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 기 홍 May 07. 2020

밤마다 좀비가 나타나는....

안암골의 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희미한 수정구슬 반쪽이 끊어진 구름 사이로

어깨만 내밀었다.


어스름 어둠이 가로등 불빛을 조여갈 때,

안암골 고대병원 현관 귀퉁이에는 희끗희끗

허연 물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밤이 시작되었다.

어둠이 풀어졌다.

감시자도 사라졌다.


몇몇은 창을 들고,

또 다른 몇몇은 수레를 타고.

총기 잃은 눈동자들.

미처 여미지 않은 핏빛 물든 거적들.

갈지자 행보에, 패턴 없는 움직임들.


까랑, 까라랑....

창끝을 지면에 긁으면서 침묵의 소리도 함께 몰며,

짙게 멍들어간 한 방향을 향해 모여든다.


"좀비가 나타났다."


그들이 모여드는 곳은 단 한 곳.

첫 번째 가로등과 마치 영원히 뽑히지 않을 듯한

육중한 철기둥이 버티고 선, 아래의, 구석의 후미진.

눌어붙어 끈적이는 가로등 빛이 그림자마저 삼켜버린 곳이다.


대단한 장거리 여행을 막 끝낸 듯,

지치고 곧 넘어질 듯한 모습이

마치 고독한 순례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의 마지막처럼 여정을 마친 그들은, 

잠시 후의 향연을 준비하 듯. 

얽히고설킨 손목과 팔의 올가미들을 능숙하게 풀어헤친다.


이내 시뻘건 불덩이를 연신 목구멍 깊숙이 삼키고, 또 삼켜대길 시작한다.


목구멍 깊숙이 빨려 들었던 불덩이는

어느새 그들의 콧구멍에서, 입 구멍 틈새로

마치 서슬 퍼런 인양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그들 입가를 휘감고, 머리 위를 감싸며 어둠에 흩어진다.

그 기세에 가로등은 한층 더 힘없이 빛을 잃어간다.


짙어지는 어둠과 달리 그들의 얼굴에는

환한 빛이 감돌고,

힘을 잃어가는 가로등 불빛과는 대조적으로 움직임이 활발해져 갔다.

불의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 그들은 누구랄 것 없이

작은 웃음과 미소를 보이며 그들을 억누르던 불안과 고통. 경직되었던 몸의 긴장도

하나씩 보내고 있었다.


"후~~~"

" 흐미 니미럴! 지랄 맞게 조은디, 왜 안된다고 지랄이여, 지랄은. "

누군가 뱉은 탄성에 여기저기서 동조의 뜻으로 작은 웃음소리를 숨죽여 내고 있다.

행여 감시자의 서치에 포착될까 조심스러워하며.

.

.

" 이곳은 금연 구역입니다. 위반 시 10만 원의 과태료와 퇴원 조치를 당 할 수 있습니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련이 자라서 힘들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