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 기 홍 Jun 02. 2020

어떤 날 들

비에 갇힌 날

눈을 뜨니

창가에 빗물이 흩어지고 있다.

몽울 몽울 묻어있는 봄비의 조각들이,

미처 흘러내리기도 전에

밀려 내려오고 있다.


아무도 없다.

들리는 소리라곤, 창문에 타닥이는 빗소리와,

차바퀴에 부서지는, 아스라한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들리는, 아물어지지 않은, 싱크대 수도꼭지의

똑, 똑, 떨어지는 소리.

너무도 조용한 아침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유독 깊은 잠을 잔다.


부스스한 머리와, 편하게 구겨진 잠 옷을 추스르며,

방을 나가 주방으로 간다.

~하며 맑은 음을 뱉는 크리스털의

청명음을 들으며,

정수기 턱에 잔을 걸쳤다.


쪼로로록~ 쪼록~


반쯤 채워진 정수기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싱크대에 버리고, 뒤돌아 냉장고 문을 연다.

노릿한 보리차가 채워진, 싱싱한 유리병.

편안한 향과 청량감으로 설깬 잠을 갈무리해간다.


이방 저 방 기웃거려도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괜스레 욕실 문도 열어보고

블라인드도 올려보고.

이내 무기력 감에 빠져들고 만다.

조용하다. 너무나. 빗소리만....

소파에 깊숙이 몸을 누이고 벽에 걸린 시계에

눈길다.


시간의 정적을 깨뜨리는 조급한 진동 벨소리.

오늘은 그냥 집에서 있겠다는 짧은 한마디 통화로 또다시 정적이다.

다리를 펴 탁자에 올리며, 문득 나무늘보가 생각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바쁨일까, 여유일까. 아니면

멈춤 같은 진행일까.

리모컨의 ON버튼은 소음으로만 들리니 다시금 Off 해 버린다.


얼마나 잤을까, 나의 몸은 마냥 흐물거리며 마음과 다르게 움직인다.

뻑뻑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릴 필요도 없이,

지금도 아까 마냥 빗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푸르스름한 어두운 공간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저녁이 되었나 보다.



오늘 하루......... 비에 갇혔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땐 그랬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