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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Dec 30. 2019

사환과 회장을 오가던 시절입니다만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혼자는 천직입니다만』북오션 출간 전 연재 ⑥

사장은 나를 고용했던 내가 만난 그동안의 사장들과는 정말 달랐다. 나의 입바른, 소위 사장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에도 노여움을 잘 타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고 넘어갔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일 앞에서도 사장은 그냥 넘어갔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을 하고 넘어가야 하는 나로서는 쉽게 화를 풀지 못한다.

사장은 눈을 똑바로 뜨고 제 할 말을 다하는 직원을 잘 버텨냈다. 내 눈에 힘이 들어가고 사장의 언성이 높아지고 난 뒤에는 며칠 씩 각자의 일을 알아서 처리했다. 사장은 사장의 업무를, 직원인 나는 나의 업무를.

이쯤 되면 사장 입장에선 직원이 아니라 상전도 이런 상전이 없는 것이다.

"어이구, 회장님, 벌써 나오셨습니까?"

사장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있는 곳에 와 넙죽 인사한다. 나에 대한 사장의 비아냥거림일 수도 있으나 사장 나름의 화해 방식이기도 했다.

사장의 비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곧이곧대로인 직원이 사장 입장에서 그리 썩 달가울 것 같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하나뿐인 직원을 무턱대고 자르기도 뭐했을 것이다.  

언짢은 상황은 그렇게 유야무야 지나갔다. 사장은 아무리 화가 나도 내게 관두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나를 해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사장의 인품을 높이 샀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던 그때. 그들은 나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소모품. 내게는 생각이란 게 없어야 했다. 시키는 일만 하고 꽃처럼 웃으며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로만 인식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회사와 상사를 버텨낸다고 해도 그들은 나를 그냥 두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내게 직장 생활을 평생 하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길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거기엔 내가 없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남의 간섭 없이 내가 내 목소리를 내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것도 죽을 때까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그 일을 찾아야 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야 했다. 서른 언저리였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나는 장벽에 부딪힌 다음에야,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야 돌아가는 길을 모색했던 것 같다.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나만의 훈련과 습작의 시간이 필요했다.

5년 동안의 월급 동결에도 나는 흔쾌히 다녔다. 직원이 혼자라는 것도 좋았고 다양한 업무에 비해 일이 그렇게 과하지 않은 것도 좋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월급을 동결하든 말든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서른셋이 되던 그 해, 나는 충무로로 작가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근무가 끝나면 애인을 만나러 가듯 충무로로 달려갔다.

그런 날이면 사장보다 먼저 내가 사무실을 나왔다. 사장은 일찍 퇴근하는 내게 싫어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못했다.

사장은 일을 시켜놓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다 했냐고 확인하기 일쑤였다. 사장의 그 급한 성격을 맞춰줄 수 있는 직원은 없기 십상이다. 사람 비위는 맞추기 어려워도 사장의 일 비위를 맞추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만한 직원을 새로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알고 사장도 알았다.

시나리오 수업은 설레고 흥미로웠다. 아무리 힘들고 엿 같은 일이 근무 중에 있었어도 그곳에 오면 다 잊었다.

출근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조카와 한방을 쓰던 때였고 나의 집필실은 내가 출근하는 사무실이었다. 나는 일곱 시면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사장이 출근하기 전까지 시나리오 쓰기에 매달렸다.

나의 근무는 사장의 출근과 함께 이뤄졌다.

월급 인상? 안 해줘도 괜찮았다. 서운하지 않았다. 내가 월세를 줘야 할 판이라고 여겼다. 사무실이 곧 나의 집필실이기도 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인상 요구도 없는 직원의 월급을 사장이 알아서 올려줄 일도 없는 것이다.

사무실은 무려 5년 동안 나의 집필실이자 쉼터였다. 휴일에도 홀로 사무실에 나가 시간을 보낼 정도로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나의 이중생활을 사장은 모르는 일이어야 했다. 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있는 나를 보면 당황할 게 뻔하다. 그리고 비밀은 언젠가는 반드시 들통 나기 마련이다.




P.S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차례는 있으나 연재의 내용은 순서와 다르고 내용도 제 임의로 선택해 올립니다.

이야기 전체는 출간본으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제게 행복은 좋은 것이거나 기쁨의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상태일 것입니다.

평온한 행복도 있지만 긴장된 상황의 행복도 있다는 걸,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서의 행복도 있다는 걸,

행복의 그림자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갑니다.    

소설 같은 에세이, 그 안에 담긴

저만의 유별나고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 더, 사진은 이미지용으로 글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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