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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Sep 12. 2015

어느 시각장애인의 버킷리스트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내 손으로 음식상을 차려주기

01.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 저녁이면 교실에 나갑니다.

“내 마음의 창작노트”라는 교실 이름이 있긴 하지만  

‘문학난장’이란 별칭이 마음에 듭니다.


우리의 삶이 당장은 문학처럼 정제되어 있지 않겠지만

평생이 지나고 나면 문학에 다름 아니란 생각에서죠.

정리되지 않은 현재형의 문학이 모였으니

'문학난장'이란 이름이 내게는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이제 막 군대를 제대한 총각도 있고

한창 손이 가는 자식을 둔 열혈 주부도 있고

마음의 위안이 필요한 아저씨도 있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학소녀도 있고

남의 얘기를 듣기 좋아하는 이도 있고

집을 나서는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는 시각장애인도 있습니다.


이처럼 ‘문학난장’ 교실에 오시는 분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다양한 이야기 보따리를 갖고 옵니다.

나는 이들과 말하기, 읽기, 듣기, 쓰기 등을 공유합니다.    


02.

형식에 맞춰 쓰는 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죠.

글이야 서투르면 좀 어떤가요.

세련되지 않으면 또 어떤가요.

글쓰기는 이래야 된다는

나의 작가적인 강박도 스스럼없이 내려놓은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문학난장에는 매번 다른 단어가 주어집니다.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는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내 손으로 음식상을 차려주기'는

또 누군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03.

이게 과연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이 글을 쓴 당사자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어서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단 한 번도 하기 어려운 힘든 일이라서

버킷리스트가 되는 것이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내 손으로 음식상을 차려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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