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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Dec 30. 2019

해고가 일상이면 좀 그렇습니다만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혼자는 천직입니다만』북오션 출간 전 연재 ⑦

언니의 신혼집에 군식구가 된 나는 어떻게든 취직을 해야 했다. 그래야 언니 집에 머무를 수 있는 구실이 생기니까.

나는 대학시절을 의류학과 강의실과 양재 스쿨을 드나들며 보냈다. 그리고 스물 중반이던 그 무렵에 나는 유니폼 관련 사업을 하는 분을 소개받았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한껏 차려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른 중반의 여 사장은 유니폼 업계에선 꽤나 잘 나가는 분이었다. 디자이너를 구하던 참에 나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건넨 이력서를 확인한 그는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그 앞에서 나는 긴장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든 나오기를 기다렸다.

"전공이 의상학이 아니고 국문학이네요?"

느낌이 안 좋았다. 나는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개한 사람의 면이 있으니 그는 무슨 말을 어떻게 내게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힘이 들어간 어조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이고 살아남는 몇 가지의 방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미래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이고도 상세하게 들었다. 덧붙여, 그는 몇 년 동안 심부름만 하다 결혼하면 관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섞었다. 자신의 회사에 나를 입사시키는 것은 곤란하다의 의미로 나는 해석했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내 인생 전반에 관한 조언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디자이너로서의 인생, 아니 한 개인의 평생에 걸친 삶의 설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막연하게만 그리던 것들이 리얼타임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는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만난 진짜 선생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그날의 나는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이부자리에 누워 밤새 뒤척였다. 내 짧은 인생에 잘못 들어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시켜만 주면 뭐든 잘할 것 같은 데 말이다. 그는 전공이 다른 나를 믿지 못했다.

나의 더 큰 고민은 내가 내 인생을 너무 쉽게 결정지었나, 싶기도 했다. 다들 나처럼 마음이 시키는 것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었나? 헷갈렸다. 혼돈의 소용돌이가 나를 마구 휘저었다.  

국문학 전공자인 나는 의류업계로 들어가는 것을 선회했다.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무엇을 할지 몰랐다. 잡지사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은 그 무렵이었다.

국문학 전공자라고 글을 다 잘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서류 면접만으로 그냥 통과였다. 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뭐가 이렇게 쉬워? 내가 원하지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해야 했다.     

해고는 입사 3개월 만이었다. 내게 해고 통보를 한 회사는 내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업무 능력이 안 된다거나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거나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다거나.

회사 초년생이었던 나는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냐고 따지지 못했다.

두 번째 해고를 앞에 두고서야 나는 첫 번째 해고의 이유를 짐작했다. 내가 매사에 분명한 생각과 주장을 갖고 있다는 게 그들에게 문제로 작용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 생각도 주장도 없는 게 문제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모든 일은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파장도 다르게 일어난다.

나의 말과 행동이 합당하더라도 그래서 더욱 불편해하는 이가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내가 조금은 아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두 번째 해고를 당하고서야 나는 어느 정도 짐작했다.

일은 대충이면서 자신의 이익에 약삭빠른 이들을 겪으면서 나의 직장생활은 회의로 가득 찼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그런 존재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것을 탐하거나 그들의 일을 방해한 적이 없다. 내가 바란 것은 그냥 다 함께 잘 되는 거였다. 내가 가진 재주란 게 좀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기꺼이 부려줄 용의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에야 나쁜 일이 아닌데 못할 이유가 없잖은가.

내가 누군가를 돕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나를 해고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그 따위로 살지 말라고 욕설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줘야 시원하겠으나 그것마저 맥이 빠졌다. 내 코가 석 자임에도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그저 불쌍한 인간들이었다.

내게 직장 운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채야 했다. 한창 일을 배워도 시원찮을 이십 대를 나는 득도 안 되는 관계에 시달리고 부대끼며 건너왔다. 내일은 깨어나지 않는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드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P.S

양수련의 호접지몽 에세이 [혼자는 천직입니다만]

차례는 있으나 연재의 내용은 순서와 다르고 내용도 제 임의로 선택해 올립니다.

이야기 전체는 출간본으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제게 행복은 좋은 것이거나 기쁨의 순간에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행복하다는 것은 좋은 상태일 것입니다.

평온한 행복도 있지만 긴장된 상황의 행복도 있다는 걸,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상황에서의 행복도 있다는 걸,

행복의 그림자 또한 다양하다는 것을 살면서 알아갑니다.    

소설 같은 에세이, 그 안에 담긴

저만의 유별나고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립니다.


하나 더, 사진은 이미지용으로 글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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