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할아버지의 순정

by 샤론의 꽃


아침시간, 바닥청소를 하느라 청소기의 소음이 귀청을 울려 오가는 사람의 발걸음도 감지하지 못하고 이쪽저쪽 다니며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고 있다. 옆에 커다란 물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눈을 들어 앞을 보는 순간 저벅저벅 걸어가는 한 사람, 아침 이른 시간에 요양원을 방문할 사람은 키다리 할아버지 밖에 없다. 인사를 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버렸다. 인사를 해도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갈 때도 가겠다고 말한 적도 없다. 아내 옆에 묵묵히 있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할아버지다. 할머니의 침대 옆에서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눈길이 서로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할아버지를 반기고 입가에 흘러나온 미소가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다 주자 컵을 한 손으로 잡고 홀짝 거리며 마시다가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한 컵 뽑아 와서 침대를 ㄴ자로 새우더니 부인의 입에 율무차를 서서히 흘려 먹이고 있다.


할머니는 뇌졸중 환자라 전신마비에 언어장애까지 있고 영양섭취는 레빈튜브로 환자용 메디푸드를 사용한 중환자다. 입으로는 물 한 모금도 섭취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은 물론 앉는 것도, 말도 못 하지만 의식은 명료해서 눈빛으로 의사표현은 곧 잘했다. 남편이 찾아오면 서로를 향하는 뜨거운 눈빛은 두 사람이 금슬 좋은 부부였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음식이 입으로 직접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더니 천천히 먹이면 괜찮을 거라며 고집을 피웠다. 무슨 말을 하는지 환자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으로 봐서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언젠가도 와서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가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말이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오고 할머니의 얼굴이 환 하게 핀 함박꽃처럼 밝아졌다. 두 사람의 달콤한 사랑의 언어가 비록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어떤 기술적인 언어보다도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 것 같았다.


할머니의 굳어서 굽은 바짝 마른나무 같은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노를 젓듯 다리 관절운동을 시키고 있었다. 격렬한 운동에 다리골절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서서히 하라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두 다리와 두 팔을 들어서 한참을 운동시키고 나면 할아버지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관절운동이 끝나면 얼굴을 쓰다듬고 지압을 했다.

이마와 코 옆 볼 등을 지압하고 나면 환자의 연약한 피부는 멍이 들어있었다. 기술적으로 하는 지압이 아니라 자신의 정성으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 표시를 하는 것 같았다. 돌아갈 때는 침대 옆에 걸린 달력에 방문한 날짜에 볼펜으로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는다. 방문한 시간을 써놓고 다음 예정 방문 날짜를 부인에게 얘기해 준다. 둘이 손을 붙잡고 한참 있다가 아쉬운 듯 뒤돌아보며 나간다.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할머니는 눈가에 구슬 같은 눈물이 맺힌다.뒤돌아가는 남편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본다. 서글프고 아름다운 이별의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언젠가 “아내가 연상의 여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도 부부의 연을 맺고 살다가 할머니가 60대 중반에 뇌졸중으로 덜컥 쓰러졌다. 할아버지는 아들들 두 명은 성인 되어서 각기 가정을 이루고 살지만 자신의 삶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어떻게 해서라도 치료하려고 병원에 몇 년을 입원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치료비 때문에 요양원으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매일 요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날마다 할머니 옆에서 닦아주고 마사지해주는 바람에 집에도 안 갔다. 규칙을 어기고 불편한 요양원 간이침대에서 잘 때도 많았다. 컵라면 사다가 물 부어 먹는 게 안 돼 보여서 원장님이 마음 편히 식당에서 식사하라고 배려해 준 덕분에 날마다 할머니의 곁을 지켰다. 아침에 물수건으로 세수시키고 팔다리 닦아주고는 가슴, 등까지 정성스레 닦아 주고는 화장을 시켰다. 환자에게 하얗게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빨간 립스틱으로 입술을 바른 다음 눈썹연필로 까맣게 눈썹을 비뚤거리게 그려놓으면 마치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았다. 메이컵이 완성된 부인을 보며 예전의 예쁘던 모습을 회상하는지 화장시킨 후에는 이리저리 살펴보며 흐뭇한 표정이다. 아예 주변의 시선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부인에 대한 사랑에는 지극 정성이다.


언젠가부터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한 달에 두세 번쯤 다녀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건강이 안 좋아 시골에 요양 중에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오면 할머니의 시선이 할아버지에게 고정되어 있다. 아들들은 어머니 얼굴 한번 보고는 로비에서 TV시청하며 아버지가 나오기를 기다린 정도다. 여름날에도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할머니의 다리를 붙들고 노를 젓듯 관절 운동을 시키더니 환자 기저귀를 풀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땀이 환자도 더울 거라고 생각했는지 한참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본인의 건강 상태가 안 좋아서 시골에서 요양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못 오고 한 번씩 오려면 새벽에 나서서 와서 부인을 케어하고 가면서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보고 간다. 두 분은 견우와 직녀 같았다 둘이서 봄날 같은 사랑을 하면서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아쉬움 때문에, 날을 정해서 와서 만나고 가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들처럼 헤어질 때는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할머니는 폐렴증세로 가끔씩 열이 나고 소화도 잘 안되는지 설사를 자주 했다. 할머니가 몸이 안 좋다는 연락을 받고 할아버지가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아침 일찍 요양원을 방문했다. 혼자 장거리를 오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수척해진 모습에서 그의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몸 상태는 아내 곁에 오래 머무를 정도가 되지 못했다. 아내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다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져 주면서 가야 한다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돌아갔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듯 사랑하는 남편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못 잊는지 남편이 서있던 곳을 향해 눈길을 주시했다. 할아버지가 간지 두 시간쯤 되어 할머니는 잠자듯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두고 혼자서 세상을 떠나야 하는 외로운 여행길을...

두 사람은 서로를 볼 때마다 사랑의 감정을 공유했고 서로를 향하는 뜨거운 눈빛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마지막을 남편의 뜨거운 사랑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아쉬운 이별을 고하고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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