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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 기 홍 May 09. 2020

나도 엄마가 있다

어버이로 감사받고, 어버이께 감사드리고

비가 오는 날엔 참 좋은 냄새가 많다.

비를 먹은 무른 나무향도 좋고, 발 끝에 툭 치고 올라오는 수분 향도 비가 와야 누릴 수 있는 호사 중 하나다.

이런 날은 손에 든 종이컵에

인스턴트 믹스커피 향 마저, 그 본래의 향의 성질을 뛰어넘는 설레임을 주기도 한다.

빗방울을 등에 지고 슬며시 어깨를 기댄 바람의 머릿결도 마치 갓난아이의 체향처럼 사랑스럽다.


"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작은 신발주머니를 둘둘 말아 손목에 감고, 그야말로 자동차만큼 빨리 달리는 중이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빨리 가면 15분 거리.

하지만 엄마에게 자랑도 하고 싶고, 때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소나기에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집까지 쉼 없이 달려갔다.


"에~ 오늘은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에게 육성회에서 연필과 공책을 똑 같이 나눠줬지만..... 그러기 때문에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리 학교를 빛낸 000에게 특별히 교장 선생님의 표창장과 선물을 전달하겠습니다."

3학년 아이들만 쭈~욱 앉은 계단 아래부터 끝까지 빽빽하게 들어선 그곳에서, 맨 아래 계단의 임시 시상대 위 교감선생님의 적극적인 유도로,

울리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나는 상장과 상품을 받았다.


"엄마! 엄마! 엄마~~~" 녹슨 작은 철문이 우당탕 거리며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벽에 부딪혀 퉁~하고 나와 이마를 때렸다. " 악! " 소리를 내며 순간 눈물을 글썽였지만, 또다시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출입문 하나에 3가구가 살고 있고, 작은 공간. 마당이라 하긴 너무 좁고 공동수도를 사용하는 공간을 둔 집이었다.


비를 맞은 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질척이지만 나는 방문을 열면서 신발을 벗어던졌다.


텅~빈방. 조용했다. 방이라곤 하나밖에 없으니 다른 방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면서

단 하나의 기대감 없이 부엌문을 열어보았다.

역시 없다. 아무도.

"어디 갔지?...." 폭이 30 쎈티나 됨직한 마루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발을 덜렁거리며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비는 소나기라지만 집에 온지도 한참이나 됐는데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담벼락 옆, 함석으로 된 빗물통은 토동. 토동거리며 끊임없이 빗물을 튕겼고, 연두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스레트 모양의  처마 끝 차양은 온전히 빗물들을 줄 맞춰 쏟아내며, 마루 앞 흙바닥에 일정한 간격의 홈을 파고 있었다.


이 큰집에 아무도 없다. 3가구가 사는 15명 중에 혼자 덩그러니, 이 곳에 버려진 똥개처럼 처량하게 앉아있었다.

그것도 온통 비를 맞은 축축한 옷도 그대로 입은 채....


양말을 벗고 옷을 벗어 부엌에 던져놓고, 걸레로 대충 쓱쓱 발을 닦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피우시던 담배냄새가 비가 와서 그런지, 유독 좁은 방 곳곳에서 진하게 배어 나왔다.

벽에 등을 기대고 두발을 벌려 쭉 뻗고 그냥 앉았다.

" 엄만 또 공장 가셨나 봐.... 다른 애들은 엄마랑 어디 간다는데..."


꼼지락 거리던 발가락과 라디오가 스치는 김에 엉덩이로 퉁퉁 뛰어가 라디오를 켰다.


" 세에 월에~ 가항도흘~러. 지인 달래 곱케피는 보옴 날에는~ 두우 손얼~잡턴 그흐사라암~가할 때가 허 너 끼는~"

남상규의 "고향의 강"이란 노래가 나왔다.


순간 코가 찡~하더니, 함석에선 토도동 소리가, 지붕에선 빗물이 쏟아지고, 그리고 혼자.... 갑자기 아~앙~하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냥 이유 없는 울음이었다.

왕사탕 만한 눈물이 빗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 00아 일어나~ " 흔드는 엄마의 손길과 목소리가 들렸다.

" 너 언제 왔니?. 이게 뭐야 옷 좀 잘 입지.

오전 수업하고 파 했어? "


연이은 엄마의 말에 잠들기 전 울다만 서러움이 눈을 뜨기도 전에 다시 이어졌다.

" 으~응~꺽! 엄~끅! 가~끅! 써서~ 엉~~~~ 엉~!" 꿈에서 우는 건지, 깨서 우는 건지 그렇게 또 울기 시작했다.


