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살은 살아야지

by 샤론의 꽃

“쿵”

커다란 물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진 소리다.점심 먹고 몸이 나른해지자 잠깐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에 물체가 압력을 받아 바닥에 떨어진 듯 둔탁한 소리가 건물을 뒤흔든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나는 곳으로 갔다. 순자 할머니가 마룻바닥에 나딩굴고 있고 그 옆에는 요양사 C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서 있었다. 넘어진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오메오메 사람죽것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오른팔을 앞뒤로 흔들며 건물이 떠나갈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사고라 요양사 C는 엉겁결에 할머니를 부축해서 침대에 옮겼다. C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오전부터 눈이 아프다고 볼 때마다 쫓아다니면서 안약을 내놓으라고졸랐다. 서 있는 C의 가슴을 두 손으로 미는 바람에 본능적으로 할머니의 손길을 피하면서 몸을 옆으로 돌렸는데 할머니의 몸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사람 살려! 오메 나 죽것네, 나가 가만히 있는디 요양사가 나를 떠 밀쳐부렀단 말이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무슨 힘으로 큰 소리를 내는지 모를 지경이다. 다만 다행스런 것은 일어서는데 무리없어 보였다. 계속 나 죽것네 를 외치자 옆 침대 할머니가

“저렇게 힘 있게 소리 지른 것 보니까 많이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정말로 아프면 소리도 못 질러.”

그렇다.할머니는 보기에 다쳐서 아픈 것보다 약이 올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오전부터 안약을 달라고 했지만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 줄 수 있기 때문에 할머니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는데 넘어지고 나자 이래저래 화가 나서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것 같아 보였다.

간호과에서 뛰어 올라왔다. 병원에 가서 몸에 이상 유무를 알아야 하니 C에게 동행하자고 했다. C는 가슴이 떨리는지 안절부절 못했다.

“언니! 나 떨려서 도저히 못가겠어 언니가 대신 따라가 줘”

휠체어에 할머니를 태우고 바깥에 나갔더니 한낮 더위 때문에 길가 보도블럭이 열을 받아 후끈거렸다. 다행히 요양원에서 가까운 곳에 정형외과 전문 병원이 있어 내가 휠체어를 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 로비에는 장마당같이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탈골된 어깨를 메고 온 사람, 다리에 깁스를 하고있는 사람, 손가락이다쳐서 온 외국인 노동자, 할머니는 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메 나 죽것네 내가 약 쪼간 달라고 했더니 나를 발로 칵 차버렸단 말이요. 내 고향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00리 박00이딸 박 순자요”

할머니는 치매가 있다. 그래도 분별력이 아주 떨어진 건 아니고 옛날 일을 거의 기억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따가운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 할머니는요양사가 발로 차버렸다고 거듭 소리 지르자 나는 대상자를 발로 찬 몰지각한 요양사가 돼 버렸다.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민망스러운 처지가 돼 버렸다. 할머니의 차례가 되자 담당 의사선생님 앞에서도 떠들어댔다.

“선생님 내가 눈이 안 좋아서 안약 쪼간 주라고 한께 그것 주기가 싫다고 나를 발로 칵 차부럿단 말이요. 내 고향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00리 박00딸 박 순자요”

담당 의사는 씨익 웃더니 어깨 들어 올리고 일어서 보라고 하며 앞뒤로 돌아서게 한 다음 환자를 나가게 한

“어디가 아프기는 아픈가 봐요. 몸은 이상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넘어진 충격으로 뇌에 이상 없는지 MRI 사진이나 한번 찍어보세요”

그 병원은 정형외과 전문 병원이라 신경외과가 없어서 MRI 찍으려면 다른 병원으로 가야했다. 두 병원을 옮겨 다니면서 깨방정을 떠는 순자할머니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수치를 당해야 했다.



노인들이 요양원으로 들어오는 것도 각 가정마다 드러나지 않은 사연들이 많다. 치매로 자신의 존재와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미로 속을 헤매는 부모를 두고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해야 하며 그런 부모를 두고 기약 없는 고난의 행로를 가야 하는 자식들의 삶 또한 깊은 상처의 흔적으로 남게 된다.

순자 할머니도 요양원에 처음 입소했을 때 가족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서야 결정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밤마다 자지 않고 이방 저 방 다니면 넘어질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가족들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형제들 모여서 회의 끝에 비교적 시설 좋은 곳을 찾아서 모셔온 것이다.

워낙 수다스럽고 말 많은 데다 요양사만 보면 아들한테 전화해 달라고 졸라서 골치 아픈 할머니로 인식됐었다. 가끔씩 “아이고 이놈의 세상 못 살 것 같당께 먹으면 칵 죽는 약좀 주쇼잉”

“할머니 살 생각을 하셔야지 왜 돌아가신다고 해요? 그런 말씀 하시면 정말 돌아가셔요.”

죽는 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언젠가 아들한테 전화해 달라고 조르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아들이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 이놈의 세상 살면 뭣 하것소? 차라리 칵 죽어불랑께 먹으면 죽는 약 좀 갖다주쇼잉”


내 주머니에 사탕 몇 알이 있기에 할머니 손에 쥐어주며

“할머니 이 사탕 먹으면 죽는 사탕인데 드실래요? 어지간하면 드시지 마세요.”

사탕 알을 까서 드렸다. 내가 보는 앞 에서 입에 털어 넣었다. 당연히 뺏을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태연히 보고만 있자 입안에서 사탕을 꺼내서 획 집어 던져버렸다.

“할머니 이 사탕 어렵게 구한 건데 왜 버리세요?”

“지금 죽기는 너무 억울해 내 나이가 아흔일곱인디 그래도 백 살은 넘게 살아야지”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본능이다. 한포기의 풀도 생명이 있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삶을 누가 결정짓겠는가.

다행히 넘어진 후 후유증 없이 순자할머니의 몸 상태가 호전되어 보행 하는데 이상 없었다. 아들을 보자 “오메 내아들 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기나 하냐”

치매가 있다고 근본적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겠지만 할머니의 수다 또한 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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