50Kg 조금 넘는 말라깽이였다. 집에서 밥 대신 술만 마시고 생활하는 아버지를 그냥 놔둔다는 것은 아버지를 방임하는 것이라며 아들이 병원과 여러 요양원을 거쳐 모시고 온 것이다.
아들이 직장에 나가면 하루 종일 마신 술병이 방안에 수북이 쌓여있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자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가 적응 할 수 있는 요양원을 물색하다가 모시고 왔다.
“아니 당신 왜 여기 있어?”
요양보호사J를 보고 반긴다. J는 무슨 소린지 어리둥절하다. J가 가는 곳마다 강아지가 주인 따라다니듯 졸졸 따라다닌다. 부인과 닮은 J를 아내로 착각하고 연신꽁무니를 따라다닌다. 아내와 헤어진 지 꽤 오래되었다는 K씨는 이혼 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 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바람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과 딸은 지쳐있었다. 이미 결혼날짜까지 잡아놓고 아버지의 비정상적인 생활에 약혼녀로부터 파혼통지를 받았다며 부모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드린다는 아들의 탄식어린 말을 아버지는 아는지 모르는지 무사태평이다. 추석이 오자 아들은 간절히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갔다. 연휴 삼일동안 집에 있겠다던 그는 하룻밤자고 밤10시가 넘어서 다시 아버지를 모시고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가자마자 소주를 사다 마시고 방에 드러누웠다. 겨우 추석을 쇠고 잠든 줄 알고 잠시 바깥에 나간사이에 소주를 사다가 마시고 있었다. 밖에 나가지 말고 TV보라고 문을 잠가 놓았더니 유리 창문을 넘어서 다시 소주를 사오고 계속 술 마시는 바람에 밤늦은 시간에 아버지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돌아가려는 아들을 다시 따라가겠다는 K씨는 눈에서 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번득인다. J가 눈앞에 나타났다.
“어르신 기다렸는데 이제 오셨어요?”
J를 보자 반가웠는지 손에 쥐고 있던 귤을 건넨다. 한눈 판 사이에 아들은 살며시 나가고 문이 열리고 아들이 나가는 소리를 듣고 “내가 죽었다는 소리 들어야 올 거냐?”
분노를 쏟아내며 소리 지른다.
그도 젊어서는 어엿한 가장이었고 건실한 직장이었다고 한다. 같은 직장동료인 처형이 소개한 아내와 결혼할 때는 호감 가는 미남청년 이었다. 대학 전공을 살려서 다니던 직장도 아내와 이혼 후에 퇴직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제대로 정착하지 못 하고 생활했다는 그의 설명이다. 여전히 J뒤만 따라다니는 그는 아내와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 속에 배회 하는 것 같다.
“이제 자야 되니까 침실로 가세요.”
“당신도 같이 가지” 여전히 과거 속에서 헤매는 그는 옛날의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다. “어르신 정신 차리세요. 나는 아내가 아니고 요양보호사J예요.”
그는 겨우 현실을 깨닫는 듯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가 책임 있는 삶을 살았다면 아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지는 않았을 텐데 쳐진 어깨로 발길을 돌리는 아들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