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 기 홍 Apr 25. 2020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창조적 상상. 이 얼마나 가슴 뛰는 고독의 사치인가.

처음이라서 두려워? 처음이라서 설레? 선택은 네게 달렸어.
그것이 너의 첫 시작이 될 거야.

지금껏 보내왔던 수많은 처음을 생각하면 숲 속의 잎사귀들 마냥 셀 수없는 시작이 있었습니다.

것들은 분명 낯설고 때론 두려움의 미지였지만, 시작이란 작심으로 개척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론 언제부턴가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는 처음의 출발선에 서게 되면 떠올리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 아니 모든 것이 많이 부족했던 내 성장기 속에서 다져진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혹독함 속에서 자생된 일련의 상흔이기도 합니다.

시작할 땐 가장 가까웠던 끝에 서서 생각한다.

모든 처음은 마지막에서 시작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사람과의 관계라면 누군가와 불편을 이유로 단절된 끝에는, 항시 나의 무엇이 부족했던 점이 시작으로 헤어짐이 되었고,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실패 역시 들여다보면, 안타깝게도 나의 허점이 시작되어 방점의 역할을 한 것을 나중에야 발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듯 끝은 시작의 또 다른 어미이며, 또한

또 다른 자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창조적 상상. 이 얼마나 가슴 뛰는 고독의 사치인가.


때와 장소를 구분 않고 떠 다니는 단어들. 사람들 얼굴에서, 보이는 풍경에서, 들리는 소리에서 비처럼 음악처럼 쏟아져 내리는 문장들을 조그만 노트에, 때론 폰 메모장에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집어넣기에 바빴습니다.

그땐 그냥 그 느낌들이 좋아서 기록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그것들을 들춰보는 장소는 나만의 슈필 라움이 되어, 회사생활의 고단함과 모든 관계에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래 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50여 년 넘게 살아온 인생이면 누구랄 것 없이 자서전을 써도 족히 두권 분량의 내용을 채울 만큼 다양한 삶의 여정을 걷게 됩니다. 그중에는

그 만의 특별한 시작이 있었을 테고, 그 변곡점 위의 낯선 두려움을 상대로 쉽게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한 적도 있었을 겁니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왔지만, 이번만큼은 가슴 벅찬 설렘을 먼저 선택하고 막연히 꿈꾸던 길에 들어섰습니다. 브런치에서 얻은 커다란 백지. 창조적 상상과 더불어 하나하나가 숨결로 이어지는 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전에 없던 커다란 응원과 격려 속에, 그로 인한 고독의 시간이 깊어지지만 그것은 지금껏 살아온 50여 년의 삶 중에 가장 달콤한 사치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 행복합니다.


아빠는 마지막 꿈이 뭐였어?라는 큰딸의 뜬금없는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고 기억을 더듬을라 치니

브런치라고 알아? 아빠 그거 한번 도전해 보면 어때? 내가 보긴 아빠한테 딱 맞을 것 같은데, 쉽지는 않다더라.

솔직히 많이 어렵데. 그니까 그냥 되면 좋고, 아니면 아빠 글을 저장한단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해보면 어때?

은근 소심한 성격의 나로서는 발가벗고 남의 앞에 서는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만약 공개된 브런치에 글이 오픈된다면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과 당연히 가족들도 보게 될 텐데, 나의 진짜 모습만 쓰게 되는 글이 나올 것이고

불 특정인들이 나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시선을 감당하기 부담스러웠습니다. 특히 50여 년을  살아오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 변화에 대한 열정이 거의 소멸되어 가는 때입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의 장고 끝에 드디어 결심하고 하나씩 나의 서랍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주로 시를 올렸습니다. 올리기 전, 다시 한번 오타나, 오역을 체크하고 맥락을 이어 보고 간간히 수정도 해 가면서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을 노트북 앞에 앉았고, 다시금 먼지만 쌓였던 책들을 맞이 하게 됩니다.

습작의 횟수도 확연히 늘어났고, 새로운 단어를 공부하는 시간도 늘고, 머릿속, 입속에 맴맴 거리던 글밥들을 모으는 손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자꾸 글을 쓰고 싶어 진다는 욕구에 심신이 행복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쓰다만 글이 널렸고, 꼭지 글만 적은 것이 대 여섯 개.

그냥 쓰기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 더구나 몇 년째 극심한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으면서, 장시간 같은 자세를 고수하는 게 최악이라는 의사의 말을 염두에 두면서 수시로 앉고, 서길 반복하며 글쓰기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작가라는 막연한 상상을 현실화시킨, 나의 대견하고도 과감한 도전이 최소한 브런치 내에서는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두려움보다는 도전의 설렘을 택한 것이 남은 삶의 질을

어떤 변화로 선물할지 자못 기대가 됩니다.


사람은 생래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젖을 먹기 위해 기를 쓰고 가슴으로 다가가는 아기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삶의 여정 속에 도전의 반복은 죽을 때까지 여러 형태로 계속 되어집니다.

준비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겨울은 삭풍에 모든 거치레들을 떨구고 오롯한 민낯을 볼 수 있는 계절입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겨울이 계절의 시작이라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시작과 도전의 진정한 출발점은 준비라 생각하기에, 모든 것이 움트기 위해 깊이 숨을 고르는 그 시기 겨울. 바로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나 역시 준비를 통한 시작과 도전을 이어 갈 것입니다.

보다 많은 독서와 습작을 통한 내공을 다지고, "시는 감정이 아니다. 시는 체험이다" 릴케의 말을 음미하며 정형화된 감정의 표현이 아닌, 체험처럼

불 규칙 하지만 살아있는 글을 추구하며,

 다른 장르로 확장시킬 수 있는 끊임없는 도전을 지속할 것입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가족과 가까운 몇몇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치기 어린 유쾌한 기분을 느껴보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겐 작가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지금의 내가 작가라면, 공식적인 작가의 자격이 있다면 나는 미련 없이 버리고 다시 예전의 낙서를 즐기는 사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의 상상 속의 작가의 의미는 어설피 단어를 다루는 스킬이 아닌, 각각의 단어가 가진 깊이를 이해하며 같이 호흡하는 사람입니다.

문체를 다지고, 역량을 키우면서 스스로 작가라 해도 부끄럽지 않을 모습. 그 작가의 모습이

내가 진정 시작하고 도전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실패한 일을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지도 못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더 바보스럽다.
나는 바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옷을 잘 입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