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청년 마환. 사건을 의뢰받고 해결하는 탐정? 아니다. 범죄를 쫓고 범인을 잡는 형사? 더더욱 아니다. 그는 커피를 만들고 파는 바리스타일 뿐이다. ‘탐정’은 그의 애칭일 뿐. 바리스타이자 카페 ‘할의 커피맛’ 주인인 그에게 ‘탐정’이란 애칭을 붙여 준 건 다름 아닌 카페에 드나드는 손님들. 그의 수상쩍은 행동은 그가 귀신과 대화를 나눈다는 흉흉한 소문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인데….
화창해서 잔인한 어느 봄날 14시 30분경, 손님의 노트북이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을 시작으로, 연이어 그의 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에 환은 자신의 탐정 실력을 발휘한다. 매일 같은 자리에 놓여 있는 커피 한 잔,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환. 과연 환이 귀신과 대화를 나눈다는 건 사실일까? 그에게는 어떤 말 못할 비밀이 숨어 있을까?
『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은 인간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고 통찰하는 주인공 마환의 성장 이야기다. 카페 ‘할의 커피맛’ 주인이자 바리스타인 스물셋 청년 ‘마환’과 그에게만 보이는 유령 ‘할’,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범죄의 단서를 추리하며 범인을 찾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추리소설이다. 아동 학대와 가정폭력, 다문화 가정, 제주도 투기 개발 등 최근 한국 사회 문제들을 소재로 다룬 점이 눈에 띈다.
소설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욕망, 외로움 등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주인공인 ‘환’은 어린 나이에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한국에 나와 홀로 독립한다. 귀신과 노는 아이로 따돌림을 당하던 ‘환’은 검정고시로 학교를 졸업하고 경찰학교를 다니기도 했지만, 바리스타가 되고 카페를 운영하게 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가 된 그에게 친구이자 형이며 아버지인 ‘할’이 커피를 좋아했기 때문. 이렇게 외톨이로 자란 덕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그들을 관찰하고 통찰하는 일에 능숙한 ‘환’은 ‘바리스타 탐정’이란 별명을 갖게 되고, 그에 걸맞게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을 몰고 다니며 그만의 능력으로 하나둘씩 해결해 나간다.
특히 ‘환’이 ‘꽃미남’이라는 설정과 ‘할’도 그 못지않은 외모를 가진 점, 유령이지만 자신의 과거를 잊은 ‘할’의 숨겨진 이야기를 추리할 수 있는 사건이 나온다는 점, 그리고 유령을 보는 다른 이들의 등장 등은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한국 정서에 맞는 드라마틱한 연출로 책을 읽는 사이 나도 모르게 영상을 떠올리며 빠져들게 한다.
커피 한 잔과 사색을 권하는 바리스타 탐정
「커피유령과 바리스타 탐정」은 꽃미남 바리스타 환이 커피숍 손님과 이웃들, 그리고 그의 인생 앞에 펼쳐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한국형 드라마틱 미스터리다. 환이 만난 다문화 가정, 아동학대, 제주도 투기 개발 붐, 고미술 거래, 커피숍 내의 도난 사건 등을 통해 한국의 사회상과 의식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바리스타 환이 커피를 내려 독자에게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면서 사건 속으로 깊숙이 빠져 본다. 커피 속에 녹아든 편안함, 흡족함, 애잔함, 허망함 그리고 행복함과 기쁨, 희망까지 그윽한 맛을 느끼면서 묵직한 울림을 받는다. 매 순간 목 넘김의 단계마다 커피의 맛과 향, 바디감이 모두 다르다. 아, 커피 한 잔에 이렇게 깊은 무게감과 오묘한 여러 단계의 맛이 있구나. 평생 마셔 보지 못한 귀한 커피를 미남 바리스타 환이 대접해 주니 참으로 별미다. - 김재희 「경성 탐정 이상」 작가
“결핍과 욕망이 뒤엉킨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커피를 좋아하는 유령을 위해 바리스타가 된 환의 따뜻함이 범죄 가득한 일상에 위로라면 위로다.” - 한증애 「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
“여행이 무료해졌을 때, 어느 카페에서 바리스타 환을 만났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인간사는 쓰고 맵고 새콤하고 진한 캐러멜 맛이 나기도 했다. 예가체프 한 잔을 더 주문한 건 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였다.” - 신영철 「두 번째 제주 까페」, 「제주 자동차여행 코스북」
본문 속으로
환은 신경질적이었다. 나른한 두뇌가 활동을 거부하고 뭔가 새로운 일을 계획하기에도 어정쩡한 그 시간이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 p.9
임 형사가 그들을 좀도둑으로 체포해 가지만 않았다면, 그들 덕분에 환은 무료한 오후를 제법 흥미진진하게 보냈다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행위에 악의가 없었음에도 사람의 일에는 법이라는 것이 뒤따라 붙었다. --- p.37
마음은 언제나 성급했다. 그렇게 기섭은 결국 리밍과 한 집에 살게 되었다. 환장하리만치 좋았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종일 실실거렸다. 그러나 딱 보름이었다. --- p.60
“아저씨 때문에 앞으로 커피는 못 마실 것 같네요.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범죄를 주문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에 빠져들 것 같단 말이죠.” --- p.89
조선시대에도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이들 중에는 살아 있는 유령의 벌을 받은 이들이 있었다. 신분과 재산을 박탈당하고 그 어느 누구와도 산 자와는 말을 섞을 수 없는 형벌. 살아 있는 사람들 틈에서 보여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외면당한 채로 사는 것이다. --- p.149
남자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건 화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고 싶었다. 화가의 욕망 이 고개를 치켜든 순간이었다. 도대체 얼마가 적정선인지를 알 수 없었다. 팔겠다는 마음은 뒷전으로 밀리고 가격은 경쟁을 부추기듯 올라갔다. --- p.216
“그렇겠죠. 운이 좋은 아이니까, 난.”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환은 선호의 모습에서 그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죽고 싶다는 말을 선호는 그렇게 역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 p.250
같이 사는 여자한테 배반당한 그 심정이 오죽할까 싶어서. 남자의 야밤 테러는 오늘 따라 길고 끈적거렸다. 어둠을 틈타 터져 버린 남자의 상한 마음은 누군가에게는 몹시도 고약스러운 물건이었다. --- p.253
파란색 와이셔츠와 카디건 그리고 양복을 침대 위에 꺼내 놓은 상태였다. 양복이 좋을까, 바리스타 복장이 나을까를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였다면 길게 고민하거나 망설이지 않았을 터였다. --- p.286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그 시작이 아무리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어도. 결과는 나비효과처럼 번진 다음이다. 범죄가 세상 밖으로 알려질 즈음이면 충격은 이미 준비된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거나 뒤집어 놓은 다음이기 쉬웠다. --- p.303
삶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죽음은 더 가까이에 있었다. 유년의 환에게 죽음은 또 다른 삶이나 다름없었다. 엄마 귀현이 베란다 창가에서 스르륵 사라지던 그 날, 삶과 죽음은 그렇게 하나로 뒤엉켰다. --- p.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