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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ca Sep 30. 2016

'시다마' 커피

Sidama, not Sidamo


'시다모'


커피 좀 마신다면 비교적 낯익은 이름으로 풍부한 과일향과 깔끔한 산미가 뛰어난 커피다. 따뜻하게 마셔도 그윽한 향이 참 편안하다. 시원하게 마셔도 그 청량감이 일품이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밸런스도 좋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예가체프와 남부 지방의 커피를 택할 것이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커피를 접하면서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쓴 것으로만 알았던 커피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난 맛이었다.


산지에서 직접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리카에 간다는 건 엄두도 못 내던 소심한 대학생은 그렇게 기약도 없는 생각만 했다. 꿈에나 알았을까, 진짜로 산지에서 그 꿈같은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수도에서 생활하던 나는 기필코 예가체프를, 시다모를 산지에서 맛보리라 결심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가며 수소문하고 다녔다. 예가체프와 시다모가 으레 지역명일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먼저 발음 교정부터 필요했다. 아무도 예가체프, 시다모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예가체프? 이르가체프 말하는 거야?
시다모? 시다마, 시다마 분나!


'이르가체프'였다. 사실 철자를 보면서 여러 번 생각했다. 현지에서는 이걸 '예가체프'라고 발음하는 건가? 한국에서는 다들 예가체프라고 하니 맞는가 보다 싶었다. 하지만 예가체프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다모'도 마찬가지였다. '시다마' 커피는 모두가 알지만 '시다모' 커피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거래해온 커피인 만큼, 우리가 접하는 발음도 현지에서의 것과 달라졌구나 싶었다. 이르가체프가 그랬던 것처럼 시다마 역시 시다모와는 발음만 다르고 철자는 같을 것이라...


발음이 아니라 철자 자체가 다른데?


애초에 'Sidamo'라는 지역도 존재하지 않았다. 'Sidama'였다. 시다마는 굉장히 큰 지역을 포괄하는, 한국과 비교하자면 '시'와도 같은 지역의 이름이었다. 혹시 시다마에 사는 사람들, 혹은 사람들의 언어를 그렇게 부른 것은 아닐까? 아니었다. 'Sidamic'이라는 단어가 엄연히 존재했다.


이 근본을 알 수 없는 명칭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현지인들은 오히려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냐고 되물었다. "다들 그렇게 부르던데..."라고 답하기엔 내가 에티오피아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찾아보니 한국에서만 그렇게 부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결국 직접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먹으러 갔으면 그냥 먹고 오면 될 것을...



'시다모'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에는 1889년, 에티오피아 제국에 황제로 즉위한 메넬리크 2세가 있다. 그는 에티오피아 남부의 시다마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Bashah Aboye 장군을 앞세워 군대를 파견했다. 침공은 성공적이었다. 1891년, 제국에 예속된 시다마는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식민지 정책을 겪게 된다.


그들의 민족말살정책은 기존의 '시다마'라는 명칭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여기서 '시다모'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기존의 것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이었다.


다시 일어난 전투에서 Bashah Aboye 장군의 휘하에 있는 부대가 패배했고, 시다마 지역은 잠시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메넬리크 2세는 (티그레족으로 추정되는) Leulseged 장군의 부대를 재차 파견하여 1890년대 중반에 완전히 시다마 지역을 점령했다.


이후 펼쳐지는 본격적인 정책은 우리가 겪었던 그것과 참 비슷하다. 그들은 시다마식 이름을 암하라 민족들의 방식으로 개명하기 시작했다. 개명에 저항한 시다마인은 여러 사회적 기회를 잃었다. 개명하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본래의 이름 대신 그저 '시다모'라고 불리기도 했다. 일제가 이런 정책들은 참 잘 보고 배운 것 같다. 창씨개명이 이렇게 전통 있는 식민지 정책이었다니...


이렇듯 시다마인들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정책들은 1974년, 봉건제도가 폐지되기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다 지워지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일제의 잔재가 존재하듯이, '시다모'도 그 흔적으로써 남아있는 것이다. 어느새 일반화된 시다모는 전 세계 많은 이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커피의 발상지로도 유명한 카파 지역의 점령을 마치고 회군하는 부대 (http://www.samizdat.com/bulatovichphotos/)



내가 만났던 시다마인들 중 시다모라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자명한 일이다. '시다모'라는 지역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자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굉장히 모욕적인) 단어가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 일반화된 상황, 그리고 나는 그 일부였다.


안타까웠다.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사회주의 체제를 거쳐 연방의 일부로써 합쳐져 있지만, (에티오피아의 정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공화국'이다.) 역사적으로는 시다마인들에게 '시다모'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굴욕적인 역사를 담은 언사임에 틀림없다.


에티오피아 커피의 대부분을 거래하는 정부기관인 ECX(Ethiopia Commodity Exchange)는 몇 년 전부터 시다모라는 명칭을 폐기, 시다마로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right step'을 밟아나가는 움직임은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다만 이 여정이 언제쯤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https://www.facebook.com/Sidama-Coffee-not-Sidamo-1449553055307926/)



물론 카페에 가서 '시다모'라 적힌 메뉴판을 가리키며 시다마인의 굴욕적인 역사와 단어의 오용에 관해 가르칠 용기는 없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하라는 주문은 안 하고 카운터 앞에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면, 쫓겨나도 딱히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사실이 그렇다. 알고 먹으나 모르고 먹으나 그 맛에는 변화가 없다. 씁쓸했던 역사가 딱히 맛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다모'에 관한 이런저런 사정을 전국의 로스터님들과 카페 사장님들이 알게 되셨다면, 그 이름을 '시다마'로 바꾸는 것도 한 번쯤은 고민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검색 키워드에는 덜 걸리겠지만...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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