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된 룸메이트가 있다. 아니, 있었다. 내 삶을 찾아 독립을 하기 전까지 결혼한 언니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길게 했다. 언니는 일찌감치 결혼이란 걸 했고 그 딸은 나의 오랜 룸메이트였다. 갓난아기 때부터 봐왔고 딸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조카다.
같은 방을 쓰면서 다투거나 입씨름한 기억도 없지만 대화가 많은 이모와 조카 사이 또한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십 수 년을 룸메이트로 살았다. 서로의 일상을 말없이 곁에 두고 지켜보면서.
지금 돌이켜보면 내겐 내 삶의 고뇌가 많았고 조카는 그런 이모가 어떤 얘기라도 늘어놓을 만큼 편하고 만만하게 여겨지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나의 룸메이트이자 조카인 정은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았던 언니의 집을, 정은이가 여고생이 된 후에야 나는 나올 수 있었다. 부모의 그늘이었더라도 길었을 텐데, 언니의 그늘 밑에서 지낸 참으로 기나긴 시간들이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실행하게 된 독립이지만 두렵기도 했다. 혼자 생활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던 일들이 내 일상으로 하나둘씩 침투해 들어왔다. 나를 성가시게 했다.
생활비를 대고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의 공과금을 챙기고 세금을 내는 일 등.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나는 불혹을 넘기고서야 이 모든 것들을 혼자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알았다.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인 독립이 이뤄져야 비로소 내 삶이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있음을.
내 삶의, 내 인생의 주체적인 노릇을 하며 글만 써서 내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거나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일상의 욕망이 적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친구가 필요치 않다는 것도 일찌감치 깨달았다.
우리의 삶이 관계맺기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관계들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관계를 덜어냄으로써 더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바로 내 자신이 그런 부류의 인간이기에.
혼자만의 생활을 꾸리게 되면서 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생활을 꾸리는 것. 남의 손을 빌려 내 삶을 덧대는 일은 만들지 말자는 것. 처음은 어려웠다. 혼자의 일상은 낯설고 뭔가 불안전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벌지 않아도 숙식은 제공되는 시스템 안에 있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하나씩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쓰는 글이 밥이 되지 않는 순간들이 늘어가고 내 궁핍이 극에 달한 때에 나는 견뎠고 또 버텼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면 그것이 또 습관이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홀로 버티고 견디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그 반대급부로 내게 형성된 것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여유로움이었다.
내 수중에 들어온 만큼의 돈으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실상은 소비하지 않고 사는 것에 더 가까웠다. 나 같은 소비자만 있으면 경제가 무너진다는 농담도 심심치 않았지만 당장은 내 경제가 먼저이니.
무소비가 일상이 되다보니 어쩌다 여윳돈이 들어오는 달에도 무감하다.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집에 들이지 않고 소유하지 않는 내 일상에 유일한 사치는 글쟁이의 도구를 사는 일이며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전부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혼자 하는 일로 보내면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만큼은 절대 혼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혼자 하는 여행만큼 빈곤한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행은 경험이다. 풍요로운 경험은 사람이 더해졌을 때 형성된다고 믿는다.
룸메이트였던 정은이의 제안은 의외였다. 청춘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바쁜 와중에 내게 자신과 여행을 가자고 하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
여고생이던 정은이는 어엿한 아가씨가 됐고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주변머리 없는 나와? 우리가 처음부터 궁합이 잘 맞는 수다스런 룸메이트였다면 또 모를 일이다. 친구 같은 이모도, 엄마 같은 이모도 나는 아니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진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한 방에 살았으면서,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애석하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