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by 샤론의 꽃



게릴라처럼 나타났다 슬며시 모습을 감추던 장맛비가 소리 없이 물러갔다. 군데군데 파인 공원화단위에는 휩쓸고 지나간 물살에 누운 화초들이 일어나지 못하고 흙에 붙어있다. 땅 속에 있던 지렁이도 물난리를 피해 땅 위로 기어 나왔다가 내리쬐는 햇볕아래 길게 늘어져있다. 자연의 재해 앞에 동식물이라고 재난을 피해 갈 수 없다. 쉼 없이 울어대는 매미의 떼창이 귓속을 어지럽힌다.

머지않아 끝나는 자신의 생을 이렇게라도 세상에 알리려 하는지 집요하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서러운 마지막 합창이 슬픈 리듬이 된다. 어디론가 숨어들었던 비둘기가 먹이를 찾으러 공원 한가운데 나타났다. 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주워 먹던 비둘기의 먹이도 쏟아지는 비에 휩쓸려버리고 맨땅 위를 뒤뚱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가엽다.


지난해 장마로 피해가 속출했던 지역도 유난히 많은 피해를 남긴 참사 수준이었다. 서울에서는 반 지하에 사는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했다. 쏟아지는 폭우에 손 쓸 수 없이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방안은 거대한 수조로 변했다. 한밤중 목숨 건 탈출이 이어졌다. 침수지대에 주차된 주민들의 차들이 흙탕물 위로 종이배 떠내려가듯 쓸려가는 모습이 TV화면을 통해 방송되었다. 악몽 같았던 지난해와 같은 피해가 또 발생했다. 재산피해는 물론이고, 물난리로 가족을 잃은 가슴 찢긴 유가족들의 슬픔이 치유될 때까지 긴 세월의 고통 속에서 신음할 그들의 아픔이 가슴에 아련히 스며든다.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나약함을 실감하며 할 말을 잃었다.


고향에서의 유년시절, 우리 집은 큰비만 오면 짐을 싸서 이웃집으로 피난했던 그때의 모습이 생생하다. 집 윗쪽으로 올라가면 산골짜기 아래에 큰 저수지가 있다. 비가 오면 사방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을 받아 모아두는 저수지는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은 저수지는 비옥한 땅을 적시는 마을의 젖줄이었다. 그곳에서 내려온 물은 온 들판을 푸르게 하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마을에서는 저수지를 관리하는 ‘물 감독’ 이라는 관리인을 두었다. 한 여름 가뭄이 들면 그는 마을 스피커를 통해 저수지물 터놨으니 논에 물 댈 분은 물 대라고 방송을 했다. 주민들은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논가에서 지키고 있다가 윗 논에서 내려온 물을 차례대로 자기 논에 대곤 했었다.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같은 저수지이지만 늘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제방 둑이 무너지면 온 들판을 한꺼번에 휩쓸어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흉기가 될 수도 있었다. 우리 집은 저수지 아래 첫 번째 집이었으니 재해가 나면 타격이 제일 클 수밖에 없었다. 큰 비가 오면 저수지 제방이 넘치지 않나 하고 어른들은 잠을 자지 않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다.

그해 여름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아버지는 저수지 둑을 오르내렸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온 물은 어느 순간 저수지 제방 둑까지 차올랐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맑은 물에 사방골짜기에서 모여든 흙탕물이 유입됐다.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아버지에게 저수지 둑이 무너지면 집 떠내려간다며 빨리 확인해 보라며 시시각 성화를 댔다. 비가 이 상태로 밤새 내리면 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모자지간에 걱정 쌓인 말을 하고 있을 때 비옷을 입은 물감독이 지나가는 모습을 할머니가 보았다.


“지금 어디 가는 거요?”

“저수지 수문 열러 가요”

“에잇 양반! 시방 그것을 말이라고 하요? 이렇게 비가 많이 온 데도 여태까지 그냥 집에 있었소?”

“비가 하도 많이 쏟아져서 쬐간 늦게 나왔는디 뭐 잘못했는가요?”

“이 양반아 당신 집이 저수지 아래 있어서 둑 무너져서 집 떠내려가도 비 타령 하고 방구석에 앉아 늑장 부리고 비 그치기만 기다리고 있었을 것 갔소? 비가 오면 맨발로라도 뛰어가서 저수지수문을 빨리 열어야 할 것 아니요?”


화가 잔뜩 난 할머니는 물 감독 아저씨에게 삿대질까지 했다. 마을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진 그는 저수지 제방 둑이 터지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 현장에 갈 수 없다고 안일하게 집안에 있었다. 저수지제방 둑에 물이 거의 차오르도록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나타났다. 자칫 큰 재앙으로 이어질 번한 상황이었지만 그날은 운 좋게 비가 그쳤다.


날이 갠 뒤 어머니를 따라서 저수지 쪽으로 올라갔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뒤집어엎을 것 같은 거대한 물줄기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험상궂은 얼굴을 싹 바꾸고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물은 저수지 수문을 통해 흘렀다. 나뭇가지에 걸린 햇살은 금방이라도 톡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반짝이는 햇볕아래 물살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쏟아져 내렸다. 수증기가 날리면서 햇볕에 반사되어 공중에 무지개가 반원을 그렸다. 산골짜기를 통해 저수지로 흘러들었던 물은 며칠 동안 방류되었다.


마을 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마을 주민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졌다. 그 지역에서 제일 큰 저수지가 만들어지기까지 주민들은 허기를 참으면서 흙을 퍼내느라 지게 짊어진 어깨부위가 벗겨지도록 일을 해 내었다. 여자들은 삼태기를 머리에 이고 흙을 퍼 날랐다. 주민들의 희생 어린 피땀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였다. 저수지를 만들기 전에는 가뭄으로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고 가뭄에는 벼를 수확하지 못 하고 타들어가는 마음이었다. 저수지를 막은 후에는 물 부족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비만 오면 둑 무너진다며 애태웠던 저수지는 8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한 모습으로 마을 수호신처럼 그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의 곳간창고를 채워주고 있다.


시골은 장맛비가 그치면 안팎으로 일거리가 쌓인다. 솜털구름을 이고 서있는 바지랑대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늘어진 빨랫줄을 받치고 있다. 그 위에 눅눅한 이불을 끄집어내서 걸쳐 놓고 햇볕사이를 끼어 다니는 바람에 말리기를 몇 날며칠 반복한다. 지친 몸의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이불은 살랑대는 하늬바람과 햇볕으로 낮 시간에는 종일 빨랫줄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그네를 탄다. 바람결에 날아온 잠자리가 이불 위에 앉아서 날개를 퍼덕이며 주변을 살피다가 춤을 추며 날아가곤 했다. 장독대위의 항아리마다 뚜껑을 열어서 습한 날씨에 곰팡이가 낀 간장된장을 일광욕시킨다. 박을 잘라 만든 바가지는 물을 잔뜩 머금고 부엌 아궁이 위에 엎어져 있다가 햇볕을 좇아 장독대 귀퉁이에서 몸을 말렸다. 흙탕물이 휩쓸고 지나간 논밭도 사람일손을 기다린다. 밭둑 위에 주먹만 한 호박들이 물구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던 시골 풍경이 머릿속에 모아진다. 빗속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던 시골살이가 아련한 추억으로 스쳐지나간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번 장맛비는 서울뿐 아니라 충청도로 또 다른 지역으로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망나니 마냥 많은 피해와 이재민을 내었다. 시커멓게 험상궂은 구름떼가 사라지고 모처럼 해가 웃는 얼굴을 드러낸다.



*이번 집중호우로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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