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이 없는 나는 일찌감치 깨어 있었다. 정은이의 잠을 방해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 여유로움. 그 무엇의 방해도 없이 낯선 곳에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내 여행은 충분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난바의 아침이 건물의 틈을 비집고 창가로 찾아들었다. 정은이를 깨우는 대신 음악을 방안 가득 채웠다. 정은인 눈을 뜨자마자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이번 여행은 힐링이야.”
그러면서도 짧은 일정에 정은인 욕심껏 여정을 챙긴 터였다.
한국이라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붐비고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했을 시간이었다. 거리는 이상하게도 한적했다. 숙소가 변두리는 아니었기에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다.
“출근시간이 아닌가?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우리는 빈 거리를 관통해 신사이바시역에 지하철을 탔다. 고베에 도착해 아점을 먹을 생각이었다. 산노미야역으로 가자면 우메다역에서 한큐선으로 갈아타야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만 모르는 문제였고 지하철을 탔으니 데려다주겠거니 했다.
내가 지하철 노선도를 살피는 사이 누군가 정은이에게 말을 걸었다. 출근길의 곱상한 청년. 그는 우리가 산노미야역에 간다는 것을 알았고 갈아타야하는 곳을 직접 안내했다. 이토록 친절한 청년이라니. 출근시간 또한 아홉시무렵이라고 일러준다. 정말?
일본의 지하철은 서울보다 복잡했다. 색깔별로 구분이 되어있긴 했지만 혼란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년의 도움으로 일본의 지하철 노선에 대한 나름의 인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끔씩 번호를 달라는 남자들을 버스 안에서 만나기도 한다는 정은이의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일어를 조금 하는 예쁘장한 정은이의 덕을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3박4일의 여정에서 만난 일본인은 인내심이 많고 상냥했다. 더딘 질문에도 미소 띤 표정으로 기다려주었고 상점가의 개업시간을 알려주며 커피숍에서 기다렸다가 가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산노미야역에 내리자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관광지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점으로 스테이크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일렀다. 할 수 없이 난킨마치로 발길을 돌렸다.
난킨마치는 일본의 4대 차이나타운 중 하나다. 입구에서부터 대륙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관광객은 아침부터 들이닥친 상태였고 사람들에 떠밀려 다니는 일은 본격화되었다.
“여기선 딸기빙수를 먹어야 되는데…….”
정은인 한국에서부터 적어온 목록 하나를 꺼내들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딸기빙수가 눈에 띤 순간 구입을 망설이지 않는다. 빙수라기보다는 슬러시 아이스크림에 더 가까운 모양새다. “맛있네”를 연발하는 정은이와 달리 난 두어 번 맛을 본 게 다였다.
어쨌거나 정은이의 경험해야할 목록에서 어제의 라멘에 더해 딸기빙수가 지워졌다. 먹자골목이나 다름없는 난킨마치는 골목이 끝날 때까지 다양한 음식으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다.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아점을 먹기로 한 스테이크랜드로 돌아가는 일은 마뜩치 않았다. 꼭 들러야한다는 점찍어둔 라멘집을 줄이 길다는 이유로 돌아선 것처럼 스테이크집은 갔던 길을 다시 가야된다는 이유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꼭, 그 집에 갈 필요 없잖아.”
대신, 난킨마치가 끝나는 골목에 스테이크집이 눈에 띄었다. 가게 안에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벽 일부에 다양한 수상내용의 액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단골로 다니는 가게는 정신이 사납고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간 스테이크가게는 전세를 낸 기분으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손님 없는 가게라고 음식이 맛없는 집도 아니었다.
가게 주인은 각종 수상의 내역만큼이나 그들의 요리에 자부심을 내비쳤다. 서비스 또한 우리에게만 집중됐다. 간간이 가게 앞에 나가 관광객 유치를 위한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다음 손님이 오지 않아 안타깝기는 했다.
가게를 나오면서 정은이와 나는 웃음을 주고받았다. 단체 관광객이 몰리는 가게야 안 봐도 알만하다. 평온하고 여유로운 아점을 즐겼으니 만족이었다. 물론, 정은이 가려고 목록에 올린 스테이크집은 아니다만 그게 무슨 대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