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신혼집에 군식구가 된 나는 어떻게든 취직을 해야 했다. 그래야 언니 집에 머무를 수 있는 구실이 생기니까.
나는 대학시절을 의류학과 강의실과 양재 스쿨을 드나들며 보냈다. 그리고 스물 중반이던 그 무렵에 나는 유니폼 관련 사업을 하는 분을 소개받았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겠구나.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한껏 차려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서른 중반의 여 사장은 유니폼 업계에선 꽤나 잘 나가는 분이었다. 디자이너를 구하던 참에 나를 소개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건넨 이력서를 확인한 그는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그 앞에서 나는 긴장했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든 나오기를 기다렸다.
"전공이 의상학이 아니고 국문학이네요?"
느낌이 안 좋았다. 나는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소개한 사람의 면이 있으니 그는 무슨 말을 어떻게 내게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힘이 들어간 어조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이고 살아남는 몇 가지의 방법에 대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미래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이고도 상세하게 들었다. 덧붙여, 그는 몇 년 동안 심부름만 하다 결혼하면 관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섞었다. 자신의 회사에 나를 입사시키는 것은 곤란하다의 의미로 나는 해석했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내 인생 전반에 관한 조언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동안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디자이너로서의 인생, 아니 한 개인의 평생에 걸친 삶의 설계를 처음으로 접했다. 막연하게만 그리던 것들이 리얼타임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는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만난 진짜 선생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온 그날의 나는 잠 한숨 이루지 못했다. 이부자리에 누워 밤새 뒤척였다. 내 짧은 인생에 잘못 들어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시켜만 주면 뭐든 잘할 것 같은 데 말이다. 그는 전공이 다른 나를 믿지 못했다.
나의 더 큰 고민은 내가 내 인생을 너무 쉽게 결정지었나, 싶기도 했다. 다들 나처럼 마음이 시키는 것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었나? 헷갈렸다. 혼돈의 소용돌이가 나를 마구 휘저었다.
국문학 전공자인 나는 의류업계로 들어가는 것을 선회했다.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무엇을 할지 몰랐다. 잡지사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은 그 무렵이었다.
국문학 전공자라고 글을 다 잘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서류 면접만으로 그냥 통과였다. 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뭐가 이렇게 쉬워? 내가 원하지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해야 했다.
해고는 입사 3개월 만이었다. 내게 해고 통보를 한 회사는 내게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업무 능력이 안 된다거나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거나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다거나.
회사 초년생이었던 나는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냐고 따지지 못했다.
두 번째 해고를 앞에 두고서야 나는 첫 번째 해고의 이유를 짐작했다. 내가 매사에 분명한 생각과 주장을 갖고 있다는 게 그들에게 문제로 작용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 생각도 주장도 없는 게 문제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모든 일은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파장도 다르게 일어난다.
나의 말과 행동이 합당하더라도 그래서 더욱 불편해하는 이가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내가 조금은 아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두 번째 해고를 당하고서야 나는 어느 정도 짐작했다.
일은 대충이면서 자신의 이익에 약삭빠른 이들을 겪으면서 나의 직장생활은 회의로 가득 찼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그런 존재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것을 탐하거나 그들의 일을 방해한 적이 없다. 내가 바란 것은 그냥 다 함께 잘 되는 거였다. 내가 가진 재주란 게 좀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기꺼이 부려줄 용의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에야 나쁜 일이 아닌데 못할 이유가 없잖은가.
내가 누군가를 돕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나를 해고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그 따위로 살지 말라고 욕설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줘야 시원하겠으나 그것마저 맥이 빠졌다. 내 코가 석 자임에도 내 눈에 비친 그들은 그저 불쌍한 인간들이었다.
내게 직장 운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채야 했다. 한창 일을 배워도 시원찮을 이십 대를 나는 득도 안 되는 관계에 시달리고 부대끼며 건너왔다. 내일은 깨어나지 않는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드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