" 그래 그래. 미안 미안.... 엄마가 공장에서 오전만 하고 온다고 했는데 조금 늦었어. 미안'

꼭 안아주는 엄마의 품이 따듯하다는 생각과,

그냥 엄마가 있으니까 좋다는 생각.

두 가지가 너무 좋았다.


"근데 이게 뭐니? 이거 받았어?" 하며 엄마가 신발주머니 속에서 젖은 표창장과 공책을 꺼내면서 물었다.

그리곤 그것들을 아랫목 쪽에 놓아두면서 다른 것들도 꺼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방도 안 뜨듯한데 저기에 왜 놓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또 다른 것은 문화연필 한 다스와 피리였다.


"어머! 너 이거 받은 거야?" 엄마의 환한 얼굴과 하이톤이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 엉! 엄마. 나 그거 학교 대표로 달리기 1등 했다고 교장선생님이 주셨어 오늘 "

표정은 나라를 구한 얼굴이었다.


" 잘 됐다. 어유~ 잘했네. 이거 비싼데 "

한번 더 와락 껴안아 주는 엄마 품에서,

내가 잘했다는 걸 새삼 더 느끼는 순간이었다. 엄마의 냄새는 참 좋다.


" 나 기계체조도 대표야 엄마. "

" 어구 그래 그래.. 내 새끼~ "

" 엄마 이거 엔젤 피리야 " " 나 이제 피리도 1등 할걸?


" 그렇다 그것은 엔젤 피리였다. 너무 갖고 싶었던

상아빛 고급진 500원짜리 피리였다.

그것보다도 쌌던 까만색 300원 피리도 없어서 음악시간에 혼난 적도 있었다.

교실 뒤에 서서 친구들이 부는 피리 소릴 들으며 처음으로 상처를 받는다는 기분을 알았었다.


"가자~ 짜장면 먹으로~~" 엄마의 웃는 얼굴과 즐거운 목소리가 너무도 좋아 하마터면

또 울뻔했다.

나에겐 짜장면이란, 열나고 아파도 그것을 먹으면 신기하게 낫는 맛있는 만병통치 약이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신나는 어린이날이 시작됐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함석 통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고, 처마 끝 연두색 플라스틱 차양은

미처 흘러내리지 못한 빗물들이 서로 어깨동무하고 모여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 아~ 근데 머리가 왜 아프지? 이거 혹 같은데.? "


"아빠~ 밥."

무릎에서 잠든 쫑이를 깨우며 큰아이가 창문을 열고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려줬다.

" 그래~가요~" 몸을 일으키며 의자를 밀어 넣고 베란다를 나와 식탁으로 향했다.


큰아이와 둘이 앉은 식탁. 아내와 둘째는 출근을 하였고, 휴가 중인 큰아이가 차려준 밥을 먹는데

큰 아이가 물었다.


" 오늘 할머니한테 간다고? "

"어~ 아빠 혼자 다녀올 거야. 엄만 바쁘니까 이번엔 아빠 혼자서 다녀와야지"

"하긴... 엄마가 요즘 좀 바뻐야지. 5월은 주말과 쉬는 날도 없으니 말이야...."

"그래도 엄마가 할머니께 드릴 것들 다 준비해 줬어. 오늘 새벽까지 다 해주셨지." 라며 나는 냉장고를 가리키며

"냉장고 봤니?" 하고 물으니 큰아이가 대답했다.

"봤어. 몇 가지 해 놓으셨던데. 밤늦게 퇴근해 와서 저거 만드느라... 참 엄만 대단해~ " 하며 고개를 절래거렸다. 하긴 새벽 2시 넘어서 침대에 들어오는 낌새를 어렴풋 느꼈으니 아마도 그때까지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냉동실에 보리굴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으니 잊지 말고 챙겨가"

"알아. 이 녀석아. 걱정 마" 자기보다 늦게 나가는 가끔은 정신이 없는 나에게 큰 아이가 엄마를 대신해 말해준다.


" 아빠~ 어버이날.... 감사합니다~ " 하며 뒤에서 껴안으며 슬며시 봉투를 식탁에 놓고 돌아선다.


"그래~ 감사해야지~ 너희들 키우는 거

정말 정성을 들였거든~ 하하하~"

" 고마워 잘 쓸게 " 라며 손짓을 해 주고.


"그리고 아빠도 아빠 엄마에게 가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할 거니까 너희들 안 부러워~"

 나도 엄마가 있거든....

살랑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쫑이도 말하는 것 같다.

" 아빠. 고맙습니다~^^"


-밤새 준비해준 아내의 정성을 다행히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엄마가 있는 곳으로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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