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즐기는 조금 다른 방법들
나는 처음 커피를 접할 때부터 본연의 맛을 즐기는 취향이었다. 이런저런 토핑이 들어간 메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에티오피아에서는 갖가지 건더기를 넣어먹고 섞어먹었다. 수년 동안 설탕 한 톨도 허락하지 않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현지인들보다 더 현지스러운 커피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현지 적응의 일환이라 생각했다. 어느새 묘미는 일상이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맛있고 재밌는 경험이었던 만큼, 그들만의 전통과 취향과 양식이 담긴 방법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혹시나 구미가 당기신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들의 방식이라는 것을 덧붙여 우려의 메시지를 전한다.
베이스가 되는 커피부터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그리고 지금까지도 즐겨마시는 커피는 '제베나 커피'다. 브런치에도 이미 제베나에 관한 친절한 글이 있어 링크로 그 설명을 대신한다.
그 맛에 관해 사족을 달자면, 간혹 사람들이 에스프레소와 제베나를 비교한다. 하지만 제베나는 에스프레소처럼 불편한 텁텁함이 없다.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제베나를 맛본 후에 '진하면서 부드럽다'는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자체로도 부드럽고 강한 맛이 있어 에스프레소보다 다른 것들과의 궁합이 좋다.
그들은 커피에 설탕을 넣어먹는다. 굉장히 많이 넣어먹는다. 소주잔만 한 컵에 최소(최대가 아니다) 삼세번은 넣어먹는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현지인처럼 보였을까? 아니, 그럴리는 없는데. 왜 묻지도 않고 설탕을 세 스푼이나 넣어주는 걸까?
아무리 넣어도 비주얼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무려 세 번이나, 공사판 삽질하듯 거칠게 퍼넣던 광경이 잊히지가 않았다. 눈으로 마주한 커피와 머릿속의 장면 사이, 이내 괴리가 생겨난다. 이게 커피일까 설탕물일까.
설탕물이 아니었다. 달달한, 정말 달콤 쌉싸름한 커피였다. 입버릇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내가 하루에도 대여섯 잔은 족히 마실 정도로 아름다운 맛이었다. 이십 하고도 수년 동안 대쪽같았던 입맛이 바뀌었다. 묻지도 않고 세 스푼이나 넣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당분 섭취와 수명은 반비례한다던데, 잠깐의 행복 앞에 가늘고 길게 연명하겠다는 삶의 목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무의식은 항상 세 스푼이었고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나처럼 감각이 무딘 사람들은 커피에서 단맛, 신맛, 쓴맛, 오만가지 맛을 다 느낀다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금과 향신료는 바람직한 기폭제다. 쓴맛을 잡아주는 소금이 숨겨진 맛을 드러내면서 커피의 맛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입안에서 커피와 소금이 처음 만났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현지인이 커피에 소금을 넣어먹는 걸 보고 생각 없이 넣어봤다가 내륙국가인 에티오피아에서 바닷물을 맛본 것이다. 뭐든 과하면 안 하니만 못하다. 적절하게만 넣어준다면 설탕만큼이나 궁합이 좋은 것이 소금이다.
향신료는 쓴맛을 중화시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고유의 향과 맛도 잘 살아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나몬뿐만 아니라 온갖 달큼한, 짭조름한, 매콤한 향신료를 입맛대로 넣어먹는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방법은 아니다. 그만큼 취향을 많이 타는 방법.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넣어먹는 것은 '떼나 아담'이다. 직역하면 'Health of Adam', 어원은 내가 만난 현지인 중에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아담의 건강을 기원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뭔가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학명은 운향과의 'Ruta chalepenesis'.
어쨌든 그 뜻은 차치하고, 향이 매우 강하다. 충분히 호불호가 갈릴 만한 강력함이다. 약으로 쓰는 만큼 씁쓸한 허브향과 그 어떤 코도 뚫어버릴 만한 박하, 은근한 시트러스 향이 섞여있다. 자극적인 첫 느낌은 진한 커피와 함께 마셔야 그 조합이 완성된다. 개인적으로는 취향을 그대로 저격당해 종종 넣어먹었다.
대부분이 떼나 아담을 넣어먹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유칼립투스 잎을 넣어 먹기도 한다. 역시나 한껏 시원해진 콧구멍에 따뜻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스며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청량감과 그윽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감기 환자들에게 제격일 것 같은 조합.
스프리스는 커피 따로, 차 따로 우려낸 후에 섞어마시는 방식이다. (주스 가게에서는 다양한 과일을 섞은 메뉴) 우리나라에선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차는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다. 사견이지만, 절대적으로도 그렇게 유명해질 정도의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여행 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 움큼 사갈 정도니, 차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맛과 효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났다.
처음엔 이게 대체 무슨 맛인지 종잡을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게 별미인가 싶다. 커피와 차와 향신료의 맛과 향이 조금씩 다 살아있다. 어떻게 보면 니맛도 내맛도 아닌 희한한 맛이다. (많은 현지인들이 차를 끓이고 나서 향신료를 조금 넣어 먹는다. 여기에도 여지없이 설탕 세 스푼 추가다.)
차의 쌉싸름한 맛에 커피의 묵직한 무게감이 더해진 느낌? 미숙한 필력으로는 도저히 몇 마디로 형용할 방법이 없는 맛이다. '차+커피'라는 조합 자체에서 풍기는 모호한 느낌 그대로 가져간 맛이라 할 수 있을 듯... 여담이지만, 키즈카페에서 알바할 때 주방이모가 타던 믹스커피+보리차 조합이 그렇게 맛있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의 '차+커피'는 '맛있다'라고 하기엔 상당히 독특한 맛이었다.
물론 상대적인 비율로 보면, 압도적인 다수가 설탕만으로 제베나를 즐긴다. 우리에게도 아메리카노가 가장 질리지 않는 메뉴인 것처럼, 이들에게도 설탕만 들어간 제베나가 매일매일 삼시세끼 먹기 좋은 메뉴다.
사실 이것저것 섞지 않아도 맛 좋은 커피는 그대로 즐기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닌가? 취향은 그 이후에 이야기할 일이다. 다만 내가 현지에서 접한 방식은 맛없는 커피를 중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다는 것, 상기한 좋은 커피를 입맛따라 즐기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좋은 커피를 정성스레 볶고 진득하게 우려내야 뭘 넣어도, 섞어도 맛